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마녀의 여행 5권 리뷰 -입에서 독을 뿜는다-
호구 당하는 마녀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미인이니 미남이니 잘 생겼다느니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로 미인이라서 칭찬을 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입에 발린 소리다. 거기에 홀랑 넘어가서 좋다고 헤실헤실 웃어봐야 호구만 당한다고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이다. 그래서 노점 아주머니가 내미는 빵은 '네가 미인이라서 덤으로 주는 거야'라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기분 좋게 빵을 뜯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손을 내민다. '동화 한 닢 내야지?' 평소에 일레이나는 자뻑이 굉장히 심한 편이다. 거울을 보는지 안 보는지, 이렇게 호구 당하는 일이 간혹 있다.
취직을 꿈꾸는 마녀
여행엔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금수저가 아닌 일레이나로서는 돈이 떨어지면 당연히 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리얼리티다. 그래서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어째 요상한 것들만 들어온다. '왕녀 호위해보실래요? 목숨은 보장 못하지만, 마약 밀매상 구인중' 그나마 멀쩡한 우체국에 갔더랬죠. 우체국 하면 공기업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거긴 블랙 기업이었으니. 하루 24시간 노동을 해도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블랙 기업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고생하는 선배가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아니라, 사실 일레이나의 성격은 참 끝내준다. 남을 도와주려는 성격은 있지만 내가 고생할 거 같으면 가차 없이 도망가 버린다. 그래도 블랙 기업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주는 착한 마음씨도 있다.
사기꾼 마녀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자리는 원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조화(가짜 꽃)를 도매금으로 끊어와서 팔기로 하는데 원가가 동화 한 닢이다. 그걸 금화 한 닢에 내다 판다. 행복인지 뭔지를 불러들이는 아주 요험한 꽃이라고 선전하면서. 사람들은 거기에 낚여 구입해 간다. 언젠가 마녀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한 날은 점술가 행세를 하며 떼돈을 벌어들이는데, 당연히 점술가로서 능력 따윈 없다. 그냥 사람 심리를 이용한 트릭으로 끼워 맞추니까 사람들은 용하다며 지갑을 연다. 마녀는 언젠가 벼락을 맞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경찰이 찾아왔다. 쫄아버린 마녀는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납치당한다.
마녀 일레이나의 여행은 이런 식이다.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힐링하는 그런 여행 따위가 아니다. 삶은 언제나 처절하다. 그럼에도 일레이나는 여행을 꿈꾼다.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특색을 경험하고 의뢰를 받아 해결하면서 나아간다. 때론 사건에 휘말려 고생도 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번에는 왕녀를 만나 대도(도둑)을 잡아오라는 의뢰를 받는데 당연히 일레이나는 귀찮을 거 같은 일이기에 거부하려 했으나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라는 왕녀의 말에 의뢰를 수행해야 하는 그런 곤란을 자주 겪는다.
그렇기에 야무지게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코 베일지 모르는 게 이 세계다. 방금도 왕녀의 의뢰를 수행하는데 어떤 아가씨의 낚시에 걸려 된통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야기 자체가 시리어스한가?라는 의문이 들 텐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레이나가 여행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그런 이야기를 코믹스럽게 그려 놓은지라 호구 당하는 것도, 낚시에 걸리는 것도 다 일레이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고 거기에 걸려도 일은 심각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가령 위 아가씨의 낚시에 동원되었던 동네 꼬마의 말을 예로 들자면. '멍청이랑 외지인은 식은 죽 먹기라니까'같은 유쾌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설도 예를 들 수가 있다. 이번에 일레이나의 스승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스승이 동문과의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동문이 제자에게 담배를 선물 받는다. 그러자 일레이나의 스승이 말하길 '어머나 일찍 죽었으면 하는 걸까요? 사랑받고 있군요.'라고 한다. 물론 속으로지만, 동문과 처음 만났을 때도 동문을 바라보며 독설을 내뱉고 있으니 독을 뿜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라는 둥 표현에 거침이 없는 게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이 작품은 이런 재미가 있다. 표현에 거침이 없지만 그걸 개그로 승화 시켜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끊이질 않게 한다.
시간의 흐름이란...
이 작품은 성장하는 이야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주인공은 나이를 먹어간다. 시간의 흐름은 아무도 못 막는다는 듯이. 일레이나의 엄마가 주인공일 때가 있다. 그 엄마는 제자를 들이고 여행을 떠난다. 제자는 성장을 하고 엄마는 은퇴를 한다. 그 제자는 또 제자를 들인다. 스승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제자는 지금 여행 중이다. 그 제자는 엄마가 지나갔었을지도 모를 길을 걷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아무런 생각도 없다). 이런 부분을 보면 참 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다시 만난다(엄마는 안 나온다). 자신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고, 마녀로서의 길을 제시해줬던 스승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일레이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고 제자를 들이고 그렇게 늙어 갈 것이다. 독설이 난무하고 사기가 횡행하는 이야기에서 이런 조그마한 서정적인 느낌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할까.
맺으며: 흔한 이세계물에 식상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사기 치고 사기당하고 돈에 인색한 일레이나의 모험이 꽤나 유쾌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주변 사람들로 인해 오즈의 마법사 같은 동화적인 이야기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상식이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주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그런 개념이 존재하는 세계를 여행하며 곤란을 겪기도 하고 때론 그걸 이용해서 떼돈을 버는 일레이나의 모습은 흐뭇함이라기 보다 영악하기 그지없는 악마를 보는 듯하다. 이런 점들이 필자로 하여금 이 작품을 놓지 못하게 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