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이세계 피크닉 2권 리뷰 -발소리는 들리는데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 공포가 있다-
장르: 1권 리뷰 참조(https://blog.naver.com/ssi29/222031252438)
표지: 본격적으로 그녀들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라오(단발머리)의 오른쪽 눈과 토리코(금발)의 왼손을 주목하자. 토리코가 들고 있는 AK 소총은 이세계에서 주웠다. 엄마가 전직 군인으로 사격술은 엄마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소라오가 들고 있는 빛바랜 파라솔은 '이세계 피크닉'이라는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접혀 있다는 것에서 놀고먹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역설한다. 토리코가 들고 있는 AK 소총은 이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표현한 거라 할 수 있다(아마도).
2권 스토리: 소라오와 토리코는 이세계에서 길 잃은 미군부대와 조우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이 자기들만 현실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죄책감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인간성이 발동해 구출에 나선다. 토리코가 거의 어미새 만큼이나 따랐던 '사츠키'가 이세계에서 실종된 이후,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녀(사츠키)의 단서가 발견된다. 더불어 이세계의 근원에 가까워지면서 미지의 존재와 접촉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간다.
포인트: 햇빛을 자주 보자.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 사람은 히스테릭 해진다.
특징: 콜라를 데워 먹으면 무슨 맛일까.
스포일러 주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고개를 잠깐 돌렸을 뿐인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존재를 찾을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작품은 그런 공포가 서려있다.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있다.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풍화되어 무너져가는 건물이 있다. 잔잔한 물웅덩이가 있고, 낯선 생물이 배회한다. 세상 찌든 떼를 벗겨내듯 낙원적으로 비치는 몽환적인 이세계는 마치 심신을 치유하듯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상은 개미지옥인데도.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다 동충하초 같은 뭔가를 발견한다. 자세히 보니 바탕은 인간.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배회하는 낯선 생물이 다가온다. 순간 몸은 움직여지지 않고, 인식은 침식되어 간다. 잠을 자다 가위에 눌린다는 느낌은 이런 것일까 싶은 공포가 엄습해온다.
이세계는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다. 게이트를 찾아서 들어오든, 휘말려서 들어오든 경로는 여러 가지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부대째로 이세계로 흘러든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를 고찰하다가 많은 군인이 희생되어 간다. 소라오와 토리코는 무언가에 쫓기다 미군과 조우한다. 하지만 내 코가 석자인데 이들을 돌볼 여유는 없다. 어떻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둘은 다시 미군을 구출하기 위해 이세계로 들어간다. 장정 수십 명을 희생자 내지 않고 구출해야만 하는 어려운 미션이 떨어진다. 사실 이 미군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이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다. 이세계 주민은 보통 방법으로는 퇴치하기가 매우 어렵다. 귀신을 총으로 쏜다고 죽지 않는 것처럼. 현실로 나갈 수 있는 게이트로 향하던 소라오와 토리코와 미군들을 포위하듯 이세계 주민들이 덮쳐온다.
소라코와 토리코는 이런 위험한 세계에 뭐 하러 가는 것일까. 소라오는 돈이 없다. 부모는 안 계시고, 낯을 가려서 아르바이트도 무리다. 여자면서 위기감도 없이 폐가 탐험이라는 취미를 들인 것도 그녀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러다 게이트를 통해 이세계로 들어갔을 때 나만의 세상을 발견했다는 기대감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식조차 못한 채 말이다. 토리코를 만난 건 그때다. 토리코의 도움이 없었다면 소라오는 동충하초가 되어 있었겠지. 아무튼 토리코의 도움으로 살아난 소라오는 땅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고, 그걸 은둔형 외톨이 히스테릭 녀(女) '코자쿠라'에게 가져다주면서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소라오는 먹고살기 위해 이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다. 덕분에 호강 제대로 한다. 목숨을 담보로...
토리코는 어미새마냥 따랐던 '사츠키'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이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이 '사츠키'라는 사람이 이 작품의 구심점이자 주된 이야기가 된다. 토리코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그녀(사츠키)는 어느 날 이세계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토리코가 사츠키라면 만사 제쳐놓고 덤비는 통에 소라오는 은근히 질투심을 키워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에 굶주리다시피했던 것이 원인일까. 내가 여기에 있는데 왜 딴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가 싶은 게 소라오의 속마음이다. 하지만 그녀(토리코)가 잘 되었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눈여겨볼만하다. 사실 소심하고 직설적인 소라오와 만사 긍정적인 데다 인싸기질이 다분한 토리코는 물과 기름이다. 그래서 소라오는 사소한 것에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삐친다고 할까.
이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조금 언급해보겠다. 일단 '글리치'라는 지뢰가 있다. 도처에 깔려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발견이 되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발을 들인 현실 사람들이 많이 희생된다. 그다음으로 현실 괴담을 바탕으로 하는 이세계 주민(알기 쉽게 필자가 각색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세계 주민은 사람의 머릿속 근원적인 괴담 공포를 읽어 들여 생성된다. '쿠네쿠네'라든지 '팔적귀신'이라든지, 괴담에 나오는 이런 이형의 괴물들이 둘의 앞을 종종 가로막는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런 괴물을 물릴 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는 통하지 않는다. 마법은 없다. 단, 하나. 인식을 확정 시키고 본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소라오의 능력 이외에는 답이 없다. '쿠네쿠네'의 공격으로 죽을뻔하였다가 살아난 이후 소라오는 이 능력을 얻게 되었다. 토리코는 공간과 물질에 간섭하는 능력을 얻었다. 이 능력으로 둘은 이세계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된다.
어쨌거나 이세계에 들어와 그녀들만큼 오래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나 보다. 본격적으로 이세계가 그녀들을 식별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들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우선 이세계는 토리코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사츠키의 존재를 내보인다. 여기서 또 눈여겨볼 것은 소라오의 행동이다. 토리코가 그토록 사츠키를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실을 감춰버린다. 이것이 이후 그녀들에게 어떤 아픔을 선사하는지 모른 채, 하지만 덕분에 이세계의 근원에 가까워지면서 이세계의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 어렴풋이 알아간다는 것이다. 미지의 존재와 조우는 ET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독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세계에 먹힌 사람은 두 번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세계에 들어간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에서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맺으며: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표현력이 좋습니다. 이형의 괴물을 표현하는 것에서 타의 추종까지는 아니지만 꽤 신선하게 다가오더군요. 특히 오키나와 해변에서 이세계 근원에게 먹힐뻔할 때는 손에 땀을 쥐게 했었고요. 캐릭터들의 성격 표현에서도, 소라오의 소심하면서도 직설적인 모습이라던지, 인싸기질로 은근히 소라오의 신경을 긁는 토리코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물과 기름 같던 그녀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없어선 안 되는 파트너로서 인식해가는 장면들도 볼만합니다. 샷건(GUN)을 가진 합법 로리(코자쿠라)가 햇빛을 못 봐서 히스테릭 해져서는 소라오와 맨날 티격태격하는 것도 개그로 다가오죠. 아무튼 이제 시작인데 벌써 끝나나? 같은 이세계 근원에 다가가면서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