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처형소녀의 살아가는 길 1권 리뷰 -운명은 돌고 돌아 그녀 곁으로, 이 길은 그녀를 죽이기 위한 여정-
장르: 이번엔 만만치 않다. 이세계 전이, 역설적인 이세계 멸망,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암살, 어쩌면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맺어준 백합, 그러니까 이번엔 반드시 널... 타임 리프, 누군가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짊어진다는 건 순례 여행.
표지: 히로인이자 주인공 '메노우'다. 처형인으로써 키워지고 처형인으로써 살아간다. 그녀가 들고 있는 시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 작품을 다 읽으면 알게 된다(작중에서는 시계가 안 나온다). 하얀 바닥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결코 순백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스토리: 종종 이세계인(지구 일본인)이 넘어온다. 과거 이 세계는 이세계인으로 인해 멸망의 기로에 설정도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자 이 세계에는 이세계인을 죽이기 위한 처형인을 준비했다. 처형인은 이세계인을 발견하는 즉시 처형한다. 메노우는 처형인이다. 메노우는 이세계 소환으로 넘어온 '아카리(여고생이다)'를 만난다. 처형인으로써 그녀를 죽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메노우가 불사신 아카리를 죽이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포인트: '메노우'와 '아카리'의 관계는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왜 처형소녀'의'가 붙었는지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살아가는 길은 처형소녀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가 붙은 게 아닐까 싶다. 역자 분이 '의'자 붙이길 권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특징: 고구마 장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이번 리뷰는 무미건조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사는 세상을 부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온다. 대부분은 어떻게 하긴 잡아 죽여야지라고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이 세계에는 이세계인(일본인)이 자주 넘어온다. 누군가가 소환해서 넘어오기도 하고, 차원의 틈새로 넘어오기도 한다. 과거 이런 이세계인 덕분에 이 세계는 별을 오갈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힘(치트)에 취한 이세계인의 폭주로 한번 멸망의 기로에선 뒤로 이 세계는 이세계인들을 보이는 족족 죽인다.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대륙이 가라앉고 소금으로 변하고 하늘로 솟아올라 버렸다. 지금도 그 여파는 남아 있다. 미개척 지역엔 아직도 고도의 문명이 만들어내는 뭔가가 돌아다니며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 세계는 상처받았다. 처형인은 상처를 보다듬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메노우는 아카리를 죽이기 위해 그녀와 함께 고도(古都) 가름으로 향한다. 물론 그녀(아카리)에겐 거짓말을 해뒀다. 초면에 널 죽이기 위해 저기 가자고 하면 좋다고 따라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아카리)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밝은 모습이다. 이것이 시종일관 의문으로 다가온다. 모르는 곳으로 불려와 너는 특별한 힘이 있으니 어쩌고저쩌고 한다고 수긍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그녀는 감언이설로 너는 속고 있다고 나(메노우)랑 같이 가자는데 의심을 하지 않는다. 나아가 만난 지 십수 분 만에 전폭적인 믿음까지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메노우는 뒤통수에 비수를 꼽는다. 근데 안 죽는다. 이세계인은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힘을 받는다. 일명 치트다. 이 세계인 보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나 처음엔 쓸 줄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세계 처형인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이세계 전이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여느 이세계물이 신에게 치트를 받아 이세계로 넘어와 마왕을 무찌르고 문명을 퍼트리면서 잘 사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치트에 취한 자의 말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기계장치의 대륙이 있고, 닿는 건 무엇이든 소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검(劍)은 대륙을 소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모두 과거 이세계인들이 저지른 짓이다. 이세계인들은 이 세계에서 악인이다. 그렇기에 이세계인은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메노우는 악당이 되고자 한다. 문제는 이제 막 이 세계에 도착해서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이세계인을 죽여만 한다는 것이다. 보통 정신으로는 할 짓이 못된다. 이와 관련한 그녀의 독백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너는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 나는 가해자',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이 세계가 멸망하기에... 여기서 피해자는 전이자를 말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세계로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입장을 생각해보라.
메노우는 아카리를 대리고 고도(古都) 가름으로 향한다.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음에도 아카리는 메노우를 무척이나 따른다. 이것이 메노우에게 있어서 어떤 작용을 할까. 메노우의 마음과 기억은 만들어져 있다. 어릴 적 기억과 감정은 없다. 메노우 또한 이세계인이 저지른 폭주의 피해자다. 메노우는 이세계인이 누구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처형자의 길을 걷기로 했고,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을 대변해 누구보다 많이 이세계인을 죽여왔다. 그런 메노우에게 아카리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서슴없이 다가온다. 어릴 적 잃어버린 마음이 그녀로 채워진다. 가름에 도착하면 아카리와 헤어지게 된다. 메노우는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고, 아카리는...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아카리를 거짓말로 속여 이곳까지 데려와 마법진에 앉혀놓은 장면은 무척이나 슬퍼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카리는 메노우에게 웃음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아카리는 자신이 여기서 죽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어찌 된 일인지 메노우의 가슴이 조여온다. 이세계인을 처형하는 건 늘 하던 일이 건만... 이 장면은 필자에게 있어서 매우 가슴 먹먹하게 만든 부분이다.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이 인도한 자리에서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순수함이란...
발매 전부터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 기대한 만큼 괜찮은 흐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메노우가 자신의 삶과 처형인으로서의 고뇌에 대한 표현력이 좋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이세계인을 죽이는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고뇌가 잘 묻어나 있다. 후반 아카리를 소환한 장본인이자 흑막인 최악의 적을 맞아 포기하지 않는 모습과 동료가 보내온 정보를 의심을 하지 않는 믿음은 기승전결로 이어져 목넘김이 좋은 술을 마시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다소 중2병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마법을 도력이라는 명칭으로 바꿔 식을 읊는 장면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도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서술하는 부분은 소설가 되자 특유의 딱딱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무엇보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처형인으로써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을 죽이지 않고 여행을 하는 모습은 레옹과 마틸다를 연상시킨다. 이 말은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외 등장인물, 메노우의 보좌관 모모가 나온다. 일편단심 메노우빠로써 오직 그녀(메노우)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초반엔 다소 눈살이 찌푸려진다. 말을 진짜 안 듣는다. 메노우를 위해서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든다. 그녀의 무식한 힘은 후반에 큰 활약을 한다. 이것으로 모모의 진가는 올라가게 된다. 그러니 초반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배척하지 말자. 작중 아카리를 만나 아카리의 본질을 단박에 꿰뚫어 보면서 아카리의 [회귀, 타임 리프]라는 진짜 능력을 제일 먼저 알아챈다. 이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아카리가 왜 메노우에게 집착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해준다. 표지의 시계의 의미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공주기사 아슈나도 나오지만 일단 넘어가자. 모모가 사사건건 아슈나에게 시비 트는 게 재미있다.
인물도를 요약하면 모모와 아카리는 메노우를 정말 좋아해서 그녀를 귀찮게 한다.
필자의 푸념: 초판은 심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오타 오역이 너무 심하다. 그리고 번역 상태가 전반적으로 어딘가 이상하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게, 원서도 원래 이런 분위기여서 최대한 원서에 부합하도록 번역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 그리고 쉼표 남발로 인해 맥을 끊어 버린다. 발매 출판사에 문의하니 원서 자체가 문장을 많이 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걸 미뤄보아 우리 식으로 쉼표를 넣은 거 같은데 정작 맥이 끊겨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이것 때문에 리뷰가 두리뭉실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소재는 괜찮다. 매우까지는 아니지만 꽤 흥미롭게 읽기도 했고...
맺으며: 이세계 전이자들이 악당이라는 소재가 참신하게 다가옵니다. 모럴해저드를 일으키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 통틀어서 이세계 전이자들은 나쁜 놈이라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군요. 하지만 그건 표면적이고 이세계인을 죽이는 실행자(처형인)의 입장에서 이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하는 고뇌가 상당히 잘 녹아 있습니다. 또한 당사자인 이세계인 입장에서도 이보다 부조리한 것도 없다는 걸 잘 표현하고 있고요. 부를 땐 언제고 필요 없다고 죽이나 같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벌을 내린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생각나게도 합니다.
아무튼 복선도 누구나 알 수 있게 깔아 놓음으로써 머리 아픈 진행을 보이지 않는 게 좋고요. 가령 아카리가 왜 메노우를 집착하는가를 조금식 풀어가면서 혹시 이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유추한 대로 답을 내놓으니 읽을 맛이 났습니다. 그래서 초반 메노우와 만난 아카리의 반응이 이해가 되기도 하죠. 메노의 텅 빈 마음을 채워가는 부분은 따뜻한 무언가가 있고, 처형인으로써 마음이 삭막해지지 않도록 사죄의 말을 읊는 장면은 숙연하게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습니다. 특히 매노우의 감정 표현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