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너와 나의 최후의 전장, 혹은 세계가 시작되는 성전 1권 리뷰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좋아하는 거냐, 아니냐. 사랑은 아니고 매료되었다? 상대의 신념과 아름다움에 반했긴 한데, 그것이 사랑인가?는 모르겠고 서로 의식은 하는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이것이 사랑인지도 모른 채,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에 아른거리고, 이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몰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일도 손에 안 잡힌다면? 이래서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짓는 감성 풍부한 애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안 된다니까요를 외치게 해주는 작품인데요. 필자 딴에는 마법이 접목된 SF 판타지인 줄 알았더니 견우와 직녀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는 러브 코미디 로맨스물이었을 줄이야라는 게 필자의 본심입니다. 사실 견우와 직녀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을 다루는 이야기로 러브 코미디나 로맨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죠. 그럼에도 이 비유를 쓴 것은 작중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관계가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비극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마법을 쓰는 마녀가 있고, 그런 마녀의 힘을 두려워해 사냥하여 죽이려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그 용사의 힘을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마왕으로 몰리는 것처럼,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죠. 예전에 한번 이런 주제로 리뷰한 적이 있습니다만. 마왕(마녀) 될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아이를 불길하게 여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차별당한 끝에 아이는 결국 마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그래서 마왕이 된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걸, 이 작품 속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습니다. 땅을 팠더니 솟아난 미지의 에너지 [성령]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초월적인 힘을 쓸 수 있게 된 이런 사람들은 마녀(남자는 마인)라 차별 당하며 박해를 받아야만 했죠. 결국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마녀들은 마왕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녀와 인간들 간 전쟁이 발발해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인공 '이스카'는 마녀를 박해하는 제국의 병사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과거 마녀에게 목숨을 구해진 이후 배웠던 것과는 다르게 마녀에 대한 인식을 고치게 되었고, 그 인식에 따라 전쟁을 끝낼 길을 찾고자 하죠. 계급은 병사이나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로서 "1년 전 어떤 불미스러운 일(2권 리뷰에서 언급)"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전장에서 여주 '앨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부끼는 드레스와 그녀의 미모에 한눈에 반해버리는 동정 같은 면모도 보여줍니다. 여주 '앨리스'는 마녀들이 세운 나라 '네뷸리스'의 제2왕녀로서 등장합니다. 이쪽은 마녀를 박해하는 제국을 쓸어 버리고 세계 제패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을 만난 이후 그의 동정 같은 면모에 이끌리고 그의 신념(전쟁을 끝내는 것)에 반하게 됩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시작될 것도 같았습니다만, 잊으면 안 되는 게 이 작품은 라노벨이고, 라노벨계에서는 퓨어 한 사랑보다는 코미디 같은 사랑이 더 먹히죠.
그래서 이 작품도 첫 번째 만남부터 싸우다가 발이 삐끗해서 히로인은 주인공에게 공주 안기를 당하게 되고 히로인은 얼굴 빨개진 채 도망가 버립니다. 이후 엇갈림보다는 마치 운명이라는 듯, 가는 곳마다 둘은 마주치게 되고 서로 의식해 가는 부분들이 한편의 러브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눈에 아른거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래서 도시로 나갔더니 마침 상대도 왔네? 같은, 그러나 둘은 맺어지지 못하는 운명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여주(제2왕녀)를 납치하여 인질 내세워 네뷸리스(國)로 하여금 평화 협상에 나오게 하려 하고, 여주는 남주를 부하로 삼아 내 사람으로 만들어 돌파구(전쟁 끝내기)를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어설픈 생각이었는지를 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겪으며 현실을 직시하여야만 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입니다. 애들(주인공, 여주 다 10대) 장난으로 전쟁이 끝날 거 같았으면 진작에 끝이 났겠죠.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맺으며: 작중에는 러브 코미디를 마구 찍어내지만 사실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신념이 같다(전쟁 끝내기)는 것에서 오는 동질감 같은? 그런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고요. 일단 전체적으로 보면 제국이 가해자이고 마녀의 나라 네뷸리스가 피해자임에도 이런 작품들이 다 그렇듯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모를 일들을 표현하며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둘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래서 감성이 풍부한 독자들에겐 꽤 먹히는 소재가 아닌가 싶군요. 다소 클리셰적인 장면들도 있지만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은 다 비슷하니까 넘어 가고요. 캐릭터들의 개성은 작가 '사자네 케이'의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이전 작품들을 좋게 봐온 분들이라면 쉽게 적응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주인공은 이전 작 '어째서 내 세계를~'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인상이 많이 흐리더라고요. 조금 더 치고 나왔으면 좋겠는데, 여주의 개성이 강해서 많이 묻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