이전 마을에서 사기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추슬러 다음 마을로 온 로렌스와 호로, 여전히 호로는 로렌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요망한 짓만 해대고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남자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호로는 로렌스가 여자를 대하는데 면역이 없다는 걸 진즉에 알고는 귀여운 척, 가여운 척, 그러다 헤벌쭉 넘어오면 놀리고 로렌스는 울컥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기대오며 아양 떠는 호로를 외면하지 못 하는데요. 그런 전형적인 민폐(?) 커플의 아름다운(?) 밀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합니다.


이번 3권에서도 호로의 귀여운 밀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합니다. 마부석 왼편에 앉아 로렌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오늘도 평화로운 여행길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데요. 하지만 마을 상인 '아마티'를 만난 게 로렌스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운, 생각해보면 그것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만남과 이별, 일생 변변한 연애라곤 해본 적이 없는 데다 특별한 인연이 없이 만난 호로와의 관계에는 어딘가 모르게 틈이 있었다는걸, 마치 곪은 게 지금 터졌다는 것처럼 이별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뇨히라에서부터는 너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지?'


어디에 이런 자신감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렌스는 호로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고 같이 여행할 것이라고, 그래서 '아마티'에게 호로를 맡겨 마을을 돌아다니게 한 게 화근의 시초가 아니었나 합니다. 호로에게 한눈에 빠져버린 아마티,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호로가 자신을 떠날리 없다는 마음으로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가계를 내고 싶은 그는 그만 실언을 하고 맙니다. '다음 마을부터는 너 혼자 가'라고...


이전 마을에서 사기당해 빈털터리가 된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더 멀어져 겉몸이 달아 있었습니다. 그때도 '너만 없었다면'이라며 호로의 마음에 똥물을 끼얹어 놓고 또다시 너와의 인연은 별 거 아니라는 것마냥 아무렇지 않게 이별의 말을 입에 담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호로는 애써 태연한척하지만 마침 도착한 편지 한 통에서 호로가 그토록 찾던 고향이 이제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모든 게 끝나고 맙니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순식간에 찾아온 이별 


몇백 년이나 인간에게 속아서 풍작의 신으로 깡촌 마을에 묶여 있어야 했던 호로는 외로움을 무척이나 심하게 탑니다. 호로가 요망한 짓으로 로렌스를 들었나 놨다 하는 것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숨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향에 돌아가면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그것이 무너졌을 때 천하의 호로도 망가져 버립니다. 이미 두 번이나 너와의 인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어버렸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고향 찾기도 사실 로렌스가 심심풀이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더해져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로렌스는 요이츠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이미 그녀의 고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호로와의 관계를 생각해 그동안 쭈욱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요.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이나 실언으로 호로의 마음에 실금을 그렸던 것이 멸망한 고향의 이야기로 단순에 그 틈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서운함도 단숨에 폭발하여 로렌스와의 관계는 파탄 나버리고 그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분개함이 더해져 나를 좋아해 주는 '아마티'와 결혼하겠다는 호로


떠나고 나서야 비로써 느끼는 소중함, 그동안 당연히 옆에 있어줄 거 같았던 호로가 이젠 없습니다. 자신의 실언과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 비로써 자신이 바랐던 건 무엇인지 알아가는 로렌스는 아마티를 상대로 호로를 되찾기 위해 상인으로써의 능력을 발휘하여 위험한 도박에 나섭니다. 언제부턴가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걸, 떠나고 나서야 깨달은 어리숙함은 로렌스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겠죠. 그전에 아주 당연히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만심에 대한 천벌의 시작은 덤


맺으며, 이것은 호로와 앞으로 계속 여행하고 싶고 고향이 없어졌다는 것에 좌절하지 않게 하기 위한 로렌스 나름대로 배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언은 정말로 문제지만 이것은 여자에 대한 면역도 없는 데다 지식도 없고 뼛속까지 상인 기질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걸 모를 리 없는 호로는 그저 허망함을 달랠 길 없어 로렌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고 로렌스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호로가 바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해 사태를 키워 버린...


없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아가듯이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현실을 자각하며 비로써 호로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알아가며 그녀가 바라는 '너에게 나는 무엇인가'의 진정한 대답을 해주며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이들의 관계가 더 욱 단단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좀 훈훈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해서 이들의 파탄 나고 봉합하는 장면을 참 리얼하게 표현했더군요. 읽으면서 모처럼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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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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