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약사의 혼잣말 1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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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평가하자면 유쾌하고 재미있다를 들 수가 있는데요. 가령 히로인인 마오마오가 간식으로 만들어둔 미약에 쩔은 빵을 먹고 해롱해롱 상태가 되어 서로 뒤섞여 있는 시녀들이라 할 수 있어요. 그 뒤엉켜있는 시녀들의 치마를 들춰보면서 미수에 그쳤다고 당당하게 말하다 뒤통수 얻어맞는 부분은 유쾌하기 짝이 없죠. 의리 초콜릿같이 비녀를 못 받은 시녀들에게 비녀를 나눠주는 문관을 보고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똥개 같다느니, 자신의 상관을 게이라고 지레짐작하지 않나, 읽고 있으면 배꼽 빠지게 만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유곽이 등장하는 등 결코 유쾌한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마오마오는 인신매매로 궁에 팔려와 하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유곽을 상대로 아버지와 함께 약을 만들어 파는 약사였으나 어느 날 약초 캐러 갔다가 그대로 붙잡혀 궁에 입궐하게 되었죠. 팔려온 겁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뼈빠지게 일해야만 나갈 수 있는 곳, 그녀는 2천 명이나 있다는 후궁이라는 남자 출입 금지 구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오늘내일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후궁들이 낳은 아이들 그러니까 왕자와 공주들이 이유 없이 죽어 나간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공주와 왕자까지 오늘내일하게 되자 약사로써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리 향하는데요. 그리고 무엇이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지 밝혀가죠.
이 작품은 궁에서 약사로 활약하는 히로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로 치면 허균 정도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 추리를 가미하였죠. 외국 드라마 중에 이와 비슷한 게 있었지 싶은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아무튼 필요에 따라 약을 조제하고 원인을 추적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지 않는, 할 수 없이 상사에게 등을 떠밀려 원인을 찾게 되고 거기서 추리물에서 흔히 보는 원인들을 알아가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결코 마오마오는 깊이 관여하지 않으며 감정이입도 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그저 그 판단은 상사 '진시'에게 떠맡겨 둘 뿐 어디까지나 제3자의 위치에 서서 사태의 흐름만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마오마오와 그녀의 상사인 '진시'와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것처럼 왕자와 공주가 앓고 있는 병을 알린 그녀에게 꼽혀서 괴롭히다 차츰 그녀의 시선과 마음을 끌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진시'의 노력이 대단하죠. 마치 초등학생이 마음에 든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을 치는 듯한, 그러나 마오마오는 진심으로 그를 벌레보듯이 상사만 아니었다면, 원래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2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나가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자기를 불러다 후궁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파헤쳐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원래는 밥 먹는 것보다 약이 좋고, 시간만 나면 독을 먹고는 황홀해 하는 괴짜랄까요.
남자에겐 애초에 관심도 없고 첫 만남이 최악이었던 진시에 대한 마오마오의 첫인상도 '게이'였으니, 그 게이에게 속아 넘어가서 내가 병을 밝힌 그 약사입니다.라고 선언한 꼴이 되어버린 마오마오는 진심으로 죽고 싶은 심정. 그 길로 공주를 낳은 '고쿠요 비'의 독 시식 담당으로 들어가는 출세 코스라고 하기엔 지옥 코스였지만 여기서 또 이 작품 특유의 개그가 쏟아집니다. 독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신조라는 게 밝혀지고 황홀하게 독을 먹는 그녀를 표현하는 부분은 혀를 내두르게 하죠. 궁에 들어오기 전에 독 만찬을 펼칠 만큼 괴짜였고 그런 평소 그녀를 바라봤던 아버지(아직 살아 계심)는 10달 만에 집에 온 딸에게 '늦었구나'이러고 있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되나.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분풀이는 해야겠죠. 진시와의 관계를 딱 그렇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에게 독설과 벌레 보는 눈을 날리면서도 명령엔 따를 수밖에 없고, 죽어가는 리화 비(후궁)의 처소에 갔을 땐 마치 여중생들이 싸우는 듯한 모습으로 시녀들을 휘어잡는 장면은 정말. 약초를 구해다 제조하는 낙으로 사는 사람을 잡아다 허드렛일을 시키고 이젠 사건사고에 밀정 역할까지, 거기에 매일같이 찾아와 찝쩍거리는 진시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러다 마오마오가 다른 남자와 동침했다고 지레짐작한 진시가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좌절하는 모습은 또 다른 유쾌함을 선사하죠.
맺으며, 약사인 아버지가 옛날에 어느 위치였는지 밝혀지면서 마오마오의 출생도 관심이 생겼는데요. 친아버지처럼 굴다가 느닷없이 주워온 아이라는 복선이 뜨니까 이거 혹시 서자(왕과 평민의 자식)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였는데 이건 아닌 거 같고, 진시에 대한 복선도 나왔는데 황제가 아닐까 했지만 다른 후궁들이 몰라볼 리 없을 테니 왕족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마오마오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전체적인 내용은 궁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해결해나가는 추리물이지만 위에서도 나열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개그가 상당히 일품이라 할 수 있군요.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을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