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나는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 5권 리뷰
음... 표지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어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써보자면, 신(神)들에 의해 세계가 정체되지 않도록 스파이스 역할로 만들어진 일곱(7명)의 마왕이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는 순간 그 마왕들의 폭주를 막을 제어 장치로 여덟 번째 마왕도 모습을 들어낸다. 여덟 번째 마왕은 존재 자체만으로 무한의 시간을 살아가는 마왕들을 유한의 시간으로 속박하며 그 생명을 갉아먹는다. 가 마인족에서 내려오는 구전(?)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두 번째 마왕으로 인해 첫 번째 마왕의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마침내 첫 번째 마왕이 모습을 들어낸 순간 일곱의 마왕은 완성되었고 구전(?)에 따라 여덟 번째 마왕도 모습을 들어 냈습니다.
이전에 얼핏 복선이 있어 왔으니 다들 아시겠지만 라티나가 여덟 번째 마왕이 되었습니다. 병균 같은 일곱의 마왕을 치료할 백신으로만 존재 가치가 있는 그녀를 해(害) 하기 위해 일곱의 마왕은 그녀를 소환하게 되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라티나는 이별의 말도 못하고 데일과 떨어지게 되는데요. 그동안 애써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라티나의 적극적인 구애와 더불어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데일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여 그녀를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데요.
딸에서 연인으로, 누가 보면 막장 집안인 줄 알겠군요. 8년 전 일족에게서 추방 당하고 숲 속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아 있던 소녀를 데려와 극진히 보살핌을 베풀었던 데일,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진작에 그를 이성으로서 마음을 품고 있었던 소녀, 애틋한 마음이 교차하고 엇갈리고 진실된 마음에 한 발짝 다가가기를 머뭇거렸던 지난 나날을 뒤로하고 드디어 둘은 맺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행복한 시간들뿐이라 여겼는데 운명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련을 던지는데요. 마왕들의 폭주를 제어할 기구로써 존재하는 라티나를 죽이기 위해 모두 모인 그 자리에 소환된 라티나가 받아들인 운명은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보다 그와 자신이 인연을 맺어온 모든 사람들이 마왕들에 의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걸 두려워한 그녀가 선택한 건 영원한 봉인, 자신의 희생으로 그와 인연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 탈 없이 살아가기를 바랐던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제세상을 만난 마왕들의 폭주가 시작되고,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볼 데일이 아니죠. 용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판타지의 정석처럼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반려를 데려간 마왕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 지금 마왕보다 더 마왕스러운 용사로 인해 누가 인간족이고 누가 마왕인지 헷갈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실 마왕들과의 전쟁은 그냥 서브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요. 개중엔 얼굴도 못 비추가 산화해가는 마왕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라티나를 빼앗겼다는 증오만 있을 뿐, 모든 걸 구축해버리겠다는 것마냥 마왕들을 사냥해가는 데일은 오로지 라티나의 탈환만을 생각합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것도 모른다더니 한번 마음에 라티나라는 불을 지펴져버린 데일은 거침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왕들이 불쌍해질 판인데요. 실제로 불쌍한 마왕들도 나옵니다. 모두(마왕들)의 뜻에 따라 영민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조했다곤 하나 그 죄는 없어지는 게 아닌지라, 데일이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뿐...
그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곳...
그렇게 마왕들을 무찌른다.라고 쓰고 도륙해가며 만난 두 번째 마왕, 첫 번째 마왕을 죽이고 첫 번째 마왕의 운명까지 타고난 아이까지 죽여버린 로리 모습 광녀와의 전투 직전에 만난 두 번째 마왕 권속인 '보라색 여신관', 라티나가 '모브'라고 불렀던 그녀는 데일을 두 번째 마왕에게 인도하며 한가지 요청을 합니다. "저를 죽여 주세요."라고.. 이전에 로제를 붙잡은 두 번째 마왕 에피소드 때 로제를 도망치게 해준 그녀에게서 얼핏 라티나의 생모가 아닐까 하는 복선이 나왔었죠. 그러나 그녀는 말하지 않습니다. 라티나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왜 죽어가면서도 예언에 따라 자신의 앞에 나타난 데일에게까지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는지 첫 번째 마왕을 만나 그 사정이 드러나면서 정말로 기구한 운명과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며 그녀에게서 사랑하는 소녀의 실루엣을 느낀 데일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그녀의 정체를 파악합니다. 두 번째 마왕의 권속이 되어 살아도 산 게 아닌 채로 지옥처럼 살아가던 그녀는 예언 속의 인물을 만나 죽음이라는 구원을 받는 이 장면은 필자가 접한 수백 권의 라노벨과 수천 권을 만화책을 통틀어 제일 크게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더욱 먹먹함에 박차를 가한 건 일러스트였는데요. 데일이 받쳐 든 손에 기대어 온화하게 숨을 거두는 그녀의 표정을 그린 일러스트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먹먹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NTR, 모든 마왕들을 도륙하고 마지막으로 대망의 첫 번째 마왕을 대면하는 데일, 어째서인지 이공간에 봉인되어 있을 라티나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니는 잠옷을 입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는 라티나, 데일의 손길에 눈을 뜬 라티나가 첫번빼로 한 말은 '크리소스?' 크리소스는 첫 번째 마왕의 이름, 데일의 머리엔 ???만 뜹니다. 지금 라티나가 전라나 다름없이 침대에 있는 상황과 사랑하는 소녀의 입에서 자신이 아니라 증오하는 마왕의 이름이 나왔어요. 일반적인 남자라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추악한 것이겠죠. 사랑하는 반려가 잠자리에서 남의 이름을 불렀다고요. 눈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하죠.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왕과의 전쟁은 조무래기이자 아무것도 아니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것마냥, 제목이 그렇긴 하지만 이 작품은 마왕과의 전쟁이라는 암울한 것이 아닌 이런 알콩달콩한 일상물이잖아?라는 것처럼 정말 흥미진진하게 돌아갑니다. 빡 돌아버린 데일은 곧장 첫 번째 마왕의 처소까지 한 다름에 달려가 문답 무용으로 칼을 휘둘렀더니 뭐야 이거? 또 뜻밖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이고 NTR이 시작되는 줄 알고 정말 몇 안되게 손에 땀 쥐고 봤는데 그럼 그렇지 일상물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흘러가진 않겠지 하며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군요.
첫 번째 마왕의 등장으로 라티나의 집안 내력이 공개됩니다. 8년 전 라티나가 왜 아버지랑 같이 숲에 있어야만 했는가는 두 번째 마왕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이전 대의 첫 번째 마왕을 죽이고 그 후대까지 죽여버린 상황에다 살육이라는 놀이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마왕에게서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될 라티나는 두 번째 마왕의 좋은 놀잇감이 될 수 있었기에, 이 모든 걸 내다본 보라색 신관(모브)은 딸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 마왕의 권속이 되어 딸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머나먼 고생이라는 길에 딸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모정이라는 감정을 이리도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카카로트(손오공)의 아비가 죽어가면서 아들이 프리져와 마주하는 장면을 보았듯이 그녀(모브)는 데일과 라티나 그리고 첫 번째 마왕과의 해우를 보았을 것입니다.
첫 번째 마왕의 정체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 작품의 최대 스포일러나 다름없거든요. 다만 해피하게 흘러간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상물이니까 그리 심각하겐 흘러가지 않아요. 다시 만난 라티나와 데일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노라는 듯 서로가 보다듬고 꼭 껴안고 있는 장면은 시기와 질투의 느낌보단 애잔함과 애틋함이 먼저 몰려왔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소녀와 사랑하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앞으로 달렸던 청년의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마다하지 않는 애틋한 어머니의 마음은 두고두고 먹먹함을 간직하게 했습니다.
맺으며, 글이 상당히 길어졌는데 넓게 보면 키잡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제 와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같은 마음뿐이군요. 데일과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는 라티나의 구구절절한 마음은 한편의 시와도 같고, 그녀를 구하려는 데일에게서는 불새 같은 격정을 느끼기도 하였군요. 물론 라이트 노벨답게 내가 바라는 것처럼 되었네? 같은 마니악 한 부분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 읽고 나서 가슴에 남은 건 몇 번이나 언급한 라티나의 어머니 관련 에피소드군요. 짧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데일에게 딸을 맡겼다는 안도감, 그리고 죽음이라는 구원을 받아 숨을 거두는 그녀의 일러스트는 앞으로 상당기간 잊히지 않을 듯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