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늑대와 향신료 1권 리뷰

현석장군 2017. 5. 27. 19:42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풍작의 신(神) 늑대 호로와 행상인 로렌스가 만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을에서 인간 남자의 부탁을 받아 몇백 년이나 보리의 풍작을 관장했던 호로는 인간들이 더 이상 자신을 필요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호시탐탐 마을을 떠날 기회만 엿보던 호로는 마침 마을에 들렀던 로렌스의 마차에 숨어들게 되죠.


그리고 마차 짐칸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호로를 발견한 로렌스는 기겁하게 되고요(이때 호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 로렌스는 여차저차 말을 나누다 그녀가 자신의 고향인 북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걸 알아 갑니다.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에 로렌스는 호로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호로는 로렌스가 장사하는데 도움을 주겠노라 하면서 계약은 성립, 이로써 부부 사기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여행이 시작되는데요.


로렌스 상인으로써 업그레이드를 시작하다. 현랑 호로라는 살아 있는 신(神)이 붙으면서 로렌스는 그동안 용케도 사기 안 당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걸 연출하기 시작합니다. 로렌스 입장에서는 대등한 거래라 여겼던 것이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호로, 그리고 거짓말을 간파하고 배짱이 두둑한(라고 쓰고 사기 치기) 호로의 덕분에 로렌스는 다른 상인들과 거래하면서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도 하고 예전엔 꿈도 못 꿨을 은화 절하에도 뛰어들기도 합니다. 


호로의 도움으로 한몫 잡아서 고향이든 어디든 자신만의 가게를 가지고 싶었던 로렌스, 하지만 세상사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듯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기 마련이라며 호로에 관련된 정보 차단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화를 자초합니다. 중세 시대를 모티브로 한 이 세계에서 교회는 절대적이고 교회가 신봉하는 신(神) 이외엔 전부 이교도인 세상에서 풍작의 신이라도 교회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나 마찬가지, 호로는 풍작의 신의 이름에 걸맞게 로렌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과 동시에 이교도라는 사슬을 얽매어오기 시작합니다.


현랑 호로 대지에 서서 외로움을 외치다. 인간을 위해 수백 년이나 보리밭에 매여 살아왔던 그녀, 이젠 그녀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인간, 신(神)이라는 타이틀에 부족함 없는 현명함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는 늑대의 후예가 실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눈물이 많은 그저 평범한 소녀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젠 없어져 버렸을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숙취에 고생을 하는, 로렌스 머리 꼭대기에 앉아 가사롭군만 외치던 그녀는 작은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입는 그저 연약한 소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방님 간이 커지게 해주시옵소서' 호로의 정체가 들통 날까 전전긍긍하는 로렌스를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습니다. 사과를 정말 좋아해서 로렌스가 사주지 않을까 안절부절 눈치 보는 호로, 그것을 재미있다 바라보는 로렌스, 이것이 모에성을 끌어올린다는 것처럼 호로의 귀여움을 잘도 표현 해놨더군요. 작디작은 체격으로 부성애를 자극하여 로렌스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그러다 외로움에 사무쳐 품을 파고들고, 거래 관련으로 끙끙거리는 로렌스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러다 정체가 발각되어서 쫓기면서도 남편을 위해 끝까지 싸워주기도 하고 곁을 지키는, 언제부터인지 정이 들어버린 모습도 보여줍니다. 


거래 등 경제 관련은 사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포함해서 이 작품의 매력이긴 한데 더욱 매력인 것은 머리가 안 돌아가는 로렌스에게 길을 제시하며 상인으로써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호로가 매우 인상적이죠. 그리고 로렌스와 지내며 그동안 사무쳤던 외로움을 풀려는 호로의 귀여움이 돋보이고요. 괜히 오래 살지 않았다는 것처럼 문득문득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매력입니다.

맺으며, 이번 1권은 시대의 변화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지만 그동안의 은혜를 잊고, 땅을 풍요롭게 하려는 신의 이해를 몰이해로 되받아치는 인간, 이젠 필요 없다며 쫓아 내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라도 그리워하는 호로, 외로움을 잘 타는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싶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동정 로렌스, 그런 로렌스를 가지고 노는 호로 등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상당히 많아 시간 가는 줄 몰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