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4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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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평할 거면 안 보면 되잖아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같은 레퍼토리도 한두 번이지 매번 비슷한 복수 장면이 나오니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복수 대상자를 찾아내고, 그놈이 첫 번째 세계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서술하고, 두 번째 세계에선 아직 아무 짓도 안 한 놈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죽어라!! 하니까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나마 유미스 때는 동생 슈리아의 처우나 자신(유미스)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죽인 결과 응당 벌을 받는 느낌이긴 했습니다만. 그 외의 인간들, 사실 임팩트가 없다 보니 누구누구가 복수 당했는지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지만 유미스 이외엔 사실 억울하기 짝이 없어요. 일명 악당으로 나오는 복수 대상자들은 본성이 추악하고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성격이긴 한데 그렇다고 주인공에게 복수 당할만한 짓을 주인공에게 '아직' 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느닷없이 찾아와서 복수랍시고 뚜뚤겨 패는데 자다가 봉창 뚜디린다는 이런 건가 싶었을 겁니다. 물론 놔두면 똑같은 짓을 하겠죠. 하지만 첫 번째 기억을 가졌다면 그 길을 회피할 수 있잖아요. 요점은 잘못이 없는 사람을 왜 괴롭히는가입니다. 물론 복수 대상자들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복수 과정도 참 악랄하기 그지없어요. 고문이라는 단계를 넘어섭니다. 사실 고문이야 무고하게 죽임을 당해서 울분이 엄청 쌓였을 테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상관없는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는, 화풀이만 할 뿐인 살인귀가 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 놓고 복수 대상자 주변인들까지 죄다 같은 말로를 걷게 하는 건 연좌제 그 이상은 아니었군요. 자기가 정한 룰도 지키지 않는 주인공, 그래놓고 뻔뻔하게 뭐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최악의 주인공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복수 대상자는 어느 도시에서 대상회를 꾸려가고 있는 '그론드'라는 사내입니다. 첫 번째 세계에서 주인공의 지식을 빌려 마도구를 만들어 떼부자가 된 인물이죠. 주인공은 그 돈이 불우이웃에 쓰인다면 딱히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악당이 다 그렇듯 나쁜 짓을 하고 있었고 주인공이 왕녀에 의해 마왕으로 몰렸을 때 그를 죽이는데 동조하게 됩니다. 여기서 용사(주인공)가 돌보던 고아원 아이들이 희생되는데요. 이것만으로도 주인공에게 복수의 근거가 되긴 충분했습니다만. 두 번째 세계에선 주인공은 지식을 빌려주지도 않았고, 아직 고아원의 아이들이 희생되지도 않았죠. 그런데 쳐들어가서 이놈 잘 만났다 뒈져라~ 이러니까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물론 지금의 그론드도 떳떳하지 않은 일들을 벌이고 있었고 막 고아원 아이들을 희생 시키려고도 했지만요.
문제는 이게 아직은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위해로 다가가진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론드는 황망할 따름입니다. 물론 착한 놈도 아니고 미래에 나쁜 짓을 벌이려던 계획은 있어서 어느 정도 개연성은 확보했습니다만. 죄를 짓지 않았는데 처벌부터 하는 부조리가 생기죠. 게다가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에게 인생에 관련해서 괜한 참견했다가 죽임 당하는 그론드 측근 페그너는 정말 부조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생의 연장자에게 쓴말을 조금 들었다고 살의를 품다니 제정신인가 싶죠. 그래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일단 복수 대상자를 악의 축이라고 정의는 하였지만 애초에 이런 복수극에서 선과 악을 찾는 것도 난센스이긴 하죠. 게다가 아무리 주인공의 복수를 공유하고 있다지만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가 저지르는 만행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누가 많이 죽이나, 누가 제일 끔찍하게 죽이나, 누가 제일 고통스럽게 죽이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낄낄 웃고, 태연하게 차를 마십니다. 그만큼 그녀들은 정신이 망가질 정도로 배신의 고통이 컸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런 걸 보면 첫 번째 세계에서 주인공에게 위해를 가했던 악의 축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론드를 찾아가기 전에 마약을 만드는 범죄 집단을 습격해서 도륙하는 장면은 악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죽어 마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살인을 즐기는 건가? 웃으면서 그런 짓을 하는 거 보면 분명 줄기기 위한 목적도 있을 거라는, 물론 주인공이든 히로인 입장에서 보면 상대는 죽어 마땅하겠지만 사회엔 통념이라는 게 있어요. 말이 복수지 이쯤 되면 그냥 살인이 하고 싶어서 나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죠.
아무튼 정석적인 소설가가 되자 출신 라노벨답게 주인공 보정은 끝판을 달리는데, 매번 힘내는 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적을 무찔러가는 가식덩어리랄까요. 적이 아무리 강해도 어렵지 않게 이기는 것. 이번 노노릭이라는 낭자애와의 싸움도 딱 그렇습니다. 실력은 노노릭에게 한참을 못 미친다면서 전생의 경험으로 엇차! 서걱 끝. 그렇다고 노노릭의 실력이 형편없지도 않아요. 본 실력이라면 주인공보다 월등히 높다고 서술하고 있죠.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도 주인공에게 힘을 받았다지만 매번 아무렇지 않게 서걱서걱 썰어가는 모습은 무미건조하고 고문하는 장면은 악랄함을 선사합니다. 상대는 그냥 비명만 질러대고요. 어디에서 흥미 포인트를 잡아내고, 어디서 의의를 찾아야 하고, 어디서 시사하는 바를 찾아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맺으며, 망가졌다.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한 게 이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고 죽임 당한 충격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겠죠. 그래서 주인공 일행이 복수극을 펼치는 건 얼추 정당성은 있습니다.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죠. 이게 흥미 포인트이긴 한데 일방적으로 살육할 뿐이고 고문 교과서를 보는 듯한 장면에서 뭔 흥미를 찾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에선 자잘한 개연성은 찾을 수 있어도 결정적인 개연성이 없어요. 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직 두 번째 세계에선 악당은 주인공에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죽임을 당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세계 때의 기억을 억지로 보면서요. 같은 인물이라도 내가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죽임을 당하다니 이보다 억울한 게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기만족을 위해 복수를 펼친다 할 수 있죠. 이미 작중에서 비슷하게 긍정도 하였고요. 이게 뭐가 재미있을까 하는 고찰을 시간 나면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