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4권 리뷰 -현실적인 주인공과, 현실적인 용사 그리고 미친 여신-

현석장군 2021. 3. 24. 13:53

 

스포일러와 긴글 주의

 

 

 

 

 

이 작품은 참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태어날 때부터 사생결단을 하는 환경 속이었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주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무법지대가 아닌 평화에 찌든 세상에서 자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다. 법률이 존재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법치국가에서 나름대로 법을 지켜오며 살았고, 윤리를 통해 사람 목숨의 가치를 새겨들은 보통의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윤리와 생명의 가치는 개나 줘버린 세상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자 했다. 그런 주인공을 비웃듯,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과연 주인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3권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보여 주었다.

 

누나와 여동생을 대신해 이세계로 전이당한 주인공이다. 사실은 학교에서 궁도나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주인공이다. 때론 이성으로부터 고백도 받고, 여느 작품들의 고자들처럼 고백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세계에서 미친 여신 덕분에 인간과 대화 불가능, 못생김으로 아인급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입에 풀칠해보겠다고 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운이 좋아 토모에와 미오라는 마물을 종자로 손에 넣었고, 아공이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미친 여신에게 소환 당하고 버려지고 황야에 떨어져 삶이 막막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얼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픈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을 이뤘고, 소중한 걸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아간다. 

 

누나와 여동생 대신 이세계로 온 것에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원래 여신이 바랐던 것처럼 누나와 여동생이 이세계로 전이되었다면 주인공은 아마 자신은 죄책감에 폐인이 되어 버렸을 거라고. 이세계를 근 1년 가까이 경험한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다. 이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만을 추구한 미친 여신은 이세계 인간들의 내면과 정서와 성격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누나와 여동생이 주인공 대신 이세계에 소환되었다면 그녀들은 과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또한 소환한 용사들이 제대로 된 인간일 리 없다는 복선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이번 4권부터 세계관이 넓어진다. 상인으로서 상점을 열기 위해 학원도시로 향하던 주인공을 여신은 가타부타 없이 납치해버린다. 그리고 한창 인간과 마족들이 벌이는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 버린다.

 

오로지 미형 인간만의 세상을 추구하는 미친 여신 덕분에 아인과 마족은 천대받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한때 인간들을 밀어붙이며 이길 거 같았던 전황은 용사들이 소환되고 여신이 다시 인간들에게만 축복을 내리면서 아인과 마족은 궁지에 몰려간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다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거린다고 했던가. 그동안 여신의 만행에 마족과 아인은 대항책을 마련했고 이번 전쟁에서 다시 인간들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한다. 이에 여신은 자신이 소환한 용사들이 죽는 걸 염려하여 주인공을 납치해 고기 방패로 던진 것이다. 주인공에겐 설명도 뭣도 없었다. 갑자기 전장에 던져져 커다란 칼을 휘두르는 여전사 앞에서 주인공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큰 부조리도, 불합리도 없을 것이다.

 

여느 먼치킨이라면 이 국면에서 각성한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장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력만 높을 뿐 실전 경험도 미천하고 스킬도 별다른 게 없다.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교섭을 하는, 이세계에 떨어진다고 다 먼치킨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마력과 더불어 자랑이었던 방어력은 쓸모가 없다. 그야 상대는 이세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슬레이어] '소피아'였으니까. 사실 소피아에 대해선 그동안 꾸준히 복선으로 나왔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이번 전쟁에서 마족편에 서서 자신이 쓰러트린 드래곤과 같이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소피아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미친 여신이라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수긍하며 살아가는 반면에 소피아는 미친 여신에 대항하며 살아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 소피아가 여신이 소환한 주인공을 좋게 볼 리가 없다. 사실 이렇게 끝까지 대척점으로 흘러가면 좋겠는데 설정을 찾아보니 꼭 그렇지마는 않은. 아무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인간계 최강인 소피아를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주인공이 성장 가능성을 보인다는 거다. 필자가 이 작품을 좋게 보는 부분이 이것인데, 실전을 치르며 보완해야 될 점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알아가는, 즉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다. 실패를 거울삼고, 두들겨 맞음으로써 아픔을 알아가고, 패배라는 경험이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거다.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여신의 간섭에 대해 대항책을 만들어 가게 된다. 다시 전장 한복판에 던져진다면 배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명의 용사들, 마족과의 전쟁에 맞서라고 여신이 소환했으니 당연히 이번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미친 여신의 입맛대로 내면과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외모만을 보고 소환된 용사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한쪽은 전형적인 살신성인 용사고, 한쪽은 자기중심적 용사다. 살신성인 용사는 병사들을 살리겠다고 적군을 향해 닥돌 하다가 되레 병사들의 발을 붙잡아서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중심적 용사는 자기만 살자고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몰살 시켜간다. 사람 살리는 용사들에게 싸우라고 전장에 투입했더니 되레 아군이 죽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작가가 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다고 할까. 인간이 가진 내면을 이리도 훌륭하게 표현하는 이세계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필자 주관적이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 수준급이다.

 

꼭 보면 이런 용사들은 죽지도 않고 목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 그나마 살신성인 용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참다운 기사의 기질을 보인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다 보니 주변의 발을 붙잡게 된다. 나는 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러다 보니 뭔가를 잃게 되는 아픔을 얻게 되는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을 용사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자기중심적 용사는 그딴 거 없다. 세계는 나를 위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된다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다. 온갖 버프는 다 받아서 기고만장하다가 찌질하게 져놓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거 하며 이쯤 되면 작가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다. 미친 여신에 이런 용사들이 어우러져 이번 4권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그지없다.

 

맺으며: 드래곤 상위종 루토의 언급과 드래곤 슬레이어 소피아의 등장으로 복선 몇 개가 투하되고, 마족과 인간들의 전쟁으로 세계관이 제법 넓어지는 4권이다. 그동안 어딘가 동떨어진 세계를 걷고 있었던 주인공은 소피아와의 접촉으로 성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할까. 여기에 살신성인 용사와 자기중심적 용사를 투입함으로써 긴장감과 몰입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물론 이런 게 이세계물의 클리셰에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작가는 제법 괜찮게 풀어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지만. 아무튼 성장형 주인공을 원한다면 이 작품도 나름 괜찮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하려는 주인공은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