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 9권 리뷰 -거미가 거미인 이유-

현석장군 2024. 8. 11. 02:33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마족령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던 마의 산맥을 넘다가 만난, 고블린 -> 오거로 진화했던 남학생(반 친구이자 전생자, 이하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흡혈녀 '소피아'는 격침, 신화를 거치며 이세계 시스템에서 튕겨 나 평범한 인간이 된 여주(거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실을 뽑아낸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겼었죠. 고블린은 이후 어디론가 가버렸고, 여주 일행은 드디어 마족령에 당도합니다. 일단 당면 목표가 마족령이었긴한데, 막상 도착하니 뭘 해야 하나. 평범한 인간이 된 여주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될 상황이지만 그나마 실 뽑기 덕분에 밥 벌이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실이 질겨서 방어구로 쓸 수 있다나요). 흡혈녀 소피아는 아기 때부터 같이 지내온 면면이 면면인지라 정서불안을 안고 있었죠. 이에 마왕은 그녀에게 예법을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 정서 안정을 꾀합니다만 효과는 미미할 걸로 보여졌습니다. 이미 성격은 고착되었고, 지금 한창 미운 7살이거든요. 아기 때부터 길러준 여주에게 엄마라고 불러도 좋으련만 알고 보면 둘이 나이는 같죠. 보살핌 받았다는 자각은 있는지 여주가 안 보이면 걱정 정도는 해주는 착한 딸이기도 합니다.

 

 

진화의 끝을 달려 귀인인지 뭔지로 진화한 고블린의 이야기. 여주와 싸우다 그녀가 일으킨 얼음 붕괴에 휘말려 산 아래로 굴러간 고블린은 여전히 분노 스킬에 먹혀 앞뒤 분간을 못하고 닥치는 대로 살육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흡혈녀 소피아가 반드시 없애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느 작품이었다면 남자 주인공 자리는 꿰찼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죠. 그러나 무의미한 살육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관리자의 개입이 시작되지만, D(사신)의 간섭으로 이도 저도 못하다 결국 여주에게 오더가 넘어갑니다. 이쯤 여주는 원래의 힘을 되찾게 되지만, 찾게 되는 과정이 너무 어이없어서 설명은 생략하고요. 그녀가 나선 이상 두 권에 걸쳐 진행되었던 고블린의 이야기도 싱겁게 끝이 납니다. 여기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게, 고블린이 분노 스킬에 먹혀 폭주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개연성을 넣어 두었다는 것, 그로 인한 인간은 가해자이고 고블린이 피해자라는 선악의 구분, 관점을 달리하면 여타 작품에서 모험가에게 사냥 당하는 고블린의 심정을 십분 헤아릴 수 있는 설정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리뷰에선 많이 다루지 않았던 D의 이야기. 이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상위 관리자(神)이자 이세계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 고대 시절 여러 종족이 치고받고 싸우는 통에 망가져 가던 별을 접수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안정을 꾀했던 사신. 여주를 거미로 환생 시켜 개고생하게 하고 그것을 보며 재미있어하는 변태.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세계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희생 시키는 걸 마다하지 않는 냉혹함. 여기서 엘프가 왜 관리자들을 배척하려는지, 선생님이 왜 전생자(반 아이들)들을 보호하려는지 윤곽이 잡힙니다. D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이세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희생 시키려 하죠. 고블린 사태를 키운 것도 D의 의향이 들어가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희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게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개입한 끝에 여주를 투입해 사로잡게 하였죠. 그래서 이 작품의 최종 보스는 D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D는 너무나 오래 살아서 뭘 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늘 새로운 걸 갈구하고 있었죠. 최소한으로 이세계를 유지하고, 그 대가인지 재미를 추구하는...

 

 

맺으며: 거미가 거미인 이유. 여주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여주는 D에게서 출생의 비밀을 듣습니다. 1권부터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지금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순응하고 살아야 하는 여주가 안타까웠군요. 이세계로 전생하기 전부터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고(정체는 스포일러라서), 죽고 나서도 D에 이용당하고, 이세계에 넘어가서도 티비 개그맨처럼 열심히 D를 웃겨 주어야 했던 광대 같은 여주. 힘을 되찾고 D와 독대하고도 자신의 정체가 정체였기에, 되레 전생 시켜준 걸 고맙게 여겨야 하는 이 기분은 자신의 감정일까 심어진 감정일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D는 자신의 책무를 다한 여주를 없애기보다 앞으로도 계속 티비 개그맨처럼 광대 역을 바란다는 것. 하지만 이세계는 붕괴 중이라는 것. 여주는 D가 만든 이세계 시스템에서 벗어났기에 D의 개입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다른 이들은? 이세계 시스템에 충실히 따르려는 마왕은 전쟁을 준비 중이고, 엘프는 이세계 시스템을 없애기 위해 준동하고,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게 D가 재미를 위해 계획한 세계관이라면?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9권이었군요.

 

 

아무튼 매 권마다 리뷰가 다르게 작성되는 듯한데, 필자의 머리가 녹슬어서 판단과 분석을 제대로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이전까지 엘프와 선생님을 나쁘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아닌 게 아니라 엘프 족장의 행동은 글자 그대로 악당인데?). 이번 9권에서 D의 행동과 성격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행동은 선은 아닐지언정 관리자들을 배척하려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세계 하위 관리자들이 D(상위 관리자)의 뜻에 무조건 동조하는 건 아니었기에 관리자들이라고 해서 뭉텅 그려 나쁘다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9권에서 단지 D의 능력이 너무나 넘사벽이기에 하위 관리자들은 대들지 못한다고 역설하고 있기도 하죠. 다만 이전에 보여주었던 서슬 트릭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로 하여금 가령 저쪽 길이 맞다는 것처럼 진행하다가 진짜 길은 이쪽이라고 하는 특징이 있는지라, 정말로 D의 성격이 그러한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반 아이들을 말려들게 하여 이세계로 전생한 원인도 지금은 D의 입장에서만 풀어놓고 있는지라, 이번 여주의 정체처럼 또 뒤통수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직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위에 것만 쓰면 칙칙해 보이니까 좀 더 개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낯가리는 여주를 짝사랑하는 마족이 등장합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으면서 동정인지 자꾸 엇나가는 게 소소한 재미로 다가오죠. 참고로 그는 여주의 집을 태운 두 번째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주의 집은 여주의 역린이죠. 오랜만에 대미궁에 갔더니 자식들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엄마(여주)를 반기는 새끼 거미들이 귀엽죠. 근데 인간화된 여주가 인간하고 맺어지면 태어나는 아이는 인간의 아이일까 거미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미줄(실)은 왜 손가락에서 나오는 걸까, 거미일 때는 엉...에서 나왔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인간형이 된 지금의 여주에게 거기까지 표현하기는 무리였나 봅니다. 소피아는 미운 7살이 되어 반항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여주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잔소리하고, 안 보이면 안 보인다고 잔소리하고. 자고 있는 여주 방에 쳐들어가 억지로 깨워 예법 훈련을 시키지 않나, 마왕과 여주가 그렇게 찍지 말라 했던 스킬을 찍어 어이없게 만들고, 그로 인해 향후 마돈나가 되어 학교 남학생들 후리고 다니지나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