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신화 전설이 된 영웅의 이세계담 6권 리뷰 -주인공이 정신 나가면 생기는 일-

현석장군 2021. 12. 30. 18:48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황제는 자기가 싸지른 똥을 처리하기도 전에 첫째 아들에 의해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다는 말은 이걸 두고 하는 말일까요. 대륙 통일이라는 꿈을 이루기도 전에, 그동안 주인공과 딸내미(리즈)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처럼 굴더니 허망하게 가버렸습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면서 정보력은 개뿔도 없는지 아들이 반란을 꿈꾸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는 듯, 이 작품은 이야기에 구멍을 보이며 황궁에서 있었던 반란은 주인공과 히로인 리즈에 의해 가까스로 진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황제의 사망은 '없던 일로 하자'. 그렇게 입을 맞춰가는데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황제가 없는 나라를 침공하자며 이웃 6개나라가 침공을 개시하는데 병력 수가 무려 20만 대군이라는군요. 황제가 죽고 중앙 귀족들은 주인공의 농간에 의해 와해되어 버린 지금, 그 대군을 막을 구심점이 없어요. 여기서 이 작품이 가진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죠.

 

이 작품은 여타 이세계 먼치킨등 판타지와는 사뭇 다른 전개를 보여주는데요. 첫 번째로 캐릭터들의 개성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입니다. 황제는 그나마 야욕은 있어서 머리는 제법 굴렸으나 방심했다가 첫째 아들에 의해 가버렸고, 그 첫째 아들은 흑막에 놀아나며 미치광이 짓을 해대고, 둘째 아들은 어딘가 음침한 게 세상을 위에서 바라보며 다 안다는 듯 재수 없는 밥맛 행세를 하고, 셋째 아들은 전형적인 무능의 극치로 부하들만 닦달하다가 아버지(황제) 뒤따라 가버리고, 장녀는 주인공의 씨를 받아서 입신양명에 힘을 쓰는 중이고, 차녀(히로인 리즈) 어리바리한 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까먹고 배우는 것도 없고 몇천이나 되는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아무렇지 않은 냉혈한급 천연 기질, 그리고 대망의 주인공은? 이쉐키가 가장 문제입니다. 1천 년 전 소환되어 그란츠 제국의 개국 공신으로서 주변 나라를 침공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이웃나라들의 원한한 산 주범이죠.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주변 나라가 너 잘 걸렸다는 듯 그란츠 제국(주인공이 속한)에 침공을 개시합니다. 그란츠 제국은 엄밀히 따지면 피해자가 아니라 현재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침략자라는 건데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페르젠을 침공하여 학살을 일삼고 노예로 잡아가는 등 패악질을 해댔죠. 과거에도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피해를 잔뜩 입혔고요. 그러니 응당 보복을 당한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중의 느낌은 그란츠 제국이 피해자다라는 느낌인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이건 뭐 판타지니까 판타지답게 전쟁을 통한 해결을 원칙으로 내세웠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현대의 감각으로 이 작품을 대한다면, 주변 나라가 전쟁을 걸어오기 전에 자신들의 과오를 사과하고 배상을 했다면 원만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는 이걸 의식했는지 흑막의 개입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복선을 깔아 두었습니다만. 

 

사실 원만하게 끝나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 어쩔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다른 전개를 보여주는데요. 현재의 모든 상황은 주인공 1인에게 맞춰져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주인공은 1천 년 전 친구를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제대로 걸려 있죠. 중2병 대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요. 그란츠 제국은 친구가 건국한 나라고, 그래서 그란츠 제국이 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죠. 거기에 히로인 '리즈'에게서 1천 년 전, 친구의 편린을 엿보게 됩니다. 무능의 극치를 달려주는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주인공은 해선 안 될 일들 하기 시작하죠.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올린다면서 그 황제를 보필할 귀족들을 숙청하고, 친구와 아군을 만들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6개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엄청난 수의 배신자들이 생기게 되고, 병력수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이게 됩니다. 이것은 곧 히로인에게 독이 될 텐데도 주인공은 인식을 못하죠.

 

작가는 이후 어떠한 결론을 내려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6권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행동은 한마디로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뭔가 책략을 꾸며 놓은 듯하나, 결과적으로 보면 잘 풀린다고 해도 숙청으로 인해 귀족 같은 고급인력들을 아군으로 만들어 두지 않은 것에 대한 폐해는 지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군주란 카리스마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물론이고 리즈에게는 그런 카리스마가 전혀 없고,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는 더더욱 없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힘으로 공포정치를 펼치고 음습하게 뒤에서 찔러 몰락시켜 가죠. 리즈의 앞길에 방해된다며 용서와 포용보다는 힘으로 찍어누르는 폭군 같은 주인공이랄까요. 어리바리한 '리즈'가 성장을 바란다면 차라리 리즈 보고 전장에 서서 군을 호령하라고 하는 게 번 더 나았을 텐데도 보호한답시고 후방에 보내버리는 행위는 이 작품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군요.

 

맺으며: 사실 좀 더 험악하게 쓰고 싶었으나 자중하고 있는지라 꽤 순화해서 리뷰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서가 없군요. 이 작품의 문제점이라기 보다 특징이라고 해야겠습니다만. 여타 작품에서 아무리 나쁜 주인공이라도 상냥함을 가지고 포용과 용서를 보여 주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리즈에게만 용서와 포용을 보여주고 다른 캐릭터들에겐 가차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개성일 수는 있겠죠. 일률적인 캐릭터보다 사도의 길을 가는 주인공도 나름 괜찮을 것입니다. 문제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겠군요. 히로인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겠다면서 주변을 온통 적으로 도배 시키는 행위, 마음에 들면 봐주고 마음에 안 들면 너님 숙청, 그로 인한 원한, 판타지든 현실에서든 귀족들이란 정세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할 수 있음에도, 주인공이 카리스마가 있었으면 주인공에게 붙었을 텐데 다른데 붙었다고 배신자 취급은 좀 아니잖아요? 결과적으로 보면 라노벨의 한계라 할 수 있고, 작가의 능력이 여기까지라고 할 수 있겠죠. 종합적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자면 하나는 있는데 둘은 없다가 딱 맞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후 다른 귀족들이 나타나 주인공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별 영향 없이 이야기는 흘러가겠죠. 작중 느낌, 가령 카타르시스라든지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없다는 걸 알아버린 필자는 더 이상 이 작품과 맞지 않기에 하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