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12권 리뷰 -수단에 먹혀버린 목적-

현석장군 2023. 1. 23. 19:16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빼앗긴 와이프를 찾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이 클라이맥스로 진입합니다. 반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마물에게 팔을 물어 뜯기는 고통과 심연에서의 공포를 견디며 오로지 복수만을 꿈꾸었던 주인공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유에(히로인)'. 사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유에는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나락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그녀에게서 동질감을 얻었고, 같이 여행을 하며 주인공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주인공의 응석을 다 받아주는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으니까요. 사설이지만 그래서 본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여타 영화나 만화, 소설에서 여자 친구나 와이프를 잃은 주인공이 복수를 이루어가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성을 잃었을 때 남은 한쪽은 무엇을 해야 하고, 그 길이 옳은 길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주인공은 이런 물음에 언제나 가시밭길을 가며 해답을 제시하죠.

다만 이번 12권은 아쉽게도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왕성에서 유에를 빼앗기고 배에 바람구멍이 났던 주인공은 철저한 준비를 거치고 신(神) 에히트가 있는 신역에 가고자 하는데요. 하지만 이런 액션물이 다 그렇듯, 쫄따구부터 해서 중간 보스들이 나타나 주인공을 막아서게 되고, 그럴 때마다 주인공의 일행들이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넌 먼저 가를 시전하죠. 그래서 그동안 질질 끌어왔던 어쩌면 신(神) 에히트보다 더 악랄한 '에리'를 처단하기 위한 반 친구들의 눈물겨운 사투와 그동안 주인공에게 발렸던 마족 '프리드'가 파워 업하여 나타나자 주인공은 먼저 보내고 진짜로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하는 토끼 귀와 변태 용, 이렇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져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정말 대단했던 게 작가만의 스킬명이라든지 동작 하나하나에 세세한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텍스트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작가의 필력을 엿볼 수 있었군요.

하지만 너무 힘을 준 것일까요. 얘네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목표는 있지만 어느새 그 목표보다 싸움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란한 스킬과 캐릭터들의 움직임 등 표현력은 대단했으나 싸우면서 이 싸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지,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중단할 생각은 없는지, 만악의 근원 '에리'와 싸우는 반 친구들은 '에리'를 제정신으로 돌린다고는 하지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팬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목적(에리를 개과천선 시키기) 보다는 현란한 싸움에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리'는 가정폭력을 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성격이 파탄 나면서 일그러진 성격이 되어 버렸죠. 이세계로 소환되면서 그 일그러진 성격 때문에 많은 반 친구들과 이세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기보단 너와 다시 대화해 보고 싶다는 둥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둥...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내가 곁에 있어줄게 같은 동질감을 갖게 하거나 공감을 해주기 보다, 상대의 내면에 감춰진 상처를 감싸기보다, 그 상처를 알려고 하기보다, 그냥 그 상처를 싸그리 무시하고, 에리가 저질렀던 범죄 또한 무시하고 예전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는 식의 이야기들에서 내가(필자) 뭘 보고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범죄의 이유에서 불우했던 가정이든 과거든 그것은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 캐릭터에게 그런 불우했던 과거를 가지게 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면 죗값 또한 달게 받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올바른 길이고요. 불우했던 과거는 집중 조명하면서 죗값을 치르는 대목은 왜 하나도 없는 걸까요. 서로 이해하려는 모습 또한 없습니다. 결국 흔한 악당의 최후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요.

근 400페이지 중 절반에 가까운 지면을 할애하고도 에리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대화하고 싶다고만(이런 짓 그만두라는 식), 친구니까 등등 위선적인 친구들(주인공 일행)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지메를 보는 듯했습니다. 내(에리) 마음을 몰라주는데 마음을 열리가 없잖아요. 결국 다굴엔 장사 없다고, 반 친구들의 집중 공격에 에리는 최후의 선택을 해야 했고, 그때까지도 마음이 통한다는 메시지보다는 친구 타령만, 근본적으로 상대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 에리가 왜 그런 길로 가야만 했는지 하는 이해보다는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해 대화하고 싶어 하는 반 친구들(주인공 일행)의 모습에서 이기적인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결국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에리는 사그라져야 했고, 마지막까지도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군요.

맺으며: 요컨대 감정의 이입과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공감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에리'는 신(神) 에히트보다 더 악랄한 캐릭터면서 되레 이 작품에 있어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죠. 중2병에 특화된 작가에게 공감 같은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요. 아니면... 리뷰에 있어서 정치적인 이야기나 일본인들 특유의 정신문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뭐 지면이 부족해서 작가가 표현을 못다 했을 수도 있겠다고만 해두겠습니다. 아무튼 프리드와 싸우는 토끼 귀와 변태 용(드래곤)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액션씬으로 크게 어필할 만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가가 상상력을 총동원했는지 현란한 싸움을 보여주는데 액션이라면 이게 정석이지 하는 느낌을 받게 하죠. 여기엔 상처받은 마음이나 이념 등은 없고 오로지 강자만의 싸움만을 보여주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무난하게 읽혔습니다. 아무튼 다음 13권이 완결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