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책벌레의 하극상 제2부 1권 리뷰 -양지와 음지-

현석장군 2017. 6. 2. 20:53

 

5살 되기 전에 반드시 죽는다는 신식을 앓고 있었던 마인은 신전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신식이란 몸 안에서 마력이 폭주하여 먹히는 병으로 완치되는 일은 없고 길드장 손녀 프리다가 그랬듯이 오로지 마술구라는 기구에 마력을 덜어내는 것뿐이었는데요. 하지만 방법을 알았다고 해도 평민인 마인의 집안이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라 마인과 가족은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려왔습니다. 이게 참 뭉클하게 하였군요.(1부 3권)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던가요. 어찌어찌 마술구를 보유하고 있던 신전에 청색 무녀 수습으로 들어가게 된 마인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원래 신전의 우두머리 신전장에 의해 강제로 잡혀가셔 마술구에 마력만 집어넣는 셔틀로 이용될뻔 하였지만 마인의 아버지 권터의 결사적인 저항과 가족을 해치려는 신관 무리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마인의 폭주로 죽다 살아난 신전장과 신관장은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원래 귀족만이 될 수 있는 청색 무녀 수습으로 그녀를 앉히게 됩니다.


여기서 설명 들아가자면, 신전은 마술구에 마력을 집어넣어 필요한 일에 쓰고 있었는데요. 이 마력이라는 게 귀족만 쓸 수 있었고 정변으로 많은 귀족이 숙청되자 신전에 남아 있던 귀족이 고향으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마술구에 마력을 넣어줄 귀족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마력을 가지고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방대한 양을 가진 마인이 눈앞에 있으니 신정장의 눈이 뒤집히게 되었죠. 거기다 마인은 평민이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했다가 마인에게 된통 당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평민에서 귀족으로의 삶을 시작하는 마인에게 델리아와 길 그리고 프랑이라는 시종이 배정됩니다. 하나는 신정장의 첩자, 하나는 신전에서 내로라하는 악동, 하나는 신관장의 첩자, 이들과 신전에서 일을 해나가야 하는 마인,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나 아무렴 어때요. 했지만 역시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트는 델리아와 길에게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귀족의 삶을 몰라 좌충우돌도 많이 겪어 갑니다. 고지식한 절차에 짜증 나고, 평민이 귀족 행세한다는 못난 소리를 많이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라노 시절의 경험과 어른이었다는 관록으로 델리아와 길을 구워삶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행동에 태클을 걸며 이마에 핏대를 세우는 신관장(신전장 아래 계급)에게 끊임없이 지적 당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신관장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인, 과연 생활계 먼치킨 주인공답다 했습니다. 읽다 보면 이 과정이 참 귀여워 죽습니다. 마인이 뭔가를 하면서 꼼지락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덩달아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설교를 해도 마인을 미워하지 않는 신관장까지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헉헉대는 통에 늘 누군가가 안아서 이동시키는 건 여전하고, 지적 당하면 날 말하는 게 아닐거야라는 투로 고개를 획 돌려 딴청 피운다던지, 쓸데없는 말로 사업 기밀을 줄줄 흘리는 통에 벤노의 머리털을 다 빠지게 한다던지, 이번 에피소드는 마인의 귀여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게 뭐라고 같은 구간을 두세 번 읽게 되었군요. 웬만해서 필자는 이런 말 안 하는데 귀여움만으로 이 도서를 구입할 이유로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여튼 신전에서 생활하며 그동안 주로 벤노에게 안겨 이동했던 것이 프랑으로 바뀌고, 루츠가 그동안 마인을 돌봤다면 길이 그 자리를 장악해가는 등 변화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관장의 일을 도와주며 입지를 늘려가던 마인은 급기야 신전 부설 고아원의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요. 그리곤 곧장 고아원 개선에 나섭니다. 그런데 위 귀여움이 양지라면 이 부분은 음지입니다. 옛날 왕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채우던 수라간 궁녀같이 청색 신관이 먹던 음식으로 연명하던 고아원은 처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청색 신관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당연히 이들이 먹던 음식으로 연명하던 고아원은 밥을 얻어먹을 수 없게 되었죠. 거의 마인편으로 돌아선 신관장조차 이 부분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부를 해주는 청색 신관이 없어 적자운영되는 신전에서 입을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되었고, 못 먹으면 죽는 것이 당연하고 죽여서라도 고아들의 숫자를 줄여야 된다는 신관장, 당연히 현대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마인은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힘닿는 데까지 개선해가는 게 좀 찡합니다. 똥과 오줌으로 칠갑되어 기어 다가오는 아이의 표현은 정말 끔찍했군요.


어쨌건 생활계 먼치킨인 마인이 할 수 없는 건 없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개선과 개혁으로 아이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는 대목에서 문득 이것도 이세계 침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양계장이나 돼지 사육처럼 주는 먹이에만 기대어 살아가던 아이들을 씻기고 교육해 자신의 공방 직원으로 만들어가는 대목 또한 복잡 미묘했습니다. 그리고 '일하면 밥이 늘어나' 하는 대목은 당연하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어릴 때부터 이런 사회생활을 익히게 하는 것도 어딘가 씁쓸했군요.


맺으며, 귀여움과 끔찍함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마인과 몇몇 어른들이 이제 막 걸음을 배운 아이가 내 앞에서 아장아장 걷는 듯한 귀여움을 보여줬다면 한쪽에서는 중세 시대 때 그랬듯이 귀족의 명령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평민, 고아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도 성인으로 성장한 여자 고아들을 성 노리게로 삼는 귀족들의 역겨움, 똥과 오줌으로 범벅이 된 공간에서 돼지처럼 키워지고 있는 고아들의 처절한 삶, 그리고 이들을 양지로 이끄는 성모 같은 마인이 엮여 혼돈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했군요.


하지만 작가는 심각하게 가지 않으려는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진 않습니다. 처음에 꽃을 바친다길래 필자는 무덤에 바치는 줄 알았군요. 원서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순화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여튼 이전부터 간간이 느끼긴 했지만 이제 5살쯤 되었고 외견으로는 3살쯤인 마인이 벤노나 신관장같은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