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유녀전기 12권 리뷰 -지옥으로 끌고가는 상사와 도망가고 싶은 부하-
이젠 어느 모로 보다 제국은 운명을 다 했다. 남은 건 누구의 손에 점령 당하고 항복할 것인가다. 연료도 없고, 식량도 없다. 그럼에도 전쟁은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동부전선, 연방(소련)과의 전쟁은 질척질척하기만 할 뿐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제국을 움직이는 위정자로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온전히 연방(소련)에 먹힌다면 제국의 미래 따윈 2차대전 때를 보더라도 극명하다. 이젠 퇴색해버렸지만 공산주의의 치하에서 국민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타냐의 상관 제투아는 합중국(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의 패배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주국가에 점령 당한다면 적어도 국민들의 삶은 보장될 테니까.
이번 이야기는 제국의 운명이 그 끝을 고한다로 정의할 수 있다. 전쟁을 왜 시작했는지 이제 와 필자는 잊어버렸지만 국경선에 걸린 나라란 나라에 죄다 싸움을 걸어서는 끝낼 타이밍도 못 잡고 어거지로 자존심만 내세우다 속된 말로 존망 하는 꼬라지 직전에 처해진 제국의 슬픈 말로를 그리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있었다곤 해도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7년이라는 시간을 전쟁을 치렀듯이, 아무리 백전노장들이 즐비한 203 마도 대대를 가진 제국이라도 구멍 뚫린 제방을 모두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이젠 203 마도 대대도 그저 그나마 나은 온전히 보존된 부대이기에 혹사만 당할 뿐이다.
타냐는 이직을 바라나 적당한 상대가 없다. 그렇다고 현대의 지식을 가진 그녀가 연방(소련)에 투항할리는 없을 터, 그래서 그녀의 상관 제투아가 합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르도아(이탈리아)를 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는 않았겠지. 실제로 웹판을 보면 그녀는 합중국으로 넘어가는 거 같으니까. 그보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제국보다 그나마 풍족한 이르도아에서 물자를 보급 받는 게 지금의 타냐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몇 년 전인가 북한이 남침을 할 때 물자를 국도변 마트 같은 데서 보충할 거라는 인터넷 우숫게 소리가 떠돌았었는데 지금의 타냐가 딱 그짝이다.
아무튼 간에 침몰하는 조국에 목 매봐야 나만 손해일뿐이다. 하지만 커리어를 중시하는 그녀로써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아무리 적군이라지만 적어도 유능한 장교라면 대우는 해주겠지. 언제더라 북한에서 귀순한 모 장교는 우리나라 육군인지 공군인지에서 대령까지 하지 않았던가. 타냐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그래서 상관의 그 어떤 명령이라도 들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랄지, 참 사서 고생을 한다. 물자라곤 쥐뿔도 없는 상황에서 적을 두들기라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젠 자존심이고 뭐고, 현지 조달만이 살길이다. 생필품은 일찌감치 현지 조달이고 이젠 하다 하다 군수물자까지 현지 조달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적진에 뛰어들어 빼앗아서 쓴다 같은 도적 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미지는? 커리어 쌓는다며? 남의 돈으로 전쟁하는 건 꿀맛이라는 게 타냐의 지론이다. 그녀는 과연 어디까지 타락할 것인가. 그 벌이랄지 이제 좀 후방으로 물로나 휴가를 만끽하나 했더니 성실한 샐러리맨의 최후는 계속된다. 후퇴하는 부대의 최후미에 서서... 뭐 어쩌라고? 타냐의 상관이 그토록 고대하던 합중국이 움직인다. 2차대전사를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미국의 물량전은 예나 지금이나 혀를 내두르게 하지. 이제 어떻게 항복할 것인가만 남았다. 인적 자원은 다 갈아 넣었고, 물자는 바닥이다. 그럼에도 제국이 움직일 수 있는 건 타냐같이 살아남은 극소수 엘리트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타냐의 운명은...
맺으며: 처음보단(1권) 독해력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이젠 농담이나 개그를 섞어 넣으면서 접근을 쉽게 한 부분이 눈에 띈다. 파워 인플레를 의식한 것인지 타냐가 직접 나서는 전투는 많이 줄었다. 타냐의 대척점에 있는 메어리 수의 활약을 조미료로 조금 가미하면서 지루함이나 식상함을 없앤 부분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여전히 메어리 수의 미x년 플레이는 뒷목을 잡게 하는 게 관전 포인트랄지. 아무튼 이 작품도 곧 끝을 향해 달려간다고 할까. 합중국이 슬슬 물량으로 참전하면서 제국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 13~4권이 클라이맥스가 아닐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