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모험가가 되고 싶다며 도시로 떠났던 딸이 S랭크가 되었다 7권 리뷰 -여행-

현석장군 2021. 2. 18. 12:08

 

보통 여느 모험물이라면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성장하여 세계를 주름잡는 영웅호걸이 되어 있어야 되는 게 정석이잖아요. 하지만 여행을 떠난 모두가 영웅호걸이 될까? 예전에 어떤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마왕의 출현에 용사가 동료들을 모아 마왕성에 쳐들어 갔더니 이미 마왕은 퇴치되고 끝나버린. 사실 용사가 한 명뿐이라면 위험부담이 상당히 큰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용사가 여행 중에 죽어버리면 그 세계는 끝장나 버릴 테니까요. 이에 우리가 흔히 보는 모험물의 용사는 그 세계에 오직 한 명뿐인 용사가 아닌 많고 많은 용사들 중 하나이고, 그 많은 용사들 중 운 좋게도 한 명이 마왕 퇴치에 성공해 부와 명예를 거머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그렇담 마왕 퇴치에 실패한 나머지 용사들은 어떻게 될까. 가전제품을 파는 점원이 되었을 수 있고, 콜센터에서 상담원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이 작품에서 마왕 퇴치에 실패한 용사는 '벨그리프'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딱히 마을을 떠날 때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들 젊었을 적 치기로 도시로 나가 모험가가 되고자 하는 소년 중에 한 명일 뿐이었죠. 그렇게 도시로 나가 동료들을 만나 파티를 꾸리고 던전에 들어가서 모험을 하는 인생을 살아가나 했습니다. 다들 실력과 용기가 있어서 나름대로 승승장구하는 편이었죠.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성공하면 세상은 참 살기 편해졌을 테죠. 벨그리프는 마왕을 퇴치하진 못했습니다. 동료들은 실력을 키워 저만치 앞서가는데. 마왕성에는 근처도 못 가게 되죠. 어느 날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그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람은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고 했던가요. 한쪽 다리로는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없게 되어 벨그리프는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에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분명 어린 나이에 나만 이 꼴이라는 것에, 더 이상 모험을 못하는 자신에 화가 났을 수도 있고, 멀쩡한 동료들에게 질투를 했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없이 그는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숲에 버려진 딸을 거둬서 키우며 그렇게 불혹의 나이가 되어 갔더랬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의 마음에 남은 건 그날 아무 말없이 떠나온 죄책감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자신의 옹졸한 마음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지. 그러한 마음이 자꾸만 커져갔던 그는 늙어버린 몸을 채찍질을 하며 동료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벨그리프가 어릴 적 모험을 떠나 자신이 지켜줬던 '퍼시벌'이라는 동료를 찾는 여행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닥친 위험을 간파하고 몸을 던져 지켜준 대가로 다리를 잃어버린. 사이가 좋았던 이들 파티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대단히 큰 트라우마로 다가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렇기에 말도 없이 떠났던 벨그리프에게 못내 아쉬운 마음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된 퍼시벌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흐르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대지의 배꼽]이라는 마수가 창궐하는 곳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자신을 혹사 시키는 퍼시벌. 자신을 혹사 시키는 이유가 참으로 절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벨그리프는 퍼시벌이 거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기로 하죠. 딸, 안젤린과 딸의 동료들 그리고 이전 사건에서 상봉에 성공한 어릴 적 파티원 카심과 엘프 왕녀 마르그리트도 함께 하기로 합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설렘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청산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를 하고 있어서 설렘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안젤린은 아빠와 같이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레는 것에서 이것만으로도 조금은 흐뭇해지기도 합니다. 약간은 깔보는 무리로 인해 정석적인 전개도 펼쳐지고, 과거에 두고 온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는 듯 조금은 나잇값 못하는 풋풋함도 벌어집니다. 약간은 모험 다운 일도 벌어지고, 작가 특유의 표현적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여행하는 이들 눈앞에 아른거리는 산맥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거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옵니다. 폐촌에서의 하룻밤은 여행의 낭만을 불러오고요. 마적떼에게 쫓길 때는 긴박함이 묻어납니다.

 

그렇게 긴 여정을 거치며 일행은 드디어 [대지의 배꼽]에 도착합니다.

 

맺으며: 뭐랄까 몽한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며 보는 저 멀리 아른거리는 산맥이라든지, 야영하는 분위기라든지, 작가 특유의 자연을 표현하는 부분이라든지, 마치 거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하여 기분을 고양 시키는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큰 이야기는 없음에도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랄까요. 거기에 고양이 수인 밀리엄에 이어 록(Rock, 음악)을 사랑하는 개 수인 '루실'의 등장은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죠. 대사도 록에 비유해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딸 안젤린이 주인공임에도 이번 이야기는 아빠 벨그리프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어릴 적 동료 퍼시벌을 만나 그날 있었던 일들을 청산하고 아직도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를 다시 양지로 끌어내는 장면들은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역동적이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인상적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