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치트 약사의 이세계 여행 3권 리뷰
이 작품은 '포션빨로 연명합니다'와 유사합니다. 치트 약사도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와 포션 만드는 능력을 하사받아 약을 만들며 생활하는 이야기인데요. 두 작품의 공통점은 단순한 포션이 아니라 성능이 매우 뛰어나고 별별 것을 다 만드는 능력자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걸 노리는 사람이나 귀족이 등장하게 되죠. 근데 사실 딱히 포션만이 아니고 어떤 능력이 되었든 이세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라면 표적이 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하겠는데요. 수수하게는 국민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인공을 포섭하려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추악한 본심으로 움직이는 귀족 등 설탕물에 꼬이는 개미처럼 주인공을 못 살게 구는 필연이 되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유지로'도 그런 경우죠. 사실 필자는 1,2권의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야 2권 발매부터 1년하고 7개월이나 지나서 후속권이 나왔는데 기억력이 3초 붕어 머리인 필자로써는 앞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하여튼 간에 그는 신(神)인지 뭔지에게 포션 만드는 능력을 하사받아 이세계로 넘어와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가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하프엘프인 '세리에'를 만나 한눈에 반하고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죠. 어릴 적 헤어진 엄마를 찾는 그녀를 도와 여행 끝에 그녀의 엄마를 찾았지만... 여담으로 하프엘프는 인간 쪽에서도 엘프에게서도 박해받는 그런 종족이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여행을 하며 인간/엘프 불신에 빠져 지냈던 세리에는 자신을 향한 일직선으로 일편단심을 유지하는 유지로를 만나 이런 인간이라면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은 이제 그녀가 찾고자 했던 엄마의 일도 끝이 났음에도 여전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와 포션이나 약을 만들어 팔며 세계를 유랑 중이죠. 언제까지 그와 여행할 수 있을까. 2권에서 그녀의 나이가 드러나면서 이들의 미래는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복선이 투하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유지로라면 나이를 젊게 하는 포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에서 분위기 깨게 만들기도 했죠.
그만큼 유지로는 유능하다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노림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자중하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게 행동했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팔려 버렸고 이젠 그의 이름을 사칭하는 가짜까지 등장했으니 이쯤 되면 유유자적 생활은 파탄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됩니다. 그걸 반증하듯 가는 곳마다 귀족들이 엉겨 붙고 1권인지 2권인지에서 주인공 일당이 궤멸 시켰던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는 재건을 위해 그를 제거해야 될 1순위로 꼽곤 그를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가요. 이쯤에서 포션빨의 카오루 처럼 신을 사칭하고 포션으로 폭탄을 만들어 날 건드리면 인생 끝나는 거야 같은 일을 벌여준다면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가 있었을 텐데요.
일단 없습니다.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죠. 이용하기 위해 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급작스럽게 왕족 살해라는 누명을 써버리게 돼요. 아무리 포션빨의 카오루가 이 작품에 난입한다고 해도 이건 안 될 겁니다. 그는 신물을 내며 세리에와 도망가서 인적 없는 곳에 정착해 살려고 하죠. 여기서 세리에와 헤어진다는 분기점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따라가는 길을 선택해요. 하프엘프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그녀의 선택지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유지로를 알게 모르게 의식한 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군요. 지금으로써는 이 마음이 무슨 감정인지는 그녀로써는 알 길이 없지만요.
그렇게 대수해에 위치한 유적에 여장을 풀고 여기라면 평생을 살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게 이런 작품의 클리셰죠. 클리셰이긴한데 여기서 반전이랄까요. 비슷한 게 일어납니다. 원주민인 마물과의 소통, 인간과 마물은 같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게 판타지의 정석인데요. 하지만 유지로와 세리에는 마물과 공존을 선택해 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상처받아 도망 온 숲에서 인간과 대립 관계여야 할 마물들이 오히려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기 시작하죠. 처음엔 다소 트러블이 있지만 사소하니까 넘어가고, 이들이 만난 마물은 나무 정령 드라이어드, 고블린과 여우족이 되겠습니다.
여느 판타지에서라면 고블린은 반드시 퇴치해야 될 존재지만 여기선 제법 착하게 나와요. 거기엔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인간과 교류가 있었었다는 전재가 있긴 하지만요. 이들을 통해 여우족과도 소통을 하며 서로 약과 생필품을 교환하며 살아가기 시작하죠. 유지로는 그들에게 농사법도 알려주고 인간의 마을을 흉내 내 마을을 만드는 법도 알려주면서 원래는 인간의 마을에서 이렇게 지내야 될 이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그렇게 지내다 숲의 주인인 수룡까지 접점을 만들고 나아가 이전에 복선으로 나왔던 마왕(10살 여자애)까지 찾아오면서 어째 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맺으며, 뭐랄까. 숲에서 마물을 위한 약국과 병원을 열었습니다. 처음엔 근처 살던 고블린과 여우족이 손님이었는데 갈수록 판이 커져요. 나무의 정령 드라이어드가 찾아오고, 흡혈귀가 찾아오고, 수룡에게 빚을 지우고, 마왕이 찾아오고, 인간의 말을 하는 너구리 상인이라던지 이제야 판타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게 제법 흥미가 돋습니다. 여우족 하나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쳐 제자로 받아들이고, 드라이어드와 마왕의 등장으로 세리에는 질투심을 폭발 시킨다던지 같은 소소한 일상이 차분하게 흘러가더군요. 흥미로운 건 사실 없어요. 그저 소소한 일상만이 있을 뿐이죠.
그렇기에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요. 보통 이런 흐름이라면 신랄하게 깠을 필자가 어쩐 일인지 이 작품은 까지 못하겠더군요. 다만 일러스트 부분에서는 2권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악이지만요. 어째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건만 이 작품에서는 빛을 못 보는 걸까요. 다 떠나서 제일 불만인 건 귀여운 여우족 일러스트는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군요. 여하튼 간에 이 작품만이 가지는 먼치킨이 있으면서도 굳이 나서서 보여주지 않는 일상이기 때문에 흥미가 동하는 걸까요. 사실 돌이켜보면 아무 내용이 없어요. 4권에서 다시 인간과 다툼이 있을 거라는 복선이 나와서 제법 재미있어지긴 하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