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헬 모드 1권 리뷰 -아무래도 제목을 잘못 지은 거 같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작입니다. 사실 제목 때문에 구매를 엄청 망설였는데요. 시놉시스도 게임을 하다가 이세계로 전생하는,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설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더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L노벨(발매사)은 가끔 이런 우려에 허를 찌르는 작품을 내주고 있어서 이번에도 눈 딱 감고 구매했더랬죠. 다 읽고 난 소감은 '제목을 잘못 지었네'였습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게임 오타쿠 35세 노총각(동정인지는 안 나옴)이 온갖 게임을 섭렵하고 지금 하던 게임도 섭종에 이르자 새로운 게임을 찼던 중 마치 다단계 같은 게임사의 홍보 글자에 낚여 게임을 실행했더니 이세계 전생이더라라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동안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라노벨은 꽤 있었죠. 이 작품도 게임의 세계관이고 레벨과 스킬과 능력치(스테이터스)를 정석적이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없어도 살 수 있음).
그렇담 주인공의 능력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가게 되는 게임 세계관(이세계)은 강한 직업을 얻을수록 낮은 신분계급 밖에 고를 수 없어요. 이렇다는 설명을 다 들었음에도 주인공은 신룡 소환하면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소환사'를 선택했고, 소환사는 용사와 마왕보다도 더 강한 직업이라 신분 계급은 농노(노예보다 약간 나은 수준)밖 고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 그리고 난이도 설명을 들었음에도 헬 모드로. 요때까지는 자신이 이세계로 날려갈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겠죠. 유저 편의성에 집중된 요즘 게임 시장에 오만 정이 떨어진 주인공은 즐겨 보겠다고 헬 모드를 선택했고 헬 모드에선 레벨 UP이나 각종 스킬 수련이 극악의 수준으로 노멀 모드보다 100배는 더 노력해야만 하죠. 요컨대 도끼로 자기 발등 찍어버렸지만 이때까진 몰랐죠. 이세계에서 개고생 할 거란 것을요. 그렇게 스타트 했더니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시작하는 이세계 라이프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개는 허를 찔려 줬습니다. 보통 4~5살이나 15세쯤부터 시작하잖아요?
자, 그럼 여기서 '제목을 잘못 지었네'를 설명해야겠죠. 이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무직전생'을 들 수 있습니다. 작품 자체가 호불호 갈리지만 무직전생이 효평과 인기를 끄는 주된 이유는 가족애(愛)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농노의 자식(직업 때문에 신분 계급은 농노로 고정)으로 태어나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주인공은 일단 기본적인 가족 관계는 유지하였으나 어딘가 남일처럼 가족을 대했고 그러다 아빠가 크게 다치는 기점으로 비로소 가족이 무엇이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갑니다. 이후 자나 깨나 스킬과 능력치 연습과 고찰에 빠져 있었던 주인공이 정신 차리고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어른들이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리고 아빠가 다치면서 식량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영주에게 작물과 사냥물 6활을 세금으로 바쳐야 되는 등 농노의 삶은 꽤 비참하다는 걸 알아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자면, 이세계 전생했다고 단숨에 먼치킨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신룡을 소환하면 재미있겠다고 선택했는데 현실은 메뚜기와 벌레만 소환해대죠. 그것도 엄마의 발에 밟혀 힘 한번 못 쓰고 소멸되기 일쑤고요. 헬 모드로 시작해서 스킬 수련은 극악이고, 레벨 UP은 요원하기만 하고, 알고 봤더니 나만 헬 모드네? <- 사실 이게 백미입니다. 헬 모드라고 해서 이세계 모든 사람이 헬 모드가 적용된 줄 알았더니 주인공만 헬 모드죠. 그러니까 주인공만 100배 노력해야 되는 처지가 상당히 측은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이상(신룡 소환?)은 하늘을 뚫을 기세인데 현실은 시궁창(소환자 말도 안 듣는 메뚜기). 이점은 제목대로 이긴 하군요. 그리고 결정적이게도 소꿉친구인 '클레나(히로인)'는 직업이 검성이라는 것이고 이대로 성장하면 왕족에게 고용되는 특급 엘리트 코스이건만 주인공은 쩌리 취급. 그러나 '이세계에서 무쌍한다'는 부제목처럼 언젠가 주인공은 크게 성장하겠죠.
맺으며: 그렇담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 되었을까. 이게 참 어렵단 말이죠. 필자도 리뷰 쓸 때 도입부를 어떻게 쓸까만으로 2~3시간 고민한 적도 있거든요.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소환사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복선을 제법 있었습니다만, 작중 주인공이 겪는 스킬 수련이 헬 모드라는 점, 그리고 농노로서의 삶이 더해져 이 작품의 본질은 '헬 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스킬 수련, 농노의 삶)를 절묘하게 섞어 두기도 했고요. 결국 제목은 잘 지었다는 결론? 아무튼 완벽한 작품은 없다지만 좀 아쉬웠던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은 개척촌으로서 이제 생긴 지 몇 년 안 된 신생 마을이죠. 그럼 위생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아 사망률이 꽤 높을 텐데도 언급이 없다는 것(마법이 있는 거 같지만 마법사 고용할 돈이 없어요), 잡은 멧돼지를 해체하는 장면은 작가의 사전 조사가 미흡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멧돼지는 기생충의 온상인데도 이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마물이니까 없나?), 책벌레의 하극상이라는 작품에서는 집돼지를 잡는데도 여주는 기절을 해버렸죠. 위생 상태와 유아 사망률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었고요.
이런 작품에서 하렘이 빠질 수 없는데 특이하게도 이런 부분에서는 느릿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동갑 소꿉친구인 '클레나'는 오로지 칼만 휘두르며 걸핏하면 주인공을 찾아와 대련하자고 졸라댈 뿐이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영주의 딸 '세실'이 좀 부뚜막 고양이처럼 만나자마자 주인공에게 호감을 품는 거 같지만 어떻게 될지는 좀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이들 관계에서도 무직전생의 편린을 볼 수 있는데요. 주인공 '알렌'은 말할 필요도 없이 '루데우스(심지어 비슷한 나이에 전생, 아기부터 시작)', 클레나는 '록시(나중에 만나는 역할)', 세실은 '에리스(나중에 떠날지는 두고 볼 일)', 전개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이 영주의 시종으로 가게 되면서 클레나와 헤어지고 세실을 만나죠. 세실은 에리스만큼이나 말괄량이고요. 부모님으로 넘어가면 주인공 아버지는 무직전생의 아버지만큼이나 주인공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엄마의 존재는 좀 약했지만요. 요약하면 19금 요소가 없는 무직전생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아류작 같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흥미롭다는 뜻입니다. 무직전생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이 작품도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