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녀 전기로 유명한 카를로 젠 작가의 신작입니다. 장르는 근미래적인 SF 전쟁 드라마이고 주 내용은 지구가 '상련'이라는 다른 별의 지배를 받는 노예 계급으로 전락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요. 주인공 '아키라'는 폐쇄적인 일본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련의 '행성궤도보병(궤도 강하병)'에 자원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유녀 전기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좋아서 어떤 일을 맡는 게 아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떠밀려 선택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 생환율 0%에 수렴하는 궤도 강하병이 되어 대리전쟁을 치러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요컨대 주인공은 좋은 말로 하면 용병이고, 나쁜 말로 하면 고기 방패에 지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죠. 일본에서 남들이 하는 틀에 박힌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던 주인공은 '이단아'로 낙인찍혀야 했고, 결국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원이라 쓰고 징집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주인공에겐 웃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설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하던 대항해시대처럼 '상련'이라는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를 행성의 함대에 의해 발견되어 통상(상업) 관계가 될 뻔하였던 지구는 그 가치가 미비하여 버림받다시피 그냥 우주여행 중계기지로 전락하였고 이제는 대리전쟁을 치를 용병 생산 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리전쟁이라는 게 우리 산업의 3D 업종처럼 힘든 전쟁을 대신해라 뭐 그런 것입니다. 물론 강제는 아니고 지원을 받고 있으며, 급료가 좋아 나름대로 지원율은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활률 0%일 정도로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죠. 그래서 주인공처럼 이단아라든지 돈이 궁한 사람들이 몰리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모이는 면면들 개성이 강한 게 특징입니다. 주인공은 스웨덴인, 중국인, 영국인, 미국인 이렇게 4명(주인공 합치면 5명)이 한 팀을 이루지만 애초에 문화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트러블은 끊이질 않게 되죠.

주인공은 이들 4명과 팀을 이뤄 실전을 치르기 전, 훈련을 통해 이들과 소통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주인공 자체도 반골 정신이 투철한데다 사회비판적인 성격으로 똘똘 뭉친 문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고, 팀원들도 저마다 개성이 강해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기 바쁘다 보니 시종일관 협조성을 바라는 건 요원하기만 하죠. 결국 1권의 요점은 이들과 화합하여 훈련을 통과해야 하는 미션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유녀 전기 때도 그랬지만 작가 특유의 수직사회에 대한 블랙 개그와 사회 비판도 잔뜩 들어 있으며 그로 인해 독해력도 상당히 높게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노벨 특유의 개그는 찾을 수 없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다간 초반에 나가떨어지는 난이도를 자랑하죠. 하렘 또한 없으며, 아무리 못생긴 주인공이라도 여친은 생긴다는 라노벨 불문율은 본 작가에겐 통용되지 않으니 이런 점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맺으며: 행성 간 항해라든지, 함대라든지 SF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먹히지 않을까 하는 설정이 제법 있습니다. 유녀 전기가 2차 세계대전에 마법을 접목시켜 다소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본 작품은 근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는 현실성을 보여주는 게 특징입니다. 일러스트 한 장 없어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문제점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작가의 표현력이 좋아 자연스레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다만 주인공과 그 일행에 관련한 트러블과 이들의 성격을 많이 보여주고, 입만 열었다 하면 사회 비판적인 주인공의 분량이 상당해서 실질적인 전투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요컨대 이 작품의 본질은 궤도 강하라는 SF적인 요소보다 인간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함대라든지 궤도 강하 같은 장면들도 다수 있기도 한데 찐빵에서 메인은 팥임에도 이 작품은 겉의 빵에 중점을 둔다고 할까요. 적어도 1권은 그런 느낌입니다. 일단 2권이 나와봐야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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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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