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왕녀 전하는 화가 나셨나 봅니다 6권 리뷰 -답답하다-
특대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결국 여주 '도로셀'을 콩쥐 볶듯 했던 가족들은 별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은 채 리타이어 해버렸습니다. 돈에 환장한 오빠, 명성에 환장한 부모, 언니에게 집착했던 여동생, 어릴 때부터 동생(여주)을 사지로 몰아넣은 언니,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금기에까지 손댔다 파멸해버린 약혼자. 전생에서 나라를 팔아먹어도 이런 취급은 안 받겠다 싶은 상황을 여주는 고스란히 다 받아내야만 했죠. 개과천선은 고사하고 끝끝내 정신을 못 차리고 불법을 저질렀던 가족들은 추방되고, 여주는 공작의 신분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어 버렸습니다. 다행인 건 왕(王)이 그녀(여주)의 능력을 높이사 추방만은 면하게 되었죠. 동시에 여주 주변을 맴돌며 여러 복선을 깔고 어릴 때부터 그녀의 인생에 뭔가 참견을 했던 거 같았던 흑막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여주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이제 가족 관련 에피소드는 끝나고 본격적으로 흑막과의 대립과 대결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이번 6권은 옆 나라 이리스 제국이 동맹을 파기하고 전쟁을 걸어오자 최전선에서 제국 군을 맞아 싸우는 여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 씬 자체는 별거 없어요. 왕국(여주가 사는 나라)군 보다 뛰어난 신문물 총으로 무장한 제국 군을 맞아 처음엔 다소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이내 여주가 제국 군의 총을 훔쳐 와 개량하여 되받아치면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죠.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쟁보다 그 전쟁을 일으키게 한 원흉이 누구이고, 그 원흉이 바라는 점이 뭔지, 여주는 이런 점을 파악하고 있나에 중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답을 열거해 보자면 답답할 정도로 여주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왕(王)과 왕자가 시키니까 나가서 싸우고, 사태를 해결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총을 훔쳐 와 개량에 나설 뿐, 자기 스스로 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왕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 내가 뭘 해야 될지도 몰라 학원에서 멍 때리고 있었던 게 여주였죠.
여주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만 듭니다. 가족이 몰락한 이면에는 그렇게 조종한 흑막이 있었고, 그 흑막이 여주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며 하고자 하는 일(마술 절멸)까지 밝혔다면, 그렇다면 이들이 마술이라면 치를 떠는 옆 나라 제국을 조종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인지, 제국을 움직인 존재가 누구인지 조금만 유추해도 알 수 있을 텐데도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는 장면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흑막은 어떤 사고를 계기로 여주에게 증오를 품고 있었고, 그녀가 쓰는 마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알기 쉬운 해답을 직접 들었는데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주는 굉장히 수동적으로서 누군가가 길잡이를 해주지 않으면 마냥 그 자리에 서 있을 인물로 비춰지는데요. 자신을 괴롭힌 언니가 추방되면서 자취를 감췄음에도 찾을 생각도 안 하고(정보가 여주에게 전달되었는지 가물) 그로 인해 언니는 아주 큰일을 터트리면서 여주의 목을 죄게 되죠.
맺으며: 뭔가 좀 신랄하게 비평하고 싶은데 요즘 자중하고 있어서 못 쓰는 게 안타깝군요. 아무튼 읽다 보니 갑갑한 게, 여주는 그냥 수동적인 인물이더라고요. 주어진 정보로 해답을 돌출하긴 하는데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알아보는 건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왕(王)이 전장에 나가서 싸워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가지 않았을 테죠. 노파심에서 써보자면, 전쟁에서 총을 주워와 개량하는 이런 거 말고 흑막에 대한 정보를 모아 거기에 대응한다 같은 행동을 말합니다. 흑막이 자신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데도 조사는커녕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들에서 솔직히 암 걸릴 뻔했군요.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으로 잘 헤쳐나가긴 했는데, 그 이상으로 무엇을 한다는 건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여주 정체도 여전히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호문쿨루스같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무슨 실험에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게 여주가 아닐까 하는 복선만 내놓고, 여주 남친으로 급부상 중인 '지크' 관련도 남편 환생이라는 복선을 일찌감치 내놨다면 회수라도 좀 하던가 긴가민가 같이 어중간한 복선만 깔아대니 몰입에 방해만 됩니다. 이번엔 여주처럼 '지크'도 만들어진 존재인가?라는 듯한 복선을 내놓고 실은 너는 어느 나라의 왕자다라도 하니 필자는 장난해?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고, 개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투신은 흥미진진하기라도 하나. 치트물처럼 종횡무진만 할 뿐. 흑막도 1천 년이나 여주에게 증오를 품을 정도로 1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사고가 그리도 중한가 했더니 단순히 책임 전가를 여주에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어이없는 전개도 그렇고, 진짜 오랜만에 화딱지 나는 작품을 만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