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 마녀와 사냥개 2권 리뷰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뒷일은 걱정 말고 편히 쉬렴.
경고: 결말에 해당하는 매우 강한 스포일러 주의,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2권을 정의한다면...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쉬어도 좋아, 뒷일은 걱정 말고 편히 쉬렴. 너의 의지는 내가 이어받을게"
주군이 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 7명의 마녀를 모아 대륙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아멜리아 왕국에 맞선다.
주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델리리움(주군의 딸, 히로인)을 부탁한다, 나라의 미래는 너에게 달렸다.
가신에 배신자가 섞여 있다는 것을, 기사의 나라 뢰베가 아멜리아 왕국 수중에 떨어진 것을 모른 채, 마녀 '테레사리사'를 확보하려 기사의 나라 뢰베로 떠났던 영주 '버드'의 꿈은 사그라졌습니다. 처형되고 효수되어 저잣거리에 내걸린 주군(영주 버드)의 머리를 보며 주인공 '롤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59명이나 되는 사절단 대부분이 죽고 간신히 '델리리움'만을 대리고 기사의 나라 뢰베를 탈출한 주인공에게 천청 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주군 '버드'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이미 아멜리아 왕국 수중에 떨어졌다는 것을요. 그래도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주군의 딸을 보호하고, 마녀 '테레사리사'를 구슬려서 아군으로 확보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일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남은 것은 이제 주군의 뜻을 이어받아 마녀를 모으고 아멜리아 왕국을 물리쳐야 하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제어 불가능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마녀들을 규합할 수 있을까. 마녀 '테레사리사'는 기사의 나라 뢰베에서 왕비(메인 히로인이 유부녀)가 된 몸으로 나라가 아멜리아 왕국에 접수됨과 동시에 유폐된 것을 주인공이 구슬려 빼돌린 것입니다. '테레사리사'는 마치 늑향의 호로처럼 도도하면서 외로움을 타고 그러면서 거만하고 먹는 것에 약한, 주인공이 약속한 먹을 것에 낚여 그와 여행길에 오르지만 약속한 음식은 나올 기미가 없고, 적이 나타날 때마다 싸워야 하는 손해만 보는 히로인이 되고 맙니다. 그럴 때마다 주인공은 사죄의 말을 올리고, 먹을 것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끝끝내 이뤄지지 않습니다.
주군을 잃고, 나라를 잃고, 집에 돌아오니 집은 잿더미로 변해있고, 가족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사의 나라 뢰베에서 싸우다 중상 입은 건 아직 다 낫지도 않았고, 델리리움은 아멜리아 왕국의 마술사에 의해 혼수상태고, 마녀(테레사리사)는 먹을 것만 찾고, 주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지키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태생이 암살자로서 먼치킨처럼 무쌍을 찍을 수도 없는 리얼 로봇계 같은 주인공으로서는 하늘이 노랗다는 건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하는 그런 시추에이션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케어해주는 것도 없고,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 주는 이도 없고,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기사의 나라 뢰베에서 지켜야 될 주군을 지키지 못했고, 구해야 될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메이드가 울며 '동생을 왜 구해주지 않았는데'라는 말은 주인공의 미래를 결정짓는 거와 같았습니다.
"마음이 마모된다는 것"
두 번째 마녀 '눈의 마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북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아멜리아 왕국에서 '아홉 사도'라는 마술사 한 명도 쫓아옵니다. 마술사는 그 한 명만으로도 커다란 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아홉 사도는 재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멜이아 왕국이 대륙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는 그 이면엔 아홉 사도가 존재합니다. 영주 버드는 이런 마술사에 대항하기 위해 마녀를 모으려 했습니다. 이제 그 꿈은 주인공이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주인공과 마녀 '테레사리사'는 눈의 마녀를 만나 교섭을 합니다. 그런데 약간 클리셰적이지만 쫓아온 아홉 사도가 난입하여 교전에 들어갑니다. 여느 이야기라면 간신히라도 악의 축을 물리치고 정의를 구현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밝히지만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기대도 없습니다. 그저 가슴 먹먹함과 슬픔만이 존재하죠. 처절함이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이미 기사의 나라 뢰베에서 마음이 꺾였습니다. 재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아홉 사도와의 전투에서 손쓸 사이도 없이 주군의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주군의 딸 델리리움은 혼수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암살자로 키워지고 주군에게 헌신하도록 교육받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이제 주인공의 종착역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7명의 마녀를 모아 아멜리아 왕국에 대항하고 나라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군의 뜻이기에, 주인공은 용사가 될 수 있을까? 아홉 사도는 마녀 '테레사리사'와 눈의 마녀가 합세해도 중과부적입니다. 이건 못 이깁니다. 아홉 사도는 세상의 이치를 벗어났습니다. 주인공은 고립무원에서 그래도 아홉 사도에 맞서 열심히 싸웁니다. 열심히 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애썼다고 말은 듣지 못해도 주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델리리움을 보호하고 나라를 구하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못다 핀 꽃"
주인공은 꽃봉오리입니다. 꽃봉오리는 끝끝내 피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힘껏 싸웠다. 애썼다. 이제 됐겠지. 용서해 주시겠지. 부디, 칭찬해 주세요. 버드(주군) 님.
마지막으로 뻗은 손은...
주인공의 의지는 마녀 '테레사리아'와 '눈의 마녀'가 이어받습니다.
맺으며: 한 며칠 가슴 먹먹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힐 듯합니다. 아니 꿈도 희망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1권 리뷰를 다시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작품이었나 싶을 정도로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것을 떠안고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오로지 주군이 남긴 마지막 부탁을 관철하기 위해 불가능한 승리에 도전하지만 끝끝내 그 벽은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충격이 장난 아닙니다.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일까요.
그럼 마녀 테레사리사가 주인공이었던 것일까요. 주인공이 자신의 나라를 되찾는 것처럼 마녀도 기사의 나라 뢰베를 되찾기 위해 주인공과 손을 잡았지만, 매번 적이 나타날 때마다 주인공에게 휘둘리면서도 마음 약하게 도와주는 그 이면엔 주인공이 안고 있던 고뇌와 망가진 마음을 엿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솔하게 부탁하고 가진 거 하나 없으면서도 무리한 약속을 하는 그에게서 연민을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의지를 이어받아 여행길에 올랐을 때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번 2권을 읽고 있다 보면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뒷받침하듯 작가의 필력이 매우 수준급입니다. 아멜리아 왕국의 마술사들을 언급할 때는 일본 특유의 가령 원피스 같은 느낌을 받게 하지만, 주인공이 북쪽으로 향하면서 연출하는 장면들은 미국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웅장함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지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좋다고 할까요. 거기에 주옥같은 대사가 몰입도를 엄청나게 올려줍니다. 그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스포일러이기도 하고, 귀차니즘도 좀 있어서 일일이 언급하기 힘든 점을 양해 바랍니다. 필자의 리뷰를 많이 봐온 분들이라면 필자가 이렇게 추어올리는 작품은 몇 없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매사는 어서 빨리 3권을 내놓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