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던만추 외전 -아스트레아 레코드- 1권 리뷰 -그녀들이 걸었던 길-

현석장군 2023. 2. 27. 19:35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작가는 후기에 서적화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게임 '메모리아 프레제'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텍스트화라는 말도 안 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것도 1권으로 끝나는 게 아닌, 3권 완결(권당 대략 4-- 페이지)이라고 하니 그 작업량은 어마어마했겠죠. 필자는 게임을 안 해봐서 내용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적화된 주 내용은 엘프 '류'가 과거에 몸담았던 [아스트레아 파밀리아] 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본편 주인공 '벨'이 오라리오로 오기 7년 전이라고 하는군요. 7년 전은 오라리오의 [암흑기]로서 이블스라는 사악 집단으로 인해 오라리오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는 시기입니다. 흑룡 토벌에 실패한 [제우스]와 [헤라] 파밀리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강대했던 두 파벌의 공석으로 인해 그동안 숨죽여 지냈던 이블스가 오라리오 멸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본격 대두하면서 정의와 질서를 관철하려는 사람들의 절망을 잘 그려내고 있죠.

본 작품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습니다. 본편에서 주인공 벨에게 류는 자신의 과거를 밝혔죠. 하지만 지나가는 식으로 전해졌을 뿐 무엇이 일어나고 [아스트레아 파밀리아]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었습니다. 그 행적을 [아스트레아 레코드]에서 류의 시각으로 진행이 됩니다. 사실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들이 무엇을 하든 미래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작가는 이들의 행적에서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상당한 초점을 맞춥니다. 정의란 곧 질서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악(惡)은 곧 힘이기에 정의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죠. 오라리오를 사람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정의라면 그걸 깨부수려는 마음 또한 정의가 될 수 있다는 걸 역설합니다. 그 과정에서 '류'는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정의가 무엇인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선(정의)의 대척점이 악이고, 선(정의)이 질서라면 악은 그 반대. 질서가 당연하다면 악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작가가 풀어놓는 선악의 구분은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블스에 의해 오라리오는 불바다로 변해가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강박증에 가까운 정의를 관철하려는 류에게서 갈대라기 보다 우직한 나무를 보는 듯했습니다. 우직한 나무는 태풍에 부러지는 반면에 갈대는 쓰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이 있습니다. 만약 류가 갈대였다면 [아스트레아 파밀리아]의 미래는 바뀌었을까요. 사람들의 생명을 짊어지려 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몸을 혹사하고 그렇게 생긴 빈틈을 사신(死神)이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사신은 류에게 묻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요. 류는 원론적이고 정석적인 대답을 합니다. 사신은 다시 묻습니다. 구해진 사람들에게서 감사의 말이 없어졌을 때도 정의를 관철할 수 있는가? 여기서 슬픈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냅니다.

맺으며: 어떻게 보면 던만추라는 작품에서 가장 비참하고 장렬한 싸움을 그리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꿈과 희망이 있었던 어제가 오늘 그 꿈과 희망이 무너지고, 어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길거리는 오늘 피가 낭자한 그로테스크가 되는, 사망 플래그를 뿌리는 대로 거둬지고, 그 플래그에서 [아스트레아 파밀리아]도 비켜가지 못하는 장면들에서 슬픈 엔딩을 예고합니다. 그렇기에 손바닥에 올려진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필사적으로 정의를 관철하려는 류가 안타깝기 그지없게 되죠. 사실 리뷰는 류의 입장에서 쓰긴 했습니다만, 류가 속한 [아스트레아 파밀리아]만이 아닌 본편 외전에 나오는 파말리아들이 총출동합니다. 당연하겠죠. 오라리오가 붕괴되냐 마냐니까요. 그럼에도 이블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에서 이것들 빙구 봉다리만 모아놨나 싶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블스의 사태는 소드오라토리아에서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본편보다 소드오라토리아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있는데, 사실 이 [아스트레아 레코드]는 소드오라토리아의 비기닝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로키 파밀리아]가 생고생하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분위기"가 소드오라토리아에 맞춰져 있을까 기대를 하였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점에서 약간 실망. 그러나 그것을 날려버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본편보다 소드오라토리아에서 더 많은 활약하는 '아이즈'의 출전신. 붕괴되는 오라리오를 구하기 위해 '핀'이 비장의 무기로서 그녀를 선택했고 그에 응하는 단 한 장면, 그뿐이지만 그 임팩트는 소름이 돋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거기에 [아스트레아 레코드]에서 레코드가 가지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몰입도는 최상이 됩니다.

맺으며: 오랜만에 칭찬한다 싶지만 서적화에 시간이 촉박했는지 다소 불완전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파밀리아들을 등장시키려다 보니 정작 액션신과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에서 다소 미흡한 점들이 보입니다. 그렇게 많은 선(정의)의의 편 파밀리아들이 있으면서 이블스에 대한 정보 수집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좀 있고요. 그래서 철저하게 당한 후 되갚아주기 시작한다 같은 클리셰를 만들어 버리게 되는, 뒷얘기가 상상이 되어서 다소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게 좀 있습니다. [아스트레아 레코드]라고 가슴에 와닿는 작명을 했으면 그에 따라 류와 동료들이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데에 더 집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싸우고 지키는 데만 급급한 장면들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어딘가 쫓기는 듯한 흐름을 보여주게 되고 그로 인해 '레코드'라는 의미가 희석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군요. 반격에 나서는 2권을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2권부터가 그녀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