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3권 리뷰
받은 만큼 돌려주고, 맞은 게 있으면 때려주는 게 사람 사는 인정 아니겠어요. 날 보호해주지 않는 법 따위에 기대어 눈물만 찍어내봐야 변하는 건 없어요.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 인생에 있어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껄이는 사람은 갈가리 찢어지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또 다른 가해자일 뿐이라 생각해요.라는 게 이번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그렇습니다. 좋아서 용사가 된 것도 아니고 좋아서 이세계를 구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뿐인 사람을 억지로 불러다 마왕을 무찔러 달라고 하니 이 미치도록 공허한 마음 달랠 길 없네...
향수병이 도져서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달랠 길 없이 미치도록 마물을 사냥하고 돌아다닌 끝에 니들이 그토록 바라는 마왕을 무찔렀더니 돌아오는 건 등에 칼이라... 이 정도면 악에 받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래서 주인공 카이토와 히로인 미나리스가 벌이는 복수극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분간을 힘들게 합니다. 복수할 당사자에게만 국환 되지 않은 주변 인물까지 싸잡아 괴롭히고 끝끝내 자비 없는 죽음을 내리는 카이토, 마술사 '유미스'를 맞이해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고문은 양반으로 치부되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잡아다 고통 속에 죽이는 모습에서 혀를 내두르게 해요.
그리고 유미스의 이복동생 슈리아를 복수 대행자 즉 동료로 끌어들이죠. 미나리스에 이어 두 번째 동료인 슈리아는 언니 유미스의 꾐에 빠져 마법 의식 제물이 된 소녀이죠. 그리고 그녀의 엄마와 여동생은 일찌감치 유미스의 먹이가 되어 버렸고요. 이후 그녀 역시 유미스의 먹이가 될뻔한 걸 카이토가 구해주며 동료로 들어오라 꼬드기고 그렇게 카이토의 동료가 되어 언니에게 복수극을 펼칩니다. 가히 그로테스크가 따로 없을 정도로 카이토와 연합한 그녀의 복수극은 한편의 드라마 그 이상으로 다가와요. 그리고 복수 끝에 찾아오는 건 허무일까 또 다른 희열일까.
'광기' 이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 단어일 것입니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애꿎은 사람들까지 희생 시키며 복수 당사자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는 것, 이것은 복수 그 이상에서 오는 광기일 뿐 그 무엇도 아니게 돼요. 결국은 아무 죄 없는 유미스가 좋아하는 사람까지 희생 시키며 유미스로 하여금 좌절과 고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모습과 그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카이토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모르게 되죠. 용서는 없다. 내가 받은 고통 그 이상을 줄 것이다.라는 게 카이토의 생각이죠. 그 과정에서 타인의 희생 따위 그에겐 별것 아닌 것에서 명분은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주제에 마왕 레티시아와의 에피소드는 뭐가 그리 애틋한지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과거를 회상합니다. 향수병이 도지고 이세계에서 용사로 살아가는 것에서 환멸을 느껴가던 어느 날 던전에서 만난 레티시아, 첫 만남은 좋아하는 이성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초등학생처럼 둘은 앙숙같이 으르렁대며 티격태격 해댑니다. 서로의 단점을 까발리며 주먹다짐하는 초딩 커플처럼 대머리니 뭐니 하며 오랜만에 핑크빛을 자아내요. 그런 둘이 던전을 돌파해 지상으로 나가기 위한 시련을 부여받아 서로의 어깨를 빌리며 노력을 해가요. 그러다 카이토는 문득 그녀에게서 잿빛투성이였던 이세계서 만난 희망이라는 불빛을 보게 되죠.
뭐랄까 레티시아는 기가 상당히 쎄다 할 수 있어요. 마왕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사람을 굴려 먹으려는 심보가 고약해요. 하지만 그녀에게 악의는 없어요. 카이토에게 주방장이라는 직함을 내리고 매일같이 그에게 밥을 대령하라 호령을 합니다. 카이토는 투덜거리며 밥을 만들어 대령하죠. 보고 있으면 흐뭇함에 절로 미소가 떠올라요. 꼬맹이 같은 모습에 외견으로 놀리면 방방 뛰는 모습이 귀엽죠. 카이토는 그런 그녀에게서 지처 버린 마음을 치유했던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레티시아 앓이를 할리가 없거든요. 하지만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지금은 아직 그녀를 만나기 전, 다시 만나게 되면 첫 번째 생에서 느꼈던 희망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맺으며, 레티시아 에피소드를 거치며 유일하게 제정신인 사람은 레티시아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왜 그렇게 주인공 카이토가 레티시아 앓이를 하는지 알 거 같은, 등장인물 면면들이 하나같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처럼 나오지만 이것도 카이토의 과거 회상일 뿐인지라 미화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건 이 구역에서 미친X은 나다라며 강렬한 첫인상을 보여주는 성녀의 등장으로 더욱 그녀의 평범함은 부각되고 있다 할까요. 그건 그렇고 작가가 분량 조절을 잘 못하는군요. 이야기를 좀 질질 끄는 면을 보여줍니다. 유미스를 괴롭히는 장면도 그렇고 레티시아와의 에피소드는 던전 탈출이라는 이야기로 도서 절반을 차지해버리는지라 읽는데 좀 고역이 아닐 수 없었군요. 그래서 레티시아와의 인연은 결국 뭔데 같은 뜬구름 잡는 격이 되어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