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치트 약사의 이세계 여행 4권 리뷰 -내가 있을 곳,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여행의 끝-

현석장군 2020. 2. 8. 19:59

 

정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 따위 없다고 해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가리라. 하프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세상에서 낳아준 부모를 원망해볼만 하겠건만, 그래도 얼굴 정도는 보고 싶었어요. 가는 곳마다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여행길에 오른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토록 찾고 싶었던 부모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게 된 현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견디며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세상에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땅이 있을까. 안주할 땅이 있을까. 하프 엘프 세리에, <- 사실 절반 정도만 맞고, 위의 표현은 작중엔 없습니다. 아니 생각이 안 난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발매 텀이 워낙 길어서 앞의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나요. 그저 작가가 이렇게 표현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필자의 망상에 가깝다고 할까요.

 

자, 심연의 숲에 도착해서 고블린들과 폭싱(아마 여우인 듯)들에게 받아들여진 주인공 유지로와 히로인 세리에 그리고 마왕 마카벨은 여기서 살기로 작정합니다. 정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요. 인간들에게 그토록 괴롭힘을 당했던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에게 배척받는 마물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유지로는 다친 마물들을 고쳐주고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전수해주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돼요. 첫눈에 반해 어디든 쫓아갔던 세리에와의 진도는 순항 중이고,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이곳까지 흘러든 마왕 마카벨(참고로 10살 소녀)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평온한 나날(오다야카나 히비)이라는 단어를 간혹 접하곤 하는데요. 이들에게도 그런 나날이 흘러갑니다.

 

인간의 군대가 쳐들어오기 전까진 말이죠. 유지로 일행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서 쳐들어온 건 아닌데 운이 없었다고 할까요. 인간의 군대나 유지로에게 있어서나, 그저 인간들은 자원을 얻기 위해 심연의 숲을 개간하려고 했을 뿐인데 왜 하필 여기에 유지로 일행이 있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지로와 세리에 그리고 마왕은 인간 불신을 넘어 증오를 안고 있거든요. 이 3명이 뭉쳐 있는 곳에 지금 거기 빼앗으러 갑니다라고 하면 이들이 잘도 어서 오세요 하겠습니다. 이것들이 끝끝내 여기마저 빼앗으려는 거냐라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겠죠. 게다가 마왕 마카벨을 뒤쫓아온 용사 일행까지 쳐들어와서 마왕을 내놓으라고 윽박 지르니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미쳤구나 했을 겁니다. 마왕이라 지칭되는 마카벨은 고작 10살짜리 소녀라고요? 

 

약자의 반란이 시작된다.

 

마카벨이 인간들을 해한 것도 아니고, 10살짜리 여자애가 괴롭힘당한 끝에 도망치고 쳐서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심연의 숲까지 왔건만, 그저 마왕이라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을 뿐인데, 마왕 퇴치라는 업적이 필요했던 어떤 왕의 이기심 때문에 왜 10살짜리 소녀가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가. 유지로는 화냅니다. 우린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2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심연의 숲으로 쳐들어온 인간의 군대와 마왕을 퇴치하는데 특화된 용사 일행을 맞이하여 그와 세리에는 무모한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또한 유지로와 세리에 그리고 마왕을 받아들여준 고블린과 폭싱들도 자신들을 토벌하고 숲을 개간하려는 인간의 군대를 맞이하여 그저 부조리한 상황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겠다는 것마냥 밟힌 지렁이가 되어 꿈틀 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 싹튼다.

 

세리에는 그동안 마음 한켠에 답답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유지로를 보면 가슴이 뛰는 듯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였었죠. 이 감정이 무얼까. 세상 모든 인간들이 그녀를 차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반면에 그(유지로)는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봐 주며 일편단심 좋아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었습니다. 아플 때나, 배고플 때나 언제나 도움을 받았고, 어머니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더랬죠. 그 어머니가 없는 지금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며 여전히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같이 걸어가 주는 그에게 드디어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달아 갑니다. 한번 무너진 둑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마냥 그에게 다가가려 무진장 애쓰지만 인간의 군대를 맞아 그럴 경황이 없는 게 안타깝게 합니다.

 

맺으며, 뭐랄까. 작가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도망쳐온 곳에서 다시 인간들의 침략을 받아 물리친다는 이야기 자체는 뻔한 전개이긴 한데, 이걸 어떻게 풀어가며 흥미를 유발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이야기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유지로가 마물 군세와 힘을 합쳤다고 해도 수백에 지나지 않는 병력으로 2만이라는 인간의 군세를 맞이해서 찌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요행이 아니라 작가의 능력 부족이라고 해야겠죠. 당나라 군대라도 이렇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 유지로가 마카벨(마왕)의 힘을 빌렸다곤 해도요. 용사라는 놈들도 5명이나 파티 맺어서 쳐들어 와서는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고놈(유지로등등)참 강하네 이러고 있으니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죠.

 

포션빨의 카오루처럼 포션으로 못하는 게 없다면 사는데 있어서 편하겠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능력 상승 약 등 자기 좋을 대로 갖다 붙인 이름의 포션을 먹고 인간의 군대를 유린하긴 해요. 하지만 포션빨의 카오루는 허세로 흥미진진하게라도 해줬지 이 작품의 유지로는 그런 립 서비스가 없어서 간이 싱겁다고 할까요. 스포일러라 언급은 못합니다만. 분명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무슨 마실 가듯 가서 그만 놀고 집에 가자는 투다 보니 반찬의 간은 싱겁고 국은 밋밋하다고 할까요. 예로 세리에의 위기 때라든지. 주인공이 무슨 극대 광역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인간의 군대는 수천이 죽어 나가고,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허무맹랑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후... 리뷰는 포장을 좀 해서 쓰긴 했습니다만. 1권은 별로였고, 2~3권은 읽을만했던 거 같은데, 4권이 또 별로가 되어 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