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신은 유희에 굶주려 있다. 1권 리뷰 -즐겁게, 신나게, 밟자-

현석장군 2022. 9. 25. 18:21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유사한 작품을 꼽으라면 '노 게임 노 라이프'를 들 수가 있습니다. 주인공 남매가 각 종족들과 게임을 통해 사생결단을 치르는 것처럼 본 작품도 [신들의 놀이]라는 인간 vs 신(神)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죠. 하지만 승패에 따라 빼앗고 빼앗기거나,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거나, 죽거나 하는 건 없습니다. 그저 신(神)은 따분한 일상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인간은 10승을 거둬 신으로부터 소원을 쟁취하기 위해 대결을 벌여가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으로부터 '어라이즈'라는 어드벤티지를 받아 '사도'라는 직책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패를 하면 게임 참여 자격이 박탈될 뿐 불이익은 없습니다. 이미 이런 도락(道樂)은 고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작금에는 아이돌에 버금가는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하여 인간은 신과의 게임에서 승리할수록 부와 명예와 인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적(10승하여 소원 성취)보다는 과정(게임)에 더 목매는 결과를 보여주죠.

주인공 '페이'는 [이 시대 최고의 루키]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3승 무패를 기록하며 범상치 않은 두뇌 실력을 보여줍니다. 겨우 3승으로?라고 할 수 있으나 여기서 노 게임 노 라이프를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게임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죠. 물론 작중 설정이 그렇다는 뜻이고, 읽다 보면 딱히?라는 감상을 내놓게 됩니다. 한편 인간과 놀이에 심취해 바닷속에 숨었다 그대로 빙하기가 찾아와 매머드처럼 3천 년이나 냉동인간이 되어버린 신(神) '레오레셰(메인 히로인, 이하 레셰)'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됩니다. 필자가 웃기려고 과장하는 게 아닌, 진짜로 '둘리'처럼 얼음 속에서 발굴이 되죠. 시작부터 분기점을 맞습니다. 주인공 '페이'는 이름을 까먹은 '누나'를 찾고 있었는데 딱 '레셰'가 누나의 외모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신(神)은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으며, 신체 또한 인간의 형상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레셰'는 어째서 인간의 신체를 얻고 주인공 누나의 모습으로 발굴이 되었는가.

이렇게 발굴된 '레셰'또한 누가 신이 아니랄까 봐 게임 미치광이였고, 발굴되어서 첫마디가 '게임 잘하는 인간 데려와'였죠. 그래서 선택된 게 주인공이고요. 근데 그보다 선녀와 나무꾼처럼 옷이 감춰져 하늘로 못 올라가는 선녀도 아니고 신이면서 왜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가 또한 뭔가의 복선으로 다가옵니다(작중에서 이유 나오긴 하지만). 주인공은 어릴 적 게임을 가르쳐줬던 누나를 찾고 있고, '레셰'는 인간의 신체를 얻어 그 누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 '사자네 케이' 특유의 뒷일이 생각나지 않는 복선에 해당하죠. 선녀와 나무꾼에서 옷을 찾은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는 것처럼 '레셰'도 무언갈 찾으면 하늘로 돌아갈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레셰'는 주인공과 페어가 되어 신이 주최하는 게임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레셰'가 말하는 "해답"은 10승해서 소원으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는 하는데, 이렇게 담백하게 끝낼 거면 '레셰'의 외모를 주인공 누나의 모습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입니다. 뭔가 감춰진 게 있는 듯.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레셰'는 인간관계 특히 이성(性)적인 관계에서 상당히 무감각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속옷을 입지 않는다거나 주인공을 덮치라는 사무 관계자(한 다리 건너 히로인)의 말에 의미를 두지 않고(아이가 엄마와 자는 것처럼) 그렇게 할 거 같은 모습들은 흔히 라노벨 히로인 특유의 백치미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보통 자신이 오래 살수록 종족 번식 욕구는 약해진다는 것에서 고증을 잘 따른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영겹의 시간을 살아가는 신의 입장에서 종족을 번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런 쪽의 지식이 없을 거라는, 이건 참 높은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고 집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을 만나고 같이 다니면서 작은 가슴에 은근히 신경 쓰는 것 또한 그녀가 인간이 되면서 인간의 욕구를 점차 따르게 된 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도 있죠.

결국 본 작품은 신(神)의 위계를 가진 레셰가 인간의 신체를 얻어 인간으로 계속 있을수록 인간에 더욱 가깝게 되고, 그럴수록 주인공과 엮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러브코미디 같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히로인은 한 명만 있는 건 아니고요. 두 번째 히로인 '펄'의 등장으로 레셰는 상당히 긴장하게 됩니다. '펄'은 상당한 댕청미를 자랑하죠.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낭패 보기도 하고, 어쭙잖은 호기심으로 위기가 찾아 오기도 하고, 그런 거에 더해 신체적 특징까지. 그래서 '레셰'는 다른 의미에서 긴장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이는데 리뷰에서 언급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사실 필자는 '펄'은 내청코의 '유이가하마'의 포지션 느낌 나기도 했습니다. 할 땐 하는 실력은 있는데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그래서 주인공에게 속아서 게임의 성질을 알아내는데 동원되어 몸으로 고생하는 모습들을 보이죠. 이런 이야기들이 꽤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사실 본 작품의 설정은 게임이고, 그 게임에서 이겨 소원을 성취한다는 걸 기본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난해하고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뭐 이런 작품들이 다 그렇듯 주인공이 어떻게 해내는 게 특징이죠. 그래서 리뷰에선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기대를 받는 루키답게 머리를 많이 쓰지만 솔직한 감상으로는 노 게임 노 라이프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았군요. 아마 져도(defeat) 큰 페널티가 없다는 것에서 몰입도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 간 소통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레셰가 발굴되고 '신비법원'이라는 인간 측 관리 기구에 보호받을 때 게임하자며 깽판 치기도 하고, 주인공과 첫 대면에서조차 자기소개를 게임으로 하자며 게임에 홀딱 빠져 있는 등, 두 번째 히로인 '펄'의 댕청미와 합쳐져 하렘을 구성하고 모에성을 많이 보여주죠. 주인공은 이렇게 레셰와 '펄'을 조력자로 끌어들여 다시 게임에 나섭니다. 여기서 다소 트러블은 있지만 넘어가고요.

맺으며: 설정으로 보면 노 게임 노 라이프 순한 맛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선녀와 나무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레셰가 10승을 거두고 소원을 빌어 하늘로 올라갈까? 아님 그대로 지상에 남을까. 그러나 주인공은 10승을 하게 되면 그만의 소원을 준비 중에 있는지라 레셰와 연결이 될까? 그런 흥미가 있죠. 물론 읽기에 따라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 작품의 설정인 게임보다는 인간관계에 더 집중했군요. 그렇다 보니 주인공과 레셰는 선녀와 나무꾼, 주인공과 펄의 관계는 내청코의 주인공과 유이가하마의 느낌이 났습니다. 근데 뭐 사실 필자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고 레셰가 주인공을 이성으로서 의식한다든지 '펄'이 거기에 개입해서 흙탕물로 만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동료로서 힘을 모아 게임에 집중하고, 오로지 그걸 즐기는 모습만 보이죠. 그래서 현실 모든 일에도 적용된다는 듯, 과정(승리하여 인기 끌기)을 중시하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승패를 떠나서 게임 자체를, 놀이로서 즐기는 자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나는? 결국 레 세가 누나이지는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