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꽝 스킬 [지도화]를 손에 넣은 소년은 최강 파티와 함께 던전에 도전한다 2권 리뷰

현석장군 2021. 6. 19. 21:16

 

소꿉친구에게 거절당한 게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나 보다. 스킬이 곧 그 사람의 능력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소꿉친구가 받은 스킬은 세계에서 몇 없는 유니크,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도와 매핑이다. 15살이 되던 해, 주인공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꿉친구는 출세의 길로, 주인공은 술주정꾼으로. 순진했던 어릴 적의 약속, 언제나 함께 하자던 그 약속은 현실을 직시하는 어른이 되었을 때는 덧없을 뿐이다. 소꿉친구가 욾조린 이별의 말에서 주인공이 꿈꿔왔던 미래는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주인공이 아무리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고 해도 기둥서방이라는 건 변함이 없고, 넓은 세상을 봐버린 순정은 현실을 보게 된다. 누구라도 무능력한 사람과 다니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가치는 스킬로 판단된다.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킬을 가졌다.

 

1권에 비해 발암적인 요소가 상당히 줄었다. 남 탓하기 바쁘고, 배우는 자세가 되지 않았던 주인공은 도적에게 필수 스킬인 [은밀]을 조금식 익혀 가면서 한 사람분의 역할에 다가간다. 그것을 바라보며 아니 주인공 존재 자체에 언제나 딴죽을 걸던 '에린(히로인)'은 점차 그를 인정해나가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벌써 몇 달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만 한다. 주인공은 죽자 살자 스킬 [은밀] 연습에 매진하고 어느 날 목욕탕에서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에피소드 같은, 스킬을 그딴 데 쓰라고 가르친 거 아니다만? 일도 일어나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그게 또 못마땅한 에린은 주인공을 떠보게 된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냐고', 이 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마치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는 과거를 비추는 듯한, 그녀는 이렇게 파탄의 징조를 내보인다.

 

이번 이야기는 상당히 묵직한 과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소꿉친구에게서 버림받은 충격 때문인지 타인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걸 은연중에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에린'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도 방관하게 된다. 주인공은 타인의 호감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럴 리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래서 신규 캐릭터인 '로즈리아(히로인)'가 노골적으로 대시를 해와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흔히 고자 주인공이 아닌가 하며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반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버림받은 것에 대한. 그래서 악착같이 스킬에 대해서 배우려고는 하는데 감을 못 잡는다.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의 감정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다 보니 가르쳐 주는 사람의 진의를 깨닫지 못해 성장은 하는데도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이야기는 좀 뜬금없다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 잘 보여주다 느닷없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던 히로인 '에린'을 극한 상황에 내몰아 주인공을 성장하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쉽게 표현하자면 인간 불신에 가까웠던 주인공이 에린이 안고 있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자기 위주였는지 알아간다는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던전에서 주인공은 에린과 함께 전이 트랩에 휘말려 미답파 20계층에 떨어지면서 지상으로의 귀환을 그리게 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에린의 과거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지독한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러다 15세 때 유니크 스킬의 습득하게 되고 왕따는 그쳤지만, 그녀는 왕따 시절 유일했던 친구가 대신 왕따 당하는 것을 못 본 척해버린다. 그게 죄책감으로 다가오고 그게 끝나지 않는 아픔이 되어 버린다. 에린은 왕따 당하는 친구를 못 본척한 것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2권 만에 이런 설정을 내보여서 필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공과 에린의 티격태격은 해도 접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네메'라는 힐러와 접점이 더욱 많았으면 많았지. 그런데 에린과 난데없는 역경이라니. 흥미로운 건 주인공은 소꿉친구에게 버림받은 것도 일종의 왕따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도 피해자라는 것이다(필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인간의 감정이 들어오는 걸 막는 벽이 되었고, 이걸 깨기 위해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에린이 되었지 않나 싶다. 결국 같은 피해자들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에린이 가진 슬픔은 주인공에 비할 바 못 되었다는 것이고. 주인공은 이제서야 내면 성장을 이루게 된다. 에린을 어떻게든 지상으로 돌려보내야 된다는...

 

그런데 싸우지 못하는 주인공과 후위직이었던 에린이 20계층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 에린은 자신의 과거를 떠 올리며 제대로 망가진 상태다. 주인공은 에린의 북돋아 어떻게든 지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구원은 없다.

 

맺으며: 결국 인간관계란, 마주 보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열면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역설한다. 주인공은 에린의 과거를 들으며 그녀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에린은 망가진 자신을 버리지 않고 곁을 지키며 북돋아주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사실 주인공은 혼자서라면 [은밀] 스킬로 지상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버리지 않는 모습에서 과거 소꿉친구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저 귀찮은 사람으로만 여겼던 것이 이젠 둘도 없는 사이로 발전해가는 모습이 흥미진진해진다. 사랑은 위대하다고 했던가. 중간 보스를 유인하며 에린을 지상으로 돌려보내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1권에서 느꼈던 발암물질을 죄다 날릴만한 임팩트가 있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는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3권부터가 상당히 기대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