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회복술사의 재시작 2권 리뷰
예전에 어느 만화 리뷰에 달린 어떤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만화는 용사의 피를 잇기 위해 각국의 왕녀들이 몰려와 차례로 동침을 한다는 건데요. 용사는 왕녀들을 맞이해 허구한 날 그것만 해대요. 그래서 보다 못했는지 댓글 중에 '용사의 거기는 아다만티움 광석으로 되어 있는가'라고 해서 실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 매일을 동침하면 복상사로 죽지 않는 한 거기가 망가질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네 조선시대 이전 세계나 중세 시대 왕족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작품도 이와 비슷해요. 용사는 체액을 통해서 타인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죠. 여기엔 남자, 여자 구분이 없어요.
그래서 주인공 캐얄은 첫 번째 생에서 죽도록 빨리기만 했죠. 거기에 배추에 소금 뿌려 절이듯 약에 절여져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용만 당했으니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리고 회복술사(힐러)는 마법사는커녕 천민에도 못 낀다는 온갖 부조리를 당해야 했고요. 그렇게 살다 갈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어떤 힘을 손에 넣어 두 번째 생을 시작한 게 지금입니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생과 같은 일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죠. 반격의 서막이라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첫 번째 생에서 자신을 갈궜던 왕녀 프레아를 개조(?) 해서 동료로 만들고 빙랑족(늑대족)의 세츠나를 두 번째 동료로 맞아들였는데요.
그런데 이 주인공이라는 녀석 말입니다. 첫 번째 생에서 그런 일을 허구한 날 당해서 트라우마가 있을 법도 한데 둘을 맞이해서 매일을 그것만 해대요.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평들이 이런 쪽으로 만 몰려 있으니 꽤 심각하다 할 수 있죠. 거기에 세츠나는 우리 나이로 12~3세, 이거 아청법 괜찮은 건가요. 물론 대의명분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용사의 체액은 타인의 한계를 초월하게 해서 멈춰버린 레벨을 올려주는 능력이 있거든요. 왜 하필 체액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로는 미미하고 정X이 확실하다나요. 그걸 핑계로 허구한 날 해대니 언젠가 적에게 맞아 죽는 것보다 복상사로 죽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아직 맨정신일 때 처음으로 회복술을 시행했던 왕국 제일 가는 검성 크레하를 맞이해 또다시 그의 업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크레하는 자신의 유파가 사람 죽이는데 이용된다는 것에 괘심해 하며 주인공의 뒤를 밟아온 거까진 좋은데 그녀 성격 자체가 하나를 믿으면 맹신으로 빠지는 구석이 있어서 친애 마지않던 왕국의 어둠을 알고 나서는 개조(?)를 하지 않아도 냉큼 주인공의 동료로 들어와 바로 그 행위로 이어지는 장면은 순간 동인지를 보는가 싶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미약이라는 꼼수를 쓰긴 했지만 미약의 효과가 떨어져도 계속해서 주인공 곁에 있는 거 보면 주인공에게 걸리지 않아도 어느 못된 기동 서방에 걸려 고생 꽤나 할 거 같더라고요.
그렇게 왕국에 크레하라는 첩자를 심어놓는 등 조금식 반격의 기회를 잡아 가요. 주인공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왕국 멸망,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게 이쪽 세상사라고 지금은 프레이아로 이름을 바꾸고 주인공의 충실한 시종이 되어버린 프레아의 여동생이 등장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천재적인 지략으로 언니와 왕(킹)을 제치고 실세로 등극해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1권에서는 언급조차 없었던 새로운 여동생 보스가 등장해요. 그녀의 성격은 언니 크레하를 넘어서고, 세계에 군림하기 위해 타인의 아픔 따윈 안중에도 없는 냉혹하기 그지없어요. 먼치킨이 되어 버린 주인공조차 여동생하고는 싸우길 거부할 정도죠.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아요. 여동생 보스는 주인공 출생지 마을을 멸망 시키고 마을 사람들을 잡아와 그를 끄집어 내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한다는 것인데요. 사실 주인공은 타인이 죽든 말든 나와 상관이 없다면 관여를 안 해요. 그러나 어릴 때 자신을 돌봐줬던 사람의 죽음을 들은 순간 걸어온 싸움은 받아 처 주는 게 예의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동생 보스와는 언젠가 결판을 내야 될 적으로 인식하게 되요. 그리고 이런 작품의 클리셰인 능욕 코스는 덤으로 따라오겠죠. 하튼 주인공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다치거나 하면 반드시 복수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복수만 하는 악귀가 아닌 착한 심성도 가지고 있다고 은연중에 비추기도 해요.
어쨌건 그래서 이 작품에서 악은 누구인가? 그건, 주인공 < 왕국이라 할 수 있겠군요. 단순히 용사(주인공)가 복수에만 미쳐서 날뛰는 것이 아닌, 첫 번째 생에서 자신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두 번째 생에서는 아직 아무 짓도 안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작가도 인식하고 있는지 왕국 이면에 감춰진 어둠을 신랄하게 까발리면서 주인공에게 면죄부를 줘요. 가령 아인의 마을을 병사들이 습격해서 아인들을 노예로 팔아버린다던지, 아무 잘못이 없는 마을을 사교로 지정하고 멸망 시켜버린다던지, 평온하게 잘 살고 있는 마족에게 싸움 걸어서 침공하게 만들고는 마족에 대항한다고 세계 여러 나라에 원조를 받아 착복한다던지...
거기에 마을을 습격하고 여자들을 겁탈하는 것을 즐겁다고 평하는 병사들, 여긴 진정으로 인간의 마을인가 악마의 마을인가 헷갈리게 한다는 거죠. 그런 놈들에게 천벌을, 그런데 딱히 주인공도 좋은 소리 못 듣긴 해요. 싸우는데 있어서 비겁함이 병행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크레하와 싸울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가히 칭찬받을 일은 아니죠. 미약을 원액채로 들이 붙다니 크레하가 서큐버스 속성이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어쨌건 그 대가로 팔이 잘리는 아픔을 맛봤으니 쌤쌤이지 않을까도 싶지만 정상적으로 맞붙어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별로 없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비겁함만이 승부처이긴 합니다.
맺으며, 크게 요약하자면 악마의 집단인 왕국을 타도하는 용사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타도할 대상이 마왕에서 왕국으로 상대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크레하와 프레이아를 적절히 이용해 덫을 놓고 그러다 실패를 맛보기도 하는 등 조금식 싸움이 격해지고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생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죽어간 마왕에 대한 복선이 미묘해지고 있군요. 다음 에피소드에서 그녀(마왕) 찾아 3만 리가 될 거 같은데 어차피 나와도 주인공과 또 그것만 해대겠죠. 그리고 결국 여동생 보스도 같은 절차를 밟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 작품은 미래를 유추하기 좀 쉬운 편인지라...
추신 형식으로 조금만 언급을 더 해보자면, 문제점이 좀 많이 보입니다. 완벽한 작품은 없다지만, 이전에 전혀 언급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다 꾸며둔 일이다 같은 급히 설정한 듯한 내용이 언 듯 언 듯 보여서 날로 먹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였군요. 그 예로 상인과 크레하 에피소드가 그렇고요. 후반부에 나름대로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긴 하는데, 또 먼치킨이면서 먼치킨이 아니라며 날뛰는 것, 그리고 주인공도 좀 험한 꼴을 당하면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싶은데 첫 번째 생에서 굴렸으니 그건 됐다 싶은지 전혀 없는 게 아쉽달까요. 여자들과 맨날 그거 하는 건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 같으니까 넘어간다지만. 어쨌건 이번엔 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9금 안 받은 게 정말로 용하다고 할까요.
좀 더 추신하자면, 주인공의 최대 굴욕도 있어요. 크레하 왈: "전부 들어갔어?" 주인공 왈: "이게 다야" 물론 본편엔 굴욕이니 뭐니 같은 언급은 없지만요. 필자의 뇌가 썩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은 좀 더 많이 세상을 경험해야 된다고 봐요. 아니 여기선 작가라고 해야 하나, 좌우지간 이런 적나라한 것도 꽤 있습니다. 앞으로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군요. 필자는 일명 신사물보단 아예 솔직하게 나가는 것도 괜찮을 거라 봐요.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7.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