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나는 모든 것을 패리한다 1권 리뷰 -역착각의 세계 최강은 모험가가 되고 싶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3년 도합 15년을 학업에 매진했다면 웬만큼 지식은 얻는다고 봐야겠죠? 대학 나머지 1년은 뭐 돈이 없어서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치고요. 누구 이야기냐면 이 작품의 주인공 '노르'의 이야기입니다.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모험가 이야기를 듣고 자란 소년은 모험가를 동경해 12살에 도시로 원정을 떠나죠. 룰루랄라 어째서 반드시 모험가가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여기서 눈치를 채야 했어요.
"주인공의 머리엔 지식과 상식을 저장한 하드 드라이브 따윈 없다는 것을요." 아무튼 주인공은 모험가 되기 위해 도시로 나와 길드에 쳐들어 갑니다. 그리고 길마와 모험가 양성소에서 '재능 없는 시키는 금방 죽으니까 썩 꺼져'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게 되죠. 물론 이건 필자가 약간 각색한 것으로 작중에서는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걸 보여주죠. 다만 주인공은 일찍이 현시창을 경험하게 되었지만요. 그렇게 주인공은 [패리]라는 검사 기초 스킬을 얻어 산으로 들어가 수행의 나날을 보냅니다.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사실상 무능력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흔직세나 월드 티처 주인공 같은 캐릭터죠. 스킬이 곧 그 사람의 평가가 되는 세상에서 주인공은 변변찮은 스킬 하나 없어요. 그나마 괄시는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이고요. 도시로 나와 몇 개월을 양성소에서 죽자 살자 노력은 했는데 얻은 거라곤 기초 중에 기초 스킬만 얻습니다. 가령 촛불 붙일 때 쓰는 라이터 불빛 같은 거나 자치기할 때 막대기 휘두르는 스킬 같은 거는 일상생활은 고사하고 모험가로서는 더더욱 쓰잘데기가 없죠.
사실 여기서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이런 스킬이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먼치킨이 되지 않나? 하실 건데요. 네, 그게 맞습니다. 여기서 위에 15년 학창 생활 언급한 게 적용이 되죠. 기초 스킬만 얻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15년 동안 잠잘 때 빼곤 이 기초 스킬 수행에만 죽어라 합니다. 그러다 그의 나이 27살에 다시 도시로 나와요. 뜬금없지만 이 작품은 3대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고집과 민폐와 착각" 중세 시대 판타지에서 27살이면 손주를 봐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건만 주인공은 모험가 꿈에 미련을 두고 고집스럽게 모험가 문을 두드립니다.
리뷰가 길어질 거 같아 축약해서 언급해 보자면요. 이 작품은 착각 물입니다. 그것도 품질이 매우 우수한 상등급 착각물이죠. 거기에 상식 결여에서 오는 무지성 착각이 더해진다는 것입니다. 모험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 도시에 나타난 '미노타우로스'라는 몬스터를 모른다는 무지성에 의한 착각으로 돌격과 그 착각에 기인한 미노타우로스를 소(cow) 취급, 15년 동안 한 우물만 파듯 수행한 결과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조차 몰라 난 약하다는 착각(사실상 먼치킨), 미노타우로스 이벤트 결과 왕궁에 초대되어 가면서 그게 왕이 사는 왕궁인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왕인지조차 몰라 그저 잘 사는 집으로 착각하는 장면들은 명물입니다.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딸을 구해줬다며 왕은 주인공에게 검을 하사하는데 그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 채 하수구 청소에 쓰는 몰상식(아니 보통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을 이딴 곳에 쓰나?)은 귀엽기만 합니다. 의뢰를 받아 놓고 몬스터 하면 기초 중에 기초로 여겨지는 고블린조차 모르는 무지성(왕녀가 엄청 친절하게 설명), 그런 무지성은 사람을 용감이라 쓰고 착각하게 만들어 S등급 모험가 몇이나 들러붙어도 이길까 말까 하는 몬스터에 닥돌하는 용기를 부여하죠. 참고로 주인공은 모험가 취급도 못 받는 F등급, 이것도 어디냐며 좋아 죽는 주인공은 정녕 27세가 맞나?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민폐, 미노타우로스에게 습격 받아 죽을 위기에 처했던 왕녀(참고로 14세)는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들러붙어 어떻게든 제자로 들어가려는 모습은 아름답지가 않았습니다. 논리적인 설명보단 떼를 쓰는데, 주인공도 모험가가 되기 위해 양성소에서 수행 받으려 할 때나 길드에서 모험가 등록할 때 고래 심줄도 니가 이겼다 하며 도망갈 정도로 고집이 대단했죠. 왕녀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아주 그냥 천생연분이 따로 없어요. 아청법으로 잡혀가버릴 것이지(주인공 나이 27세).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주인공을 공짜로 왕녀 보디가드로 쓰려는 왕족들의 착각도 대단하고요. 근데 질이 나쁜 건 주인공 실력만큼은 착각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만 자신의 가치를 모를 뿐 주변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니까 주인공은 자신이 강하지 않다고 착각 있다는 것인데 이게 좀 안타까워요. 머리에 든 게 없으니 이 몬스터가 강한 건지 알 턱이 없고, 그러다 보니 그냥 닥돌하고, 주인공 하면 눈에 콩깍지가 껴버린 왕녀는 그걸 바로잡아줄 생각도 없이 주인공이 저놈은 잡몹이라고 하면 "넵!" 하고 수긍을 해버리니 이보다 더한 착각이 있을까 싶죠.
사실 스킬이 곧 그 사람의 평가가 되지 않았다면 12살에 모험가가 된 주인공은 비명횡사했을 것이고(무지성 때문에), 스킬이 곧 그 사람의 평가가 되는 세상이었으니 수행을 통해 27살에 최강이 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어쩌면 이런 세상이니까 주인공은 최강이 될 수 있었다라고 하는 나름대로 개연성은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실에서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머리가 비어 있으니 능력이 좋아도 바보가 된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인데요.
가령 독을 내뿜는 드래곤(주인공은 독 개구리로 착각)이 도시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걸 누가 봐도 알 텐데도 자신이 어릴 때 먹은 독버섯이 맛있었다는 걸 떠올리고 독드래곤도 맛있을 거라며, 도시에 납품하러 가는 줄 착각(이라 쓰고 바보라 읽는다) 하는 게 주인공입니다. 그걸 때려잡고도 납품(?) 하러 가는 마족 아이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일품이죠. 왕녀는 갈수록 주인공은 배우지도 못하는 스킬을 배운 게 아니냐며 착각의 산을 등정해대고요.
맺으며: 필자의 필력이 저주스럽군요.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잘 안되네요. 아무튼 이 작품은 착각물로서 등장인물 간 대화나 행동이 매우 자연스럽게 착각으로 이어지는 모습들이 일품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강하다는 인지를 못한 채 터무니없는 짓을 해대는데, 가령 S등급 모험가 몇이나 붙어도 이길까 말까 하는 몬스터를 때려잡고도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자각을 못합니다. 그렇다고 잘난 채 하는 것도 아닌 언제나 자신은 약하다며 낮추고 있으니 보는 이는 더 환장할 노릇. 27살 동안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는지 세상 물정은 12세에 멈춰 있는 듯한 답답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발암까진 아닌데, 닥치는 일은 언제나 잘 해결하고 있기도 하죠. 명확하게 설명이 힘든데, 머리는 모자라지만 착한 형 같은 캐릭터랄까요. 물욕도 없고, 권력욕도 없고, 그저 모험가가 되고 싶어 환장해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하수도 청소 같은 거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변태 시키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좀 더 언급해 보자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하더군요. 주인공을 두고 '저능아 무식한 놈'이라는 악평도 있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진즉에 절판 시키고 싶었는데 작가가 패리(쳐내기) 한 거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고요. 사실 필자는 2권 구매는 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주인공 나이가 10대였으면 좀 수긍이 갈 텐데 27살이나 돼서 몰상식의 정도를 벗어난 백지상태의 무지함을 자랑하고 착각을 해대니 이걸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 헷갈리더라고요. 자기 형편 좋게 상황을 끼워 맞추는 건 작품 특성이라고 여길 수 있겠는데, 픽션에서 논픽션을 찾는 것도 웃기지만 현실성이 너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