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살아남은 연금술사는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3권 리뷰

현석장군 2019. 3. 8. 20:22

 

조금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읽고 나서 느낀 점은이럴 줄 알았다였군요. 언제나 둔한 주인공(혹은 히로인) 때문에 혹사하거나 피해를 보는 건 주변 인물들이죠.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마리엘라는 둔하기 짝이 없어요. 요리는 레시피대로 만들었는데 어째서 쓰레기가 나오는지,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데 뭔 소리 하는지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던지, 뜬금없이 내뱉은 말이 씨가 되어 주변인을 개고생 시키는 것도 예사죠. 이번에 링크스와 지크는 마리엘라의 말 한마디에 한 달 넘게 원숭이 퇴치에 시달리는 형벌 같은 걸 받아 버려요. 아무튼 포션을 만드는 능력 하나는 먼치킨급은 아니지만 꽤 출중한 반면에 자신에게 보내지는 감정이라던가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도 무엇인지 알아차리질 못합니다. 이런 작품에서 이런 감정은 늘 큰 화를 불러오죠.


남 연애사는 잘 알아채는 주제에 자기와 연관된 연애에는 깨닫지 못하는, 그래서 이번에 링크스가 큰 마음먹고 그녀에게 고백하려다 말도 못 꺼내보고 침몰해버리죠.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어 놓고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진짜로 모르는 건지, 좀 둔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번 에피소드에선 거의 치매급으로 업그레이드해갑니다. 먹을 것에 환장해서는 먹을 것을 주면 누구라도 따라갈 거 같은 의심 없는 성격은 나중에 기둥서방을 모시고 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걱정스럽죠. 그래도 그녀는 바라는 게 딱 하나 있답니다. 지크와 링크스와 언제까지고 왁자지껄한 생활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을 노예에서 구해주고 따듯한 일상을 제공한 그 마음에 지크 역시 그녀의 기사가 되겠다는 건지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인지 작가 스스로도 판단을 못 내린 것인지 얘(지크)가 정신이 왔다 갔다 합니다. 링크스와 연적이 될 만도 하겠지만 링크스가 대두되면 나는 그녀의 기사가 되겠다고, 링크스의 존재가 가라앉으면 내가 그녀를 좋아하나? 그런 건가? 자신을 구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사모의 마음이 충돌해서 얘(지크)는 마리엘라와 반대로 개성이 참 강하다 할 수 있어요. 다만 잘 들어내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주변에선 기정사실로 몰아가는 분위기이기도 해서 어쩌면 우리~


마리엘라와 지크와 링크스 셋이서 보내는 시간, 마리엘라를 놓고 한쪽이 고백한다고 했음에도 말리거나 시기와 질투하지 않는 생활. 셋이서 거리를 걸으며 밝은 대화를 주고받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 같은 일상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라는 듯 무심하게 종말을 고합니다. 이런 작품에서 이런 등장인물들이 해피한 엔딩을 맞이해가는 게 참 드물죠. 위에서 언급한 '둔하다'의 의미, 비단 인간관계에서 둔함을 넘어 사람 잡는 둔함마저 겸비했을 때는 무엇이 일어나나. 파탄이겠죠. 이번 이야기는 초반부터 파탄이라는 복선이랄지 플래그랄지를 뿌려갑니다. 한때의 행복이 주는 안락함,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 거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은 위기 때 판단을 흐리게 할 뿐이라는 걸 깨달아봐야 늦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지켜지는 게 당연하고 생각은 내가 안 해도 옆에서 해주겠지. 물론 느낌상 그렇다는 것이고요. 애(마리엘라)가 그만큼 둔하다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포션 재료를 구하러 던전에 내려갔을 때 비록 안전한 층이었다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던전임에도 혼자 떨어져 약초를 채집하던 마리엘라를 덮치는 악의는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죠. 그 악의에서 지켜주고자 링크스가 한 행동은, 언제부터인가 자기는 끝까지 그 마음이 무엇인지 채 깨닫지도 못했을, 그것이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걸 마지막까지도 이해했을지도 의심스러웠던 링크스의 '살신성인'한 정신은 마리엘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모든 것에서 모지리였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이야기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합니다. ZZ건담에서 나오는 자크 머리 Z건담 같은 개그의 초반을 이어 저물어가는 생명이라는 후반은 완전히 뜬금없이 다가와요. 물론 이미 1권에서 그럴 것이라는 플래그와 이번 3권에서도 중간중간 그럴 것이라는 플래그가 있어 왔으니까 당연히 회수되어야 마땅합니다만. 자신의 둔함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눈물 쫙 쫙 뽑는 히로인이 클리셰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참고로 여기서 둔함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몰라줘서 그런 게 아닌 이 상황까지 오게 한 둔함이라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작가가 그럴 마음이었겠지만), 수동적인 히로인의 최후라 할 수 있죠.


아무튼 씁쓸한 느낌만 들게 한 에피소드군요. 사실 필자에게 있어서 이 작품의 남주들은 크게 와닫지 않았었습니다. 링크스와 지크가 마리엘라를 바라보며 뭉게뭉게 피워가는 연심과 성장은 눈부시다 할만하지만, 뭐랄까 연애에 대해 꽃을 피우든 그에 관련된 이야기든 좀처럼 감정이입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반 남주중 하나가 리타이어 되었을 때도 사실 이럴 줄 알았다는 느낌만 받았다고 할까요. 그만큼 히로인 마리엘라의 행동은 누구 하나 잡겠다는 식이었으니까요. 필자의 필력이 저질스러워서 구체적으로 언급 못하는 게 아쉽군요. 그래도 나은 점이 있다면 마리엘라는 좌절하지 않고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라는 게 들통나면 닭장에 갇혀 죽을 때까지 포션만 만들 수 있다는 미래가 있었음에도 더 이상 보호받길 거부하죠.


맺으며, 중반까지 글자 그대로 질 떨어지는 저질스러운 3류 개그 때문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온천에 몰려있는 원숭이 퇴치 작전에서 길드 마스터를 쳐다보는 암컷 원숭이를 표한한 것이나. 아이켄 플라이는 또 뭔지, 던전 공략하면서 바퀴벌레 퇴치 작전도 그렇고, 그래놓고 후반에 갑자기 시리어스로 몰고 가면 어쩌라는 것인지. 작가는 재미있다고 쓰는지 몰라도 읽는 독자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더군요. 능력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필하는 것인지 한마디로 갑분싸가 따로 없습니다.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3점? 그런데 언제 나오나 고심했던 마리엘라의 스승으로 보이는 인물의 등장은 또 어떤 태풍을 불러올지 궁금해서 4권을 안 볼 수도 없고... 미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