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책벌레의 하극상 제2부 2권 리뷰 -애정, 그리움-

현석장군 2017. 6. 9. 19:12

 

신전에 들어가 귀족만이 될 수 있다는 청색 무녀 견습이 되어 만사형통 순항을 거듭하는 마인, 신전 부설 고아원의 원장이 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거둬들여 먹이고 씻기며 일 거리를 줘서 자립의 길을 걷게 하는 것도 순항 중에 있습니다. 시종을 두 명 더 들여 평민에서 귀족의 품위를 배우며 껍질뿐이지만 귀족으로써의 행동거지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가니 엄마가 셋째의 소식을 전해오고 마인은 동생에게 줄 동화책 제작에 들어가겠다는 등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이번 2부 2권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인에게 닥칠지 모를 암울한 미래인데요. 마력을 가진 자들끼리 2세를 가질 수 있다는 특이한 설정 때문에 마인이 귀족들의 씨받이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1)이 부각됩니다. 거기에 2세는 모(母)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방대한 마력을 가진 마인의 경우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나요. 하지만 아직 마인이 어린데다 자주 쓰러져서 돈이 많이 들어갈 거 같아 귀족들에게 노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시간문제라고, 그래서 소문이 옆 마을까지 퍼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복선이 나와버렸습니다. 


두 번째로는 책 만들기와 고아원의 겨울나기 입니다. 우라노가 마인의 몸에 깃들고 3년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부단한 노력 끝에 종이를 만들고 드디어 책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잉크도 만들고요. 여전히 생활계 먼치킨답게 꼼지락거리며 잘도 만들어냅니다. 책을 향한 마인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고아원의 겨울나기, 없는 돈 탈탈 털고 고아원 아이들에게 공방에서 종이를 만들게 해서 파는 등 이쪽으로도 부단하게 노력합니다.

 

세 번째는 신관장과 마인의 미래에 대한 복선입니다. 미래라는 건 신관장과 마인이 서로가 이끌려 맺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눈에 보이면 짜증 나고 안 보이면 그것대로 걱정되는 걸 이걸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처럼 신관장과 마인의 관계는 참 독특합니다. 마인을 청색 무녀 견습의 자리에 앉힌 건 신관장(2)으로 그는 마인에게 귀족으로써 품위를 배우게 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데다 조잘조잘 거리는 마인 때문에 언제나 두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내다 보면 고향이고 싸우다 보면 정이 든다고 했던가요.


20살의 신관장, 7살(추정)의 마인, 키잡물이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인은 행동거지를 귀족에 맞춘다고는 하지만 평민이 하루아침에 그럴 수는 없는지라 늘 신관장은 그런 그녀의 행동거지에 태클을 걸고 마인이 뭔가 일을 저지르면 비밀의 방에 소환해 잔소리하는 게 일입니다. 하지만 계급사회의 절대적인 수직관계가 원칙인 세계에서 껍질은 귀족이라도 언제든 평민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인이 원래라면 귀족(신관장)과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없는데도 대등하게 대해주는 신관장에게서 사람으로써의 됨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 마주치기만하면 지적질에 눈을 홀기며 싫은척하면서도 열심히 마인을 챙겨주는 신관장의 츤데레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거기에 마인은 자신의 기억을 보려는 신관장을 오히려 기억 속으로 초대까지 하는 것에서 신관장을 향한 그녀의 신뢰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보통 기억을 본다고 하면 경계나 싫다고 하는 게 보통이 건만, 이것은 마인에게 있어서 시종 몇 명과 고아원 아이들을 제외하면 온통 적 밖에 없는 신전(3)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곳이라면 신관장 정도라는 것을 조금식 알려가기 시작하는 대목이 아닐까 했습니다.


후반부 신관장이 예사롭지 않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마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기억 속에 들어가서 보게 되는, 그녀가 안고 있는 전생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걸어온 길, 그녀가 얼마나 책을 좋하는지, 전생의 집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전생의 엄마에게 이별의 말도 못하고 죽어버린 죄를 고하는 장면은 정말 애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봐버린 신관장의 정신적 대미지를 치료해주려는신관장을 안아주는 장면 또한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맺으며, 일상생활 이야기로 2/3을 차지하다 보니 이 작품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으면 많이 식상하지 않을까 합니다.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도 이때까지처럼 같은 레퍼토리에서 조금 더 진화했을 뿐 크게 벗어나질 않습니다. 꿈은 창대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며 주변과 타협도 하고 좌절을 보이기도 하는 등 의미 없지는 않는데 역시나 먼치킨 계열이다 보니 특성상 말하면 이뤄지는 게 조금은 지루했군요.


여튼 이제 꿈에도 염원하던 책을 만들었고, 기반도 닦았으니 남은 건 신관장과 마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여성향이라서 그런지 밴노도 그렇고 마인은 은근히 성인 남자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아버지나 오토, 밴노에 이어 신관장의 관심을 받게 된 마인, 토론베 토벌 때 마인을 괴롭히던 귀족 기사들에게 그녀는 내 보호 아래에 있으니 죽고 싶지 않다면 건들지 말라고 공언해버린 신관장, 자신의 기억을 보고 정신적 대미지를 받은 신관장을 꼬옥 안아주는 마인, 일상생활로 3/2나 되는 분량을 갉아먹었던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신관장과 마인이 메꿔줬다고 할까요.


 

  1. 1, 마력은 귀족만의 전유물, 하지만 간혹 마인이나 프리다처럼 신식이라는 마력을 가진 평민의 아이도 태어나는 듯
  2. 2, 청색 무녀나 신관은 귀족만이 될 수 있음, 평민인 마인의 경우 부모님을 해치려던 신전장을 죽일려다 타협점으로 신관장이 제시한 것
  3. 3, 평민이 귀족만이 될 수 있는 청색 무녀 견습이 되었는데 좋아할 귀족따윈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