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되는 걸까 코믹 8권 리뷰
레벨업의 반동일까. 어쭙잖은 실력만 믿고 기고만장해진 초보 모험가를 혼내주기 위한 신의 시련일까. 중층에 진출한 벨 일행에게 몰아치는 대규모 몬스터들에 휩싸여 버린 벨 일행의 절체절명인 순간, 지옥도에서 벨은 결단을 요구받습니다. 파티의 리더인 소년의 어깨에 사람 목숨이 맡겼졌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얹혀집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누구에게 손을 뻗어 도와 달라고 해야 하나. 마치 옛날 릴리가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손을 뻗어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죽음과 삶을 강요받았던 것처럼 던전은 벨에게도 죽음과 삶이라는 선택을 똑같이 강요하기 하기 시작합니다.
벨 일행은 중충에 진출하여 순조롭게 사냥에 임하고 있었는데요. 이때 타케미카즈치 파밀리아의 오우카와 미코토가 속한 파티에게 패스 퍼레이드를 당하고 맙니다. 던전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 쫓아오는 몬스터를 다른 파티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도망가는 아주 비열한 행동을 하고 말아요. 파티원이 다쳤다는 이유로, 자신들은 살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을 제물로 삼아버리죠. 아이러니하게도 타케미카즈치는 헤스티아와 안면이 있는 사이로 자칫 여기서부터 벨의 파밀리아 깨기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은 에피소드입니다. 벨이야 자기가 당해도 분함만 삭힐 뿐 대갚음해준다는 감정은 희미하였었죠.
그런데 릴리가 그런 꼴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벨프조차 인간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던 처지라, 사실 많이 양보해서 벨이 용서를 한다고 해도 아마 헤르메스가 또 일을 저질러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분기점이기도 하죠. 하지만 벨은 던전에서 행불이 되어 버리고 우리 '벨군'은 영웅으로써 어쩌구라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헤르메스 입장에서는 이대로 그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타케미카즈치를 못 본척한 게 아닐까 하는, 아니면 관심도 없거나. 아무튼 그런 속이 시커먼 헤르메스가 앞장서서 벨 구조대를 꾸리는데요. 본편에서 보여준 속 시커먼 행동들을 코믹에서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어서 꽤나 소름이 돋아요.
가령 류를 구출대에 끼워 넣기 위해 구사하는 언어 실력을 들 수가 있어요. 상대가 가지고 있는 약점(류에게 있어서 벨은)을 서슴없이 이용한다던가, 안 가면 후회할 텐데? 같은. 또 결정적으로 시르를 이용하는 부분도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타인의 감정에 개입해 의도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 사람 0순위에 해당하는 게 헤르메스 같은 성격의 사람이죠. 그나마 헤르메스가 벨 일직선이라서(이건 무슨 고블린 성애자도 아니고) 주변에 피해가 적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실력을 엿볼 수 있죠. 사람 심리를 이용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실력, 범죄자 같은 놈에게 넘어가는 히로인을 보는 듯한 장면은 언제나 두근거리게 하거든요.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게 헤르메스는 언젠가 프레이야에게 죽사발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는 것이군요. 물론 프레이야는 벨이 강해질수록 좋아하는 성격이긴 한데 '강해진다 = 개고생한다'는 이콜이 되지 않으니... 아무튼 사실 프레이야는 벨을 계속해서 지켜보고는 있지만 미노타우로스전 이후로는 이렇다 할 행동이 없어서 벨에게 관심을 끊었나 싶기도 한 게 애매하긴 합니다만. 이슈타르 파밀리아가 죽사발나 버린 이유가 벨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니까 아주 관심을 끊은 것 같지는 않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케미카즈치 파밀리아는 용케 무사하다 할 수 있어요. 다만 약소 파밀리아라 프레이야가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작가도 아예 염두를 안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무튼 현장에서 개고생 하는 건 언제나 노동자(모험가)라는 듯, 벨은 릴리와 벨프를 다독여 어디론가 향합니다. 살기 위해, 자신도 자신이지만 둘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그러다 지쳐 걸으며, 기어서 다다른 곳에 그가 본 것은... 늘 생각하지만 작가는 벨에게 무언가의 앙심이라도 품고 있는지 정말로 개고생시킵니다. 사실 이런 개고생이라는 측면에서 주인공은 먼치킨이 아니라고 정당화하는 무언가가 있기도 하죠. 이렇게 고생해서 얻은 귀중한 경험치는 주인공을 승화 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세상은 그를 샛길로 가는 약아빠진 놈이라고 폄하하기도 하고요. 조화와 부조화의 양극성을 잘 나타낸다고 할까요.
맺으며, 그동안 간간이 언급했지 싶은데 사실 이 작품의 코믹은 본편 일러스트보다 월등히 좋은 그림체를 가지고 있죠. 이야기는 다소 축약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 정도면 라노벨을 원작으로 한 코믹 치고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라 할 수 있어요. 거기에 본편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코믹은 참 드물죠. 가령 미노타우로스전이라던지, 여기에 동굴 동굴하고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이 더해진 것도 한몫했는지 이번 8권만 해도 8쇄를 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본편의 인기를 업었다곤 해도 코믹도 그만큼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