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초보 연금술사의 점포경영 3권 리뷰 -정신 안 차리면 눈 뜨고 코 베일 판-

현석장군 2022. 7. 28. 21:26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돈 없으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 이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 단어를 들 수 있는데요. 표지의 '돈이 없어?'도 사실 이런 맥락이죠. 이 작품에서 여느 판타지처럼 성녀가 나타나 다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보살펴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왜냐고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기 때문"이죠. 이 작품은 이런 설정을 넣으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1권에서 아이리스(히로인)와 케이트(히로인)라는 채집자(모험가)가 대수해에 들어갔다 마물의 공격을 받고 빈사 상태로 여주가 운영하는 연금술사 점포에 오게 됩니다. 연금술사는 포션을 만들어 팔아요. 부상자는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치료해 줄 수 없는 없습니다. 일단 살리고 봐야지 같은 나이팅게일 선서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건 이 세계에 없어요. 그래서 너 님들이 평생을 일해도 못 갚을 포션이 있는데 쓸까?라고 묻는 장면은 이x(여주) 돈독 제대로 올랐네 같은 감상을 가지기에 충분했죠.

하지만 저 말만 해놓고 설명이 없으면 여주를 돈독 오른 x이라고 욕할 수 있으니 변명 좀 써보자면요.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 세계는 교육의 부재가 있고, 거기에 거친 일을 하는 채집자들 사이에서 여주는 피죽도 못 먹고 자라서 어린애로 밖에 보이지 않아 얕보이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하거든요. 그래서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고, 더불어 내 행동(무료 봉사)으로 인해 동종업계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요컨대 쟤는 공짜로 주던데 너는 왜 공짜 아님? 이러면 대책 없잖아요. 왕명으로 금지해둔 것도 있지만요. 근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거기에 편승해서 받아낼 건 다 받아내려는 여주의 수전노 같은 성격이라 하겠습니다. 재료와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를 들어 공짜로 해주는 건 내켜 하지 않죠. 그런 모습에서 언젠가 등에 칼 맞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감상인데요. 그래도 다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못 본 척은 하지 않고 싸구려라도 포션을 만들어주긴 한다는 것이군요.

결국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포션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빚을 지게 된 아이리스와 케이트는 매일을 대수해에 들어가 소재를 채집해오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 이 둘은 벌꿀을 따러 갔다가, 가공해서 먹어야 함에도 독이 있는 원본 꿀을 무턱대고 시식한 덕분에 폭풍 설사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여주는 이 둘을 위해 정상적인 포션은 비싸서 안 되고, 벌레를 갈아 넣어 맛이 극악인 싸구려 포션 만들어 먹이는 모습이 참 일품이죠. 그녀 사전에 공짜는 없습니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건 폭풍 설사 중에 하나뿐인 화장실 쟁탈전이 벌어지고 쟁탈전에서 탈락한 쪽은 뒷마당 구석에서 쪼그리고... 돈 앞에서는 여자의 존엄이고 뭐고 없다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이때까지 접해온 작품들에서 찾을 수 없었던 쇼크를 선사하였군요(이후 싸구려 포션으로 나아지긴 함). 물론 이런 설정이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것이 아닌... 남의 불행을 유쾌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 따스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낯선 방문객이 찾아오면서 여주의 돈독 행각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아이리스 집안이 빚을 져서 몰락하게 생겼다는군요. 사실 아이리스는 귀족가 영애이고, 영주이자 그녀의 아버지는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영민을 보살피기 위해 빚을 내었던 게 화근이 되어 빚은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 상태였죠. 결국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빚 갚아주는 대신 정략결혼. 여기서 대비되는 게 있습니다. 여주는 철저히 무료 봉사를 외면함으로써 빚을 지지 않았고, 아이리스의 아버지는 무료 봉사 덕분에 빚이 늘어나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둘(여주와 아이리시의 아버지)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작중에서는 표현이 없지만, 돈독 오른 여주는 인간관계가 얄팍해지고, 아이리스의 아버지는 그 반대가 되겠죠. 아쉬웠던 건 작가가 빚덩이 설정을 만들면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같은 시사점을 넣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입니다.

맺으며: 딸내미도 거액의 빚이 있는데 아버지까지 찾아와 빚 얘기하니, 진짜 여주가 사람 착하게 살았다면 어땠을지(도와주다가 패가망신?)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여주의 수전노는 여주 자체를 살리는 길이었다는 걸 알리기도 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세상에서 패가망신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과정들은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라고요. 아무튼 이번 3권은 여주에게 향후 인간관계를 결정짓게 하는 분기점이 됩니다. 생판 남인 아이리스의 아버지를 공짜로 도와줄지 돈 받고 도와줄지. 물론 작중에 그런 집적적인 언급은 없고, 내 행동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바뀌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만 던집니다. 여주에게 있어서 손해를 안 보면서 인간관계도 잃지 않으려면 어떤 길이 최선일까. 아이리스와 케이트 둘과 같이 지내며 정이 들어버린 여주의 결정은, 3권에서 바로 답이 도출되었지만 이건 핵심 스포일러니까 언급은 안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점들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익혀야 될 사회성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건 그렇고 파스텔톤 같은 작품이라고 아기자기한 면만 있는 건 아니고 적대 세력도 꾸준히 나오는군요. 이건 다음에 언급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