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6권 리뷰 -악연의 시작, 정조의 위기-
중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좀 아쉬운 게 주인공이 못생겼다는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밀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황야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들렸던 마을에서 마물 취급받으며 쫓기던 유쾌함은 이제 없다. 여신이 외모지상주의를 표방한 끝에 이세계에서 지나가는 개도 미남, 미녀다. 더구나 주인공은 이세계 종족 휴만(이제야 언급하는데 휴만은 모습은 같아도 인간하고 개념이 약간 다르다) 말도 못한다. 그러니 어디 가서 밥 빌어먹으려고 해도 불가능이라는 소리다. 그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건 자명한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상회를 열어 떼돈을 벌고 있다. 당대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종자로 들이고, 실미도처럼 아공(쉽게 말하면 커다란 비닐하우스 같은)에서 이세계 아인들을 대려다 혹독한 훈련을 시켜 엄청난 실력자들(이하 아공 주민)도 양산해내고 말았다.
상회도 궤도에 올랐고, 학교에서 제자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등 삶은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다. 이제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부모님 단서를 찾고, 여신에게 한방 먹이는 일만 남았다. 이런 주제로 이번 6권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든다. 그동안은 주인공의 성장과 정착을 다뤘다면 이번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단서를 추적하려고 하는데 마족이 끼어들고, 여신에 반기를 든 조직이 덤벼온다.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쭈욱. 덤으로 사회적으로 훌륭하게 성공한 주인공에 들붙어 쪽쪽 빨아먹으려는 자들과 주인공의 힘을 이용하려는 각종 무리들에 맞선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세계인이다. 이세계에서 살다가 지구로 넘어간 케이스인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아마도). 그래서 부모님이 이세계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신이 애초에 요구한 누나와 여동생 대신 이세계로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주인공은 가족을 아낀다. 이 신념은 지금의 아공 주민들을 아끼는 것에서 그 연장선을 느끼게 한다.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모험가들에 의해 아공 주민이 사망하자 크나큰 상심과 죄책감에 시달린 게 주인공이다. 이런 점이 아인들과 종자들에게 각인이 되었고, 그를 신적으로 추종하게 만든다. 아무튼 그런 주인공이 겨우 부모님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지금은 멸망해버린 나라에서 나름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건 회귀본능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고향을 알았고, 부모님의 발자취를 알았는데 바로 쫓아가서 확인은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인간미가 떨어진다기 보다 고향이 마족이 지배하는 적지라서라는 이유가 크다.
어쨌거나 여신에게 한방 먹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주인공만이 아니다. 주인공은 자신(여신)이 잘못 끌고 와놓고 못생겼다고 세계의 끝 황야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모자라 통역 기능도 주지 않아 고생을 참 많이 했다. 그 흔한 치트키도 받지 못했다. 다만 부모님이 이세계인이라서 그런지 마력 하나만은 유복해서 이걸로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니 여신 아구창 한대 때린다고 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악감정을 주인공만 가진 게 아니다. 여신의 개입을 막고 이제 휴만들만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조직이 나타난다. 만들었다고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나대는데 사실 주인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근데 조직이 여신에 대항하는 방법이 눈뜨고 못 봐줄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등 반인륜적인 모습에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좋게 봐줄 리가 없다.
근데 사실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조직들은 주인공에게 짓밟히는 역할이 될 테니 굳이 크게 언급할 가치는 없다. 마족도 어떻게 보면 여신 타도라는, 주인공과 맥을 같이 하지만 애초에 주인공을 죽이려 했으니 적이나 마찬가지다. 이렇듯 크게 보면 하나의 목표(여신 타도)로 저돌맹진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주인공과 휘말리게 되고 썰려 나간다는 구도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을 구워삶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미 주인공은 그런 점을 꿰뚫고 있다는 거다. 여기서 유념해야 될 건 능력이 좋아서 알아챈다기 보다, 가령 주인공과 그의 종자들 사이 이간질 시키려는 마족녀(女)가 나오는데 종자들의 행동들을 이미 주인공은 알고 있다는 거다. 즉, 주인공에게 있어서 유해하지도 않고, 새삼스럽지 않은 걸로 나불나불 떠들어서 되레 주인공의 적이 누구인지 자기가 각인시켜버리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생겨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6권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든다고 했는데, 마물과 인간(이세계 주민인 휴만 말고) 사이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복선이 나왔다. 여기서 마물이란 당연히 주인공의 종자들인 야생 드래곤 '토모에'와 과부 독거미 '미오'를 말한다. 주인공을 만나 인간으로 변신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들의 본모습은 이세계에서 악몽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단히 위험한 마물들이다. 여신이 독설로 내뱉었던 마물과 교미하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이런 뜻이었나 본데, 이미 1권부터 복선이 나와 있었건만 이제야 생각나게 된다. 아무튼 토모에와 미오에게 있어서 광명이나 마찬가지다. 작가가 고생하는 그녀들을 위해 하나의 선물을 준게 아닐까 싶다. 근데 토모에는 알아도 미오는 아직 모른다는 것에서 흥미를 돋운다. 왜냐면, 미오는 얀데레 습성에 눈을 떴기 때문.
이 모든 게 '루토'라는 상위 드래곤이 출연하면서 시작된다. 6권을 기점으로 주인공의 인간관계는 급속하게 늘어만 간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 아닌 주로 마물들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사실 루토는 리뷰에서 언급 안 하려 했는데 앞으로 주인공과 엮일 거 같아 언급해본다. 첫 출연부터 BL을 찍겠다고 덤비는 통에 주인공 입장이 말이 아니다. 힘의 차이에서 우월감에 삐진 듯한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말투가 장난 아니다. 호시탐탐 주인공 엉덩이를 노리고 있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낼 인물이다. 하지만 꼴에 엄청 오래 살았다고 지식은 많다. 주인공이 지구로 복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 등 루토가 가진 지식은 주인공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흔치않은 동료다.
아직은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휴만 관계에서 경험이 미천하다 보니 악의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람들에 놀아나기 직전까지 가곤 한다. 종자들이 그의 곁에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쪽쪽 빨렸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주인공에 빌붙으려 하고, 그의 재력을 탐내는 이런 점들이 더러운 사회의 이면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가 있다. 여타 이세계 작품들과 차별화하는 게 이런 점들인데, 능력 위주의 이세계물과 다르게 주인공은 이런 더러운 사회 이면에 대항해 살얼음판 같은 길을 걸어가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는 거다. 로봇계를 수퍼 로봇과 리얼 로봇으로 나눈다면 여타 이세계물이 수퍼 로봇이라면, 이 작품은 리얼 로봇이라 하겠다. 사실 주인공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종자들이 바로잡아 줄 테고, 어중간한 조직들은 토모에와 미오가 나선다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타 이세계물 합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가장 성공한 축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인덕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맺으며: 사실 쓸 말이 더 있긴 하다. 글이 길어져서 이만 줄여야 되는 게 아쉽다고 할까. 필자가 가방끈이 짧아서 조리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여신에 대항하는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조직이 등장하고, 드래곤의 정점 루토가 주인공 엉덩이를 노리기 시작했고, 마물과 인간 사이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었다. 이로써 가족끼리 하는 거 아니라며 애써 외면했던 주인공은 코너에 몰리게 된다고 할까. 그리고 이건 이전에 나온 내용이지만, 지구의 인간과 이세계의 휴만은 개념을 약간 달리한다.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인간 취급이다.
여기서 설정 구멍이 발생하는데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세계인이고, 이세계인은 휴만이다. 주인공은 부모님의 1세대 자녀로써 이세계 기준으로 휴만이 된다. 인간은 고대에 살았던 종족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 보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을 인간, 즉 무언가로 추앙하고 싶어 하나 본데 작가 스스로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또한 주인공은 휴만이라서 마물(토모에와 미오)과는 아이를 만들지 못한다. 나중에 토모에나 미오에게 아이가 들어서면 진짜로 설정 구멍을 크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아마 휴만을 지구로 보내면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만들지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렘은 아니면서 은근히 하렘을 만들어 간다. 이미 제자들도 그렇고, 이전에 저주에 걸린 상인의 딸들을 치료해준 적이 있는데 저주가 낫자마자 얀데레 짓을 한다. 마물인 토모에와 미오는 말할 것도 없고. 아공에 주민을 들이면서 주인공에 호감을 가져가는 아인들이 늘어나는 등 최초의 못생김 주의보 아이덴티티는 이제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휴만중에서도 이미 못생김은 이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비록 사심이라고는 해도 팔자 피려고 주인공을 향해 닥돌하던 학교 여학생들도 많았으니까. 마족녀(女)도 주인공을 포섭하기 위해 이간질에 나서는 등 주인공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근데 다 부질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 곁에 마물(토모에, 미오) 두 마리가 버티고 있어서 하렘은 피다가만 꽃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이번 6권은 일본색이 상당히 짙게 갈려 있다. 일본 작품이니까 일본색이 짙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노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을 좋게 보는 필자로서는 호감도가 낮아진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