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86 에이티식스 2권 Run through the battlefront 상편 리뷰

현석장군 2018. 12. 16. 18:51

 

복무 기한 동안 살아남은 에이티식스에게 내려지는 마지막 임무, 적진 깊숙이 장거리 정찰(명칭은 따로 있는데 생각 안 남)이 신이 속한 부대에 하달됩니다. 복무 기한이 끝나도 제대 시켜줄 거라는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은 레나의 성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머나먼 길을 떠나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간다. 무기와 탄약 그리고 식량을 바리바리 껴 앉고 그들은 무엇을 바라며 길을 떠났을까.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것이 그들의 긍지라면서 웃으며 떠났던 그들, 6개월 뒤 "어디까지 갔을까'라는 레나의 독백은 가슴을 후벼파기에 충분하였군요.


이들이 당도한 곳은 이웃 나라 기데아 연방이었습니다. 신의 능력으로 전투를 최대한 피하며 적진을 돌파하면서도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저거노트>와 자원 회수 로봇 '파이드'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들은 또다시 걸어갑니다. 그리고 당도한 땅, 만인이 평등하고 박해가 없는 곳, 1권이 신들러 리스트를 떠올리게 했다면 2권은 모세를 떠 올리게 합니다. 박해를 피해 그들이 당도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을까. 연방은 그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출신을 알아버린 순간 그들을 동정하여 이제는 편히 쉬어도 좋다는 말을 건넵니다.


10년 전 대륙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기데아 제국, 시민혁명으로 제국은 멸망하고 연방이 탄생하였지만 제국이 만든 레기온은 멈추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을 만든 사람들에게까지 총부리를 겨누는 레기온, 레기온을 맞아 필사적인 전선을 구축 중인 연방에서 신을 위시한 살아남은 5명은 무얼 하며 지낼까. 문득 킬라킬이라는 애니메이션 엔딩곡 Gomen ne, Ii Ko ja Irarenai이 떠올랐습니다. 자기 뜻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의미가 내포된, 약간은 사춘기적 반항을 의미하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나이도 그에 걸맞기에 반항기적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닭장에 넣어져 알만을 낳기를 강요당한 닭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무얼 할 수 있을까. '닭장을 탈출한 암탉 에스텔' 내용적으로는 이 작품(86)과는 전혀 다르지만 신을 위시한 5명을 표현 하라면 딱 그런 상황이라 할 수 있죠. 알을 낳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 친구를 만들고 화장을 하고 도서관을 다니는, 평범한 그 또래의 아이들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겠다는 것마냥 그들에게 내려지는 짧고 달콤한 시간들, 하지만 전장을 떠난 노병은 전장을 그리워한다고 하죠. 일생을 그 일만을 해온 사람에게 다른 일을 시킨다는 건 또 다른 감옥에 넣는 거라는걸, 그들은 전장을 그리워합니다.


부모 세대를 거치고 형과 누나의 세대를 거치고 무언가를 배울 사이도 없이 전장에 던져진 에이티식스,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형과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던 그들이 선택한 건 연방 서부방면 최전선, 그전에 신에게 새로운 동료가 들어옵니다. '프레데리카' 약관 10살의 소녀, 10년 전 시민혁명 때 부모와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제국 마지막 여제(女帝), 주인공 신과 비슷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대륙을 전쟁에 빠트린 죄에 속박되어 10살이면서도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비련한 소녀입니다. 그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품위와 언동을 보이는 그녀는 신에게 자신도 전장에 대려 달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형의 망령을 쫓는 걸 삶의 목표를 정했던 신에게 있어서 그 망령이 없어진 지금 그는 무얼 하고 싶은 걸까. 누군가를 지킨다. 내가 죽고 사는 곳은 내가 정한다는 아이덴티티를 내세우며 전장에 다시 몸을 담갔건만 가슴속은 황량한 바람만 불어올 뿐입니다. 오로지 레기온만을 쓰러트리기 위해 전장을 누비는 '저승사자',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에게서 자신의 가신이자 기사였던 '키리'를 신과 겹처보는 프레데리카, 시민 혁명군에 포위되어 항복할 날만은 기다리던 어느 날 오직 폐하를 위해 싸우던 그(키리)가 폐하를 지킨다는 목적을 상실하고 수단에 집착하는 광기에 휘말려 가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던 그녀...


프레데리카는 신에게서 그런 광기를 엿보기 시작합니다.


맺으며, 지금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원래는 어제나 그제에 올리려 했는데 앓아누웠다 좀 전에야 일어났어요. 도서도 정말 필력이 몇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수준급인데 그걸 음미할 기분도 아니었군요. 좌우지간 이번 이야기는 목적을 상실한, 한가지 일에만 충실했던 사람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케어해주고 양지로 끌어올려 주는 클리셰를 동반해볼만하겠건만 주인공 주변엔 그럴만한 인물이 없어요. 다들 오로지 신만을 쳐다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그래서 신의 성격은 사실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생활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레나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죠. 주인공을 구원해줄 수 있는 인물은 레나 밖에 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수백 킬로 떨어진 공화국에... 그 역할을 해줄 프레데리카는 나이 때문인지 자신의 입장 때문인지 주인공과 접점을 만들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불쌍한 주인공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