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무한의 저편으로 1권 리뷰 -인류 멸망한 세계에서 유일한 안식처-
중급 스포일러 주의
노블엔진에서 발매된 신작이다. 기본적인 틀은 전생의 기억을 가진 주인공이 이세계 주민으로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모험가의 길에 들어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보통 여느 이세계물이라면 압도적인 스킬과 능력을 얻고, 현대 지구의 지식을 이용해 신문물을 퍼트리며 부를 축적하거나 이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런 시추에이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신에게서 능력을 받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싸움 실력은 마을사람 A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또한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 신문물을 만들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지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자기 이름만 쓸 줄 알았지 문맹이나 다름없다. 약간은 이세계 전생을 다루면서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이세계 주민이라는 기틀 속에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한끝에 모험가로서 밥을 빌어먹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꾸며 간다.
주인공 '츠나'는 시골 촌장 셋째로 태어난다. 보통 여느 판타지물이었으면 아버지가 촌장이라는, 다소 유복한 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실적인 드라마를 보여준다. 영주가 뜯어가는 세율은 90%이고, 아버지가 대를 물려주는 건 장남까지다. 차남은 장남 스페어이고, 삼남은 스페어조차 되지 못한다. 아이들이 노예로 팔려가는 게 당연한 시대고, 세율로 인하여 먹을 건 거의 없다. 그러니 삼남의 미래는 뻔할뻔자다. 이 작품은 이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주는 먹이만 바라보고 있다간 굶어죽기 딱 좋은 세상이다. 내 앞 가림을 위해서라도 주인공은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왕도에서 주 7일에 하루 20시간이라는 개고생을 하여야만 한다. 이것도 정말 어렵게 얻어낸 일자리다. 왕도는 심각한 불경기를 겪고 있다. 이렇게 시작부터 주인공의 인생은 시궁창이 따로 없다는 걸 어필한다.
그렇게 비전 없는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모험가의 도시 [미궁도시]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주인공은 살기 위해 거기로 향한다.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개척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먹을 게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왕도에서 죽자 살자 일해도 들어오는 돈은 없다. 주인공은 살기 위해 [미궁도시]로 향한다. 가는 길에 소녀 '유키'를 만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도 전생자라는 걸 알게 된다. 이세계는 이렇게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살아가는 사람이 제법 있다. 둘은 [미궁도시]에서 모험가로 대성하자고 의기투합한다. 그런데 소녀인 줄 알았던 유키가 사실은 남자란다. 등장할 때 온갖 미사구여는 다 갖다 붙여놓으며 미소녀라고 주워섬기더니 남자란다. 하렘을 싫어하는 독자들이라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는 시궁창 같은 세계관이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이렇게 개그를 섞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은 며칠의 여행 끝에 [미궁도시]에 도착한다.
이세계는 중세시대 미만이다. 귀족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나라가 난립하며, 마을은 쇠퇴한 끝에 소멸되어 간다. 분위기는 마치 어떤 사태로 인해 멸망해버린 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런 세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란 매우 힘이 든다. 노예조차 팔리지 않아 바겐세일을 해도 구입해가는 사람이 없다. 일부러 노예로 자청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과 유키는 [미궁도시]에서 모험가로 대성한다는 것, 그 옛날 80년대 못 살던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성공하고 말 테다 하는 세상 물정 모르던 꼬맹이 같은 그런 설렘이 아니라 절박함이 있다. 주인공과 유키는 별다른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주인공은 고향에서 고블린은 잡아본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작품에서도 나오듯이 고작 몇 마리 잡았다고 어엿한 모험가가 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주인공빨도 못 받는 주인공이 모험가들의 도시라는 [미궁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있다.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문명을 유지하는 도시가 있다. 그런 영화를 제법 본 듯하다. 이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궁도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모험가의 도시는 실존했다. 이세계에서 모험가는 정말로 인생의 마지노선에 봉착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여느 판타지처럼 모험가만 되면 입에 풀칠하는데 지장 없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인식도 낮고, 벌이는 더욱 신통찮다. 애초에 불경기라서 일 자체가 없다. [미궁도시]는 그래서 꿈의 도시다. 마치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문명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그런 곳이다. 주인공과 유키는 [미궁도시]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굶어 돌아가실 거 같은 이들을 반겨주는 건 현대 지구의 신문물 그 자체다. 다소 당황스러운 전개라 할 수 있다. 분명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 신문물을 만들어내는 인간은 없다는 식으로 표현 해놓고 TV부터 해서 인터넷까지 구비하고 있다.
분위기는 중세시대 미만에서 현대 아이돌 콘테스트로 바뀐다. 이런 흐름의 영화도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미궁도시]에서는 모험가를 추겨세우고 있다. 거의 아이돌 취급이다. 능력이 있고, 얼굴 빨되는 모험가는 아이돌로서 활동을 하며 부를 축적한다. TV에도 나오고 각종 엔터테인먼트도 있다. 필자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밖에서는 개도 안 먹을 보리죽으로 연명했는데 여긴 기본으로 쌀밥이 나온다. 분명 전생의 기억을 가진 누군가가 [미궁도시]를 만들었을 거라는 복선이 깔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있고, 건물도 현대식이다. 여기선 굶어 죽을 일은 없으며, 범죄라고 부를 만한 사건도 없어서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한 도시라고 한다.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사회로 마물인 고블린도 능력에 따라 고위 사무직에 취직할 수 있는 도시다. 참고로 AV도 있다고 한다. 전형적인 일본이라고 노골적으로 어필한다. 이렇게 현대식 문물이 넘치는 도시에서 주인공과 유키는 모험가가 되지 위한 첫걸음을 뗀다.
이 작품은 아무래도 여성향 같다. 일단 주인공이 부녀자들이 꿈꾸는 동인지 세계관에 나올법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도시로 들어오기 전에 그런 에피소드도 일어난다. 유키는 여장남자라는 예쁜 남자라는 포지션이다. 그리고 미궁에 들어가기 위해 교육받을 때 안면을 트게 되는 '필로스'라는 나중에 주인공과 파티 짤지도 모를 남자도 미형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1권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하렘이 아니다. 그렇담 히로인은? 나온다. 이 작품이 특이한 게 처음부터 같이 다니게 하지 않고 나중에 만나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리리카'의 경우를 보자면, [미궁도시]에 들어올 때 주인공과 잠깐 인연을 트게 한 뒤, 나중에 다시 만나게 해서 인연을 강조하는 면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별도로 히로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이런 히로인이라면 주인공과 같이 다녔으면 좋겠다는 설렘을 준다고 할까. 이런 흐름으로 성공한 게 '소드 아트 온라인'이 있다. 키리토와 아스나의 만남이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맺으며: 사실 중반 이후부터는 [미궁도시]에서 주인공과 유키의 모험가가 되기 위한 교육이 주된 이야기다. 초보자 던전에서 어떻게 하면 모험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같은 거의 모험가 지침서처럼 온갖 설명이 들어 있어서 중반 이후는 긴장감이라던지 개그 같은 소소한 재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사를 대려다 이론 교육도 꽤 많다. 그러다 초보자 던전에서 교육을 받으며 조금식 성장하는 그런 패턴이다. 사실 주인공의 능력이 평범하다고 했지 무능력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으며 조금식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쩌면 필자가 그동안 찾았던 이세계 전생물에서 성장이라는 개연성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강한 게 아닌 배우면서 강해지는 정도의 길을 간다. 근데 이런 정도의 길을 막상 접하고 보니 읽는데 끈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1권에서 하차하려 했으나 부록으로 실린 히로인 '리리카'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읽고 나서 필자의 소감은 '먼치킨 히로인 간다!!'였다. 귀족의 딸로 태어나 귀족으로서의 정도의 길을 걷는 것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려다 집에서 쫓겨나고 방랑 마법사가 되어 마음에 안 들면 마법으로 구워버리는 호탕.. 아니 음습한 그녀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과 유키의 활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얕잡아보는 놈들을 혼쭐 내주고, 여자라고 뒤에 있는 것보다 앞에 나서서 직접 사냥하고 사냥물 해체도 하고, 당당하게 나눠 달라는 성격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노예사냥꾼을 불로 태우고, 소문이 나서 그녀를 건드리는 놈들이 없자 로브를 벗으면 덤벼 오려나? 하는 등 괴짜가 따로 없다. 그런 그녀가 당면한 고민이자 문제가 있다. 바로 굶어죽기 직전이다. 어딜 가도 불경기다. 그래서 그녀도 [미궁도시]로 향한다. 거기서 주인공과 처음 만나게 된다. 비록 짧은 외전이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히로인이다. 이것만으로도 필자는 이 작품의 점수를 10점 만점에 8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