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책벌레의 하극상 4부 5권 리뷰 -아무리 책을 위해서라지만 잃는 게 너무 많잖아-
스포일러 주의 하세요.
이번 표지는 꽤 화려하게 나왔군요. 지금까지 나온 표지 중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만큼 '마인'에게 있어서 이보다 어울리는 옷과 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우중충한 회색빛 세계관과 반대되는 색이랄까요.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언니 투리의 외모적 성장과 조금은 나이 들어버린 엄마를 보여주며 세월 참 빠르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식과 2년간 잠들어버린 영향 때문에 마인은 거의 키가 크지 않아서 여전히 외모만은 귀여운 모습을 보입니다만. 하는 행동은 악마가 따로 없지요.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는 명언을 새겨들으라는 것마냥 앞뒤 생각 없이 일을 저질러 놓고는 뒤치다꺼리를 아랫사람에게 다 떠맡겨서 위가 빵구나게 만들어버리는 건 세월이 흘러도 여전합니다. 그렇게 책을 위해 코뿔소처럼 저돌적으로 직진만 했던 나날을 뒤로하고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됩니다.
종이 만들기와 인쇄가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독에 당해서 2년간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나만 놔두고 모두가 저만치 앞서가버린 세상에 굴하지 않고 더욱 독하게 마음먹은 마인은 영지 곳곳에 공방을 세워 갔었습니다. 참 마음고생이 심했었죠. 무지한 이세계인들을 교육하려니, 그것도 이제 끝입니다. 종이 만들기는 순탄하게 진행되어 실물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인쇄도 책이 유통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까요. 마인이 이세계로 떨어지고 오로지 책이 보고 싶다는 일렴 하에 6년(아마도, 대충)이라는 시간을 들였고, 이웃 소꿉친구(루츠)를 꼬드겨 시작한 나무껍질을 물에 불리기부터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결실을 맺었는데요. 눈물 한 바가지 뽑아내도 좋으련만 덩실덩실 춤을 추다 기절할 판(체력 고갈)입니다.
자, 이제 책과 인쇄는 본궤도에 올랐고 이야기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마인 덕분에 에렌페스트는 마력이 충만해지고 벌이도 좋아져서 이제 사람들이 굶을 일이 적어졌습니다. 귀족원(우리로 치면 사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 성적도 올라 영지의 순위도 껑충 뛰었고, 파벌에 신경 쓰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는 정신 등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업적에 감동한 무리들에게서 시작된 성녀 전설도 본궤도에 올라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악마(필자 각색)라는 소문도 함께 퍼져서 왕자(프린스)가 쫄아버리는 사태도 벌어지는 등 참 유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마인이 이런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영주 '질베스터'가 그녀를 양녀로 들이지 않았다면 어쩔뻔했을까. 그건 진짜 가족과 이별이라는 것에서 해답은 잘 나타나 있죠.
마인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전엔 별 볼 일 없는 시골 영지에 불과했던 '에렌페스트'가 갑자기 훅 치고 나옵니다. 그러니 뭔 일이 있었는지, 누가 개발하고 있는지, 우리도 떡고물 좀 받아먹을 수 있는지 기웃거리는 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겠죠.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영지를 가진 영주의 입장에서 에렌페스트의 기행을 보고 있자면 쪼렙주제에 고렙존에 들어왔다고 배알이 꼬이기도 하고, 추월당한 영지 입장에서는 약이 오르겠죠. 그 결과가 마인의 납치였고, 친부모는 마인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다 목숨을 잃을뻔하였습니다(이 에피소드가 진짜 감동이었죠). 자신이 해온 일들에 대한 반동이 이렇게 나타나면 좀 반성하고 자중하면 좋으련만, 친부모와 생이별을 하면서도 저돌적으로 돌진만 해대는 그녀(마인)의 성격은 참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녀의 업적 덕분에 나날이 발전하는 에렌페스트를 집어삼키기 위한 불온한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마인과 샤를로테의 납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번엔 겉이 안 된다면 속에서 무너트려주마라는 일들이 일어나죠. 마인의 이복 오빠 '램프레히트'가 결혼하면서 들이는 신부가 하필이면 에렌페스트와 앙숙 중에 앙숙인 '아렌스바흐' 출신이라는 것, 이전에 아렌스바흐에서 '페르디난드'를 노리는 듯한 복선이 투하되는 것과 맞물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하죠. 더욱이 이 결혼을 기점으로 활발해진 구 베로니카 파의 움직임과 더불어 5부에서 일어날 전쟁의 기운은 착실히 진행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아렌스바흐에서 온 신부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착한 신부였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게도 하죠.
마인과 죽이 척척 맞고, 시어머니(엘비라)와의 관계도 개선하면서 더욱 시가에 대한 애착을 넓혀가는 신부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데요. 그도 그럴게 이복동생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는 것도 그렇고, 방구석 폐인을 자처하면서 그녀가 에렌스바흐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은 꽤 심각하게 다가오죠. 이래서 미래에 다가올 전쟁으로 인해 그녀가 받을 상처와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 등, 아렌스바흐가 에렌페스트를 집어삼키기 위해 어떤 짓이든 저지르겠다는 밑밥 같은 존재가 그녀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인과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고 있고, 남편도 그녀를 매우 소중히 하고 있어서 불안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맺으며, 문제는 책에 미쳐있는 마인이 올케(새언니) 되는 신부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군요. 그 벌로 4부 7권에서던가에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 거 같습니다만. 이건 그때 가봐야 알겠죠. 아무튼 이번 이야기도 과반수 이상이 여전히 책과 인쇄에 관련된 이야기 뿐인지라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다가오는 검은 세력이라는 복선으로 그녀와 에렌페스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게 하죠. 부제목을 저리 지은 건, 마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잃은 게 많은지라 본문 쓰다가 문득 생각난 김에 써봤습니다. 친부모와의 이별이라든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략혼인이라든지, 그리고 앞으로 잃을 것들. 이번 에피소드를 점수 주라면 10점 만점에 8점 주겠습니다. 이제야 조금 이야기가 앞으로 진행되는 거 같아 점수를 후하게 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