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인피니트 덴드로그램 2권 리뷰
주인공 '레이'가 완전 다이브형 온라인 게임 Infinite Dendrogram에 접속한지 1주일, 게임내에서는 3주일이 지났습니다. 시간 참 안 가는군요. 여튼 무대는 왕도 알테어에서 결투 도시 기데온으로 넘어갑니다. 레이는 레벨 0으로 접속하자마자 NPC 릴리아나 여동생을 구해주며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이더니 알테어에서 퀘스트를 위해 결투 도시 기데온으로 넘어가다 UBM(필드 보스) 갈드랜더를 쓰러 트리며 또다시 쪼랩 주제에 기행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드롭 템으로 얻은 장염 수갑은 2권을 위한 복선이었다는 걸 2권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는군요.
기데온에 도착하여 장염 수갑의 능력을 알아보다가 자기가 발현한 불에 구워질뻔하고 독에 걸리고 그걸 풀어준다고 지나가던 펭귄이 건넨 물약을 먹고 개의 귀가 솟아나는 등 다사다난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다 시내에서 우연찮게 남동생을 찾아달라는 어떤 누나의 퀘스트를 받게 된 레이는 또 우연찮게 '유고'와 '큐코'와 파티를 짜고 산적 소굴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하지만 거긴 범의 아가리였고 개미지옥이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들어가게 된 레이와 유고 파티는 무사히 아이들을 구출하나 싶었으나...
이번 테마는 귀여움과 성장, 뜬금없지만 순백의 큐코의 귀여움이 상당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정하고 그렸는지 속 컬러 일러스트에서 만두를 두 손으로 잡고 먹는 장면은 오타쿠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잘 그려놨습니다. 거기다 꽤 지독한 독설가 속성이 더해지다 보니 계속해서 등장한다면 상당한 팬을 거느리지 않을까 했군요. 그런 그녀 옆에서 시비 거는 듯한 칠흑의 네메시스(참고로 네메시스는 대단한 먹보)의 모습도 상당히 귀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가가 이걸 살리지 못합니다. 독설을 내뱉는 큐코와 그게 못마땅한 네메시스가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다가도 곧장 죽이 맞아서 같이 행동하는 모습은 초반뿐이라는 것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재와 환상의 그림갈에 나오는 안나처럼 큐코도 손가락 욕도 좀 하고 저질스러운 개그도 좀 했더라면 유쾌할뻔하였는데도 이걸 살리지 못해 엄청 아쉬웠습니다. 중반을 넘어서면 아예 출연도 안 합니다. 그래놓곤 나라의 명운을 거는 복선을 투하하는 등 종잡을 수 없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3권이 꽤나 기대된다고 할까요.
그리고 성장, 사실 이게 이번 2권의 핵심입니다. NPC 릴리아나의 여동생을 구해주고 갈드랜더를 쓰러 트리는 등 쪼랩이면서 나름 선방하며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출하는 퀘스트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했고 레이는 빈사 상태에 몰려갑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무원에서 레이는 보스와 싸우다 크게 다치게 되고 네메시스가 레이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는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발버둥 치는 모습은 조금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깨어난 주인공에 의해 보스 처단이라는 클리셰 발동은 덤...
타입 메이든의 떡밥, 유저들의 무기가 되는 <엠브리오>는 4가지 타입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메이든 타입입니다. 몹 속성의 인간형이 아닌 글자 그대로 인간형인 메이든 타입은 매우 극소수라고 하죠. 네메시스는 메이든 타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저 하나당 하나의 <엠브리오>만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이 메이든 타입을 받은 유저는 또 다른 <엠브리오>를 습득할 수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고 주인공 레이에게 로리 <엠브리오> 출연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와 버립니다. 이 부분에서는 역시 라이트 노벨답다 싶었군요.
게임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주인공, 사실 구분 못한다기보다 사람이 여리다고 해야 할까요. 레이는 쪼랩이면서 1주일 동안 벌써 3번이나 큰 퀘스트를 받아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티안(NPC 총칭)은 유저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고 한번 죽으면 유저와 다르게 다신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점등을 들어 현실을 빗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아온의 키리토와도 비슷하다고 할까요. 생명의 소중함은 영혼이나 데이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그걸 인식하는 유저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엠브리오> 타입 메이든이 발현하는 조건이 바로 이런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메이든 타입은 극소수라고...
어쨌건 이번 2권의 단점을 좀 써보자면, 기승전결 부족을 들 수가 있습니다. 보스급 티안이 두 명이 있었다지만 단순히 엑스트라였던 산적들이 뭉처서 최종 보스가 되고 주인공 레이가 쳐부수는 과정을 지리멸렬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레이의 성장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도서 분량 거의 2/3를 소모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더군요. 요컨대 라이트 노벨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요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레이의 과거를 언급하는 부분도 엄청 길어요. 이 부분도 두 번째 <엠브리오> 출연을 위한 복선이자 주인공이 각성하기 위한 재료였다고 해도요.
1권이 나름대로 괜찮았길래 2권을 아무 의심 없이 구매했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랄까요(필자의 주관적인 느낌). 이런 점은 일본 작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제 끝났겠지 하며 안심하고 있는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며 전형적으로 이야기를 늘여가는 타입이라는 것에서 짜증을 불러온다는 것이군요(이것도 필자 주관적인 생각). 이야깃거리가 곤궁했던 것일까요. 작전을 짜고 신중한 것은 좋은데 그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 너무 깁니다. 큐코와 네메시스의 귀여움이 좋았긴 한데 후반에 이러니 맥이 다 빠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