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태양을 품은 소녀 2권 리뷰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글이 좀 깁니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좀 강하게 들어가 있어요. 싫으신 분은 뒤로하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노엘이 몸담고 있는 코임브라 주(州) 태수(太守) '그롤'은 차기 황제가 될 거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고 있다가 치고 올라오는 동생의 견제를 물리치지 못하고 결국 분에 못 이겨 먼저 펀치를 날리고야 맙니다. 옛부터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든 없든 먼저 때린 놈이 지는 거라는 명언(?)을 외면한 채 동생을 치기 위해 그롤은 군사를 일으키는데요. 사람은 인덕과 시대를 잘 타고 나야 된다는 건 그롤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취임하자마자 금광이 메마르고 무역로가 바뀌게 되면서 영지는 쇠락 일직선, 궁핍해진 백성들에게서 그롤은 졸지에 역적 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죠.
거기에 제1황자라는 위치상 왕좌의 자리를 놓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벗어 날 수 없는 그런 입장이다 보니 쇠락해가는 영지는 좋은 빌미가 되어 갔죠.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것마냥 동생이 개구리가 봄에 깨어나 뛰어오르듯 튀어나와서는 형님, 왕좌는 내가 접수해야겠소! 이러니 헤까닥 꼭지가 돌아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습니다. 으르렁거리는(주로 형인 그롤이) 아들들의 싸움에 중재를 해야 될 황제는 절벽에서 떠밀어 기어올라온 놈만 기른다는 사자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결국 동생의 계략에 빠져 출병하게 된 형은 어(魚)군을 이끌고 그물로 뛰어드는 형국이 되어 버립니다.
노엘은 그롤의 휘하에서 백인장(중대장급)의 직책을 맡아 종군하게 되었어요. 인간병기로 길러지다 불량품으로 제거되어 버려진 무덤 웅덩이에서 기어 나와 일찌감치 버려진 동기들의 썩어가는 몸뚱어리를 보며 그녀는 생전 그들과 다짐했던 행복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란군에게서 태수의 부인과 아들 엘가를 구해주고 나아가 태수까지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졸지에 장교라는 엘리트 코스에 올라버린 그녀는 사실 이 상황이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어요. 그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꼭 찾겠다고 엘가와 죽어버린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지죠.
그런데 보통 일당백의 주인공만 있다면 전쟁은 어떻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뭐더라 어떤 작품에서는 수백의 병사로 수만의 포위하는 포위 섬멸전이니 뭐니 하며 한때 인터넷을 달구는 일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그런 거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분명 노엘은 인간병기로 길러져 일당백의 실력이 있고 작중에서도 포위 섬멸전 같은 가능성을 보여 줘요. 그곳에서 억지로 배운 군사학등 그녀에겐 전쟁에 관련한 지식이 매우 풍부하죠. 냉철하게 판단하는 두뇌와 몇수를 내다보는 해안 등 분명 그녀라면 양 웬리처럼 전장의 판도를 바꿨을 겁니다. 하지만 무능한 상사에겐 무능한 부하 밖에 없다는 진리를 이 작품은 설파하고 있죠.
장교가 되었다곤 해도 일개 사관일 뿐인 그녀의 발언권은 개미 눈물만큼도 없어요. 빤히 보이는 그물에 어군을 이끌고 들어 갈려는 주군인 태수에게 이대로는 승산이 없으니 전격전을 펼쳐야 된다는 직언했다가 주변(주로 상관)으로부터 바보 취급이나 당할 뿐이었죠.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가차 없어요.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죠. 그게 아무리 영웅이라도요. 운명이 그리 정했다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 사람은 닥쳐봐야 운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돼요. 자신이 그때 무엇을 잘못 했는지 깨닫지만 언제나 때는 늦죠. 태수 그롤은 붕괴하는 자신의 부대를 보며 그때 왜 노엘의 직언을 듣지 않았을까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버스는 떠난 뒤가 됩니다.
그전에 자신의 무능과 다혈질도 한몫했고 사람 보는 눈도 없었다고 해야겠죠. 믿었던 부하들의 배신을 접한 태수 그롤은 궁예의 기분을 맛봐야 했을 겁니다. 그나마 왕건은 백성들을 위한다는 진실된 마음이라도 있었지, 이건 사리사욕에 눈이 먼 부하들에게 배신 당했으니 그 기분은 참으로 yeot 같았을 겁니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시대의 흐름과 운명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것마냥 이제 남은 부대라곤 노엘 밖에 없는 시점에서 시대는 그녀에게 가혹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억울하다 분하다고 울부짖을만 하건만 그녀는 엘가와 죽어버린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오히려 목놓아 울고 맙니다.
능욕당할뻔한 자신을 구해준 노엘을 친동생처럼 돌봐 주었던 신시아, 세상 살아가는 지식은 있음에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노엘을 다잡고자 매일을 조마조마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고생도 끝을 고합니다. 노엘은 마치 다나카 ~나이=여친 없는 역사인 마법사~에 나오는 에이션트 드래곤 크리스티나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언제 그녀가 배빵을 날릴지 몰라 다나카는 전전긍긍하는 나날을 보내죠. 하지만 잘 구워삶으면 더 없는 아군이 되는 그녀(크리스티나), 다나카 역할이었던 신시아로부터 자신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걸 알아버린 노엘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맺으며, 1권 후반부부터 나오긴 했지만, 신캐릭터 리그렛의 독설이 재미있습니다. 노엘의 부관으로 왔음에도, 노엘과 그녀가 광산에서 제압해 부하로 들인 흰 머리당 패거리와 매일 독설을 주고받는 모습은 시종일관 우중충한 이야기에서 활력소나 다음 없어요. 일명 츤데레라는 녀석이랄까요. 아버지에게서 무관심이라는 것만 먹고 자라 자신의 존재 가치에 혼동을 느꼈던 리그렛, 아버지로부터 노엘을 감시하라는 버림말이 되어 지내다 아버지에게 진짜로 버림받고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그녀가 노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회계하며 눈물 콧물 다 쏟는 장면은 이 작품의 최고의 백미죠.
어쨌건 전혀 그럴 낌새는 없지만 필자 나름대로 유추해보자면 이제 프롤로그가 끝이 난 게 아닐까 했습니다. 왕좌를 놓고 벌인 이번 전쟁은 사실 새로운 왕좌를 놓고 벌일 더 큰 전쟁의 서막 같다고 할까요. 태수 그롤은 왕의 그릇이 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엘가는 싹수를 보여주었죠. 그리고 엘가는 노엘과 약속한 것이 있어요. 행복이라는 키워드, 노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고 하였으니 접점만 만들어 놓고 이대로 끝내진 않을 거라 봅니다. 노엘의 부하들도 건재하고... 이웃 영지의 무관과도 복선을 만들어 놨으니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에 노엘과 같은 곳의 출신들과의 접점도 있고요. 어서 빨리 3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PS: 리뷰 쓰다 보면 가끔 재미있나 하고 문의를 해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점수를 주자면 10만 점점에 9.5점이랄까요. 그래서 구입해도 되나? 솔직히 책임은 못집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요. 필자는 정말로 재미있다면 재미있다고 쓰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글을 읽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지만, 재미있다고 구입했는데 코드가 맞지 않는다며 괜히 불똥을 날려댈 수 있거든요. 자기가 판단해 놓고 화풀이를 하는 꼴불견은 안 봤으면 좋겠군요. 이런 일은 거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