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모험가가 되고 싶다며 도시로 떠났던 딸이 S랭크가 되었다 1권 리뷰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작품에 보면 모험가가 모험을 하다가 죽는 일은 흔한 일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다치거나 마음의 상처에 망가진 모험가들이 귀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요. '벨그리프'는 고블린 슬레이어에서 흔히 표현되는 어디에나 있는 신출내기 모험가였습니다. 어느 날 던전에서 마물에게 다리를 뜯기기 전까지는요. 모험가로서의 말로, 보통 이런 좌절을 겪는 모험가는 술에 절어 어디 길가에 처박혀 객사할 운명이건만 그는 고향에 내려와 마을 일을 돕고 모험가의 경력을 살려 마을을 마물로부터 지키는 일을 해왔죠.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를 인정하게 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오늘도 순찰하던 그의 귀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모험가로서는 끝장났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신체를 수련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마을 정착 초기 받은 비난과 괄시, 일반 사람들에겐 모험가 = 무뢰한이라는 공식 속에서 그 편견을 깨고 마을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타인을 돕는다는 올곧은 성품 때문이었죠. 그런 그에게 다가온 어리고 어린 바구니에 담겨 버려져 있었던 아직 말도 못하는 가여운 생명, 그는 그 아이를 목숨 바쳐 열심히 길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험가로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그 아이에게 가르쳤어요. 그 아이가 12살이 되던 날, 그 아이는 아버지를 본받아 자신도 모험가가 되겠다며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5년 후 그 아이는 훌륭하게 성장하여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귀향을 서둘러요.
후기에 보면 제목 때문에 대략 난감이라고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별 볼일 없는 작품이라 여겨질만하죠. 정발 되기 전 일정 정보를 접한 분들 중 사이에선 근친이니 키잡이니 같은 말도 나오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전혀 그런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음... 뭐랄까 필자는 일찌감치 분가해서 부모님과 살았던 기간이 적어요. 게다가 필자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셔서 분가 전 십수 년을 같이 살았어도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았고 명령 내린 것만 하는 못난 자식이었죠. 그렇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거의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필자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솔직히 좀 고역이었군요.
무슨 말이냐면 이 작품은 자신(주인공)을 길러주신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애정을 그리고 있어요. 파더콤까지는 아니고 부모님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랄까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마냥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응석 부리고 싶고 며칠 못 보면 그리움에 보고 싶은, 성장하여 분가 후 안부 전화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짓고, 명절 때 귀향하면서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드리고 싶은,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죠. 아마 작가는 각박해지는 현실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자꾸만 잊혀가는 세태가 안타까워 이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안젤린, 바구니에 넣어져 버려졌던 아이의 이름입니다. 줄곧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커왔던 그녀는 아버지를 동경하고 있죠. 그녀는 솔선해서 마을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사냥하여 고기를 나눠주고 아이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등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돼요. 결국 동경의 끝에 그녀도 모험가로서의 길에 들어서죠. 그리고 현재 17살이 된 안젤린은 동경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귀향을 서두르지만 급격하게 불어나는 마물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몇 번이나 휴가를 내 이번에야말로를 외치며 여행길에 오르지만 그때마다 길드 직원이 나타나 마물이 나타났으니 대응 좀 하는 통에 매번 좌절을 겪어요.
곤란을 겪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기는 건 그녀에겐 있을 수 없어요. 이상하게 늘어나는 마물을 상대하며 원인을 찾아간 끝에 마주친 마왕이라는 존재, 1권에서 거하게 큰 복선을 떨어 트려 주더군요. 마법과 검이 난무하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마왕은 빠질 수 없는 감초 같은 역할이라면 역할이겠죠. 그러나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닌 무려 70여 마리나 되는 마왕이 존재한다는 복선, 작가는 대체 몇 권을 쓸려고 이런 큰 복선을 떨어 트렸을까요. 자, 아버지를 못 만나게 한 원흉인 마왕을 어떻게 요래해줄까. 그리고 안젤린은 갖은 난관을 돌파하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동경이 메인이지만 작가가 풀어놓는 몽환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를 돋웁니다. 눈 내리는 장면 설명과 해가 바뀔 때마다 따라 바뀌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향수를 불러와요. 요즘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런 감정이랄까요. 시골에서 살며 보았던 뒷동산이나 앞산이 계절을 맞아 변화해가는 모습들,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과 눈으로 덮이는 겨울, 봄의 새싹이 피어나는 파릇한 파랑, 그리고 푸르름이 시원한 여름, 작중에는 이런 표현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필자 주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랄까요. 거기에 만화 충사에 나올법한 이질적인 존재들과의 만남은 상상력을 자극하죠.
맺으며, 나이를 먹어가는 벨그리프를 보고 있으면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보물섬에 나오는 '롱 존 실버'를 떠오르게 해서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더군요. 마지막 회 생명이 꺼져가는 앵무새를 다시 일으켜 세워 어깨에 오르도록 하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데요. 벨그리프도 그런 인생을 살다 가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하지만 열혈 효녀 안젤린이 있으니 인생의 종착점에 다다른다고 해도 쓸쓸한 마감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것에 위안을 얻기도 했군요. 거기다 딸의 활약으로 자신이 사는 영지의 젊은 여백작의 눈에 들어 버렸으니 어쩌면 딸 보다 잘 나가는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