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니시노 2권 리뷰 -과연 분코로리 작가 답다-

현석장군 2019. 5. 3. 21:17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여전히 글도 깁니다.

뭐, 확실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 비단 픽션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비싼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에 38선이 생기는 거 보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카스트도 허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내 외모지상주의 사상에 찌든 고등학교라는 자그마한 사회를 이룬 곳에서 외모 중위권 이하는 인간 취급도 안 해주는 모습을 보면 참 씁쓸해요. 외모와 제력을 동일선상에 두고 인간을 판단하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넓은 면에서 본질은 같은 거니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픽션이니까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읽는 사람에 달렸다고 하겠죠.

 

니시노는 그냥 송충이는 솔 잎만 먹고살아야 된다는 진리를 계속 실천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타인과의 접점을 만들지 않고 나아 갔다면 적어도 비참한 현실은 직시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터부시 혹은 배덕감을 얼마나 충실히 표현하느냐에 따라 집중도의 높 낮이가 정해지고, 그 높 낮이에 따라 작품의 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런 표현력에 있어서 매우 충실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터부시 되는 인간의 존엄을 살살 건드려 집중도를 높이고,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모습은 현실이나 픽션이나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군요.

 

아무튼 니시노는 오늘도 커뮤니 장애에서 오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문화제를 준비 중인 A반(니시노 학급)에서 그는 오늘도 걸레를 들고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군요. 그의 곁에서 반장 '시미즈(여학생)'는 마치 오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니시노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고요. 사실 반에서 왕따 당하게 된 시초는 시미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합니다. 문화제 준비 첫날에 자기의 위치를 모르고 설치는 니시노가 못마땅하게 느껴져서 하대하듯 대한 게 시작이었죠. 그전에 송충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니시노에게도 잘못은... 없겠죠. 왕따 당한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왕따시킨 사람이 잘못이니까요.

 

그렇게 니시노의 카스트 등급은 반을 벗어나 전교에서도 최하위에 이르게 되고 말아요. 갈수록 그의 학원 라이프는 시궁창을 넘어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기야 문화제 수익금이 도둑맞는 일이 벌어지고 그 도둑으로 니시노가 지목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으레 제일 못난 놈이 범인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카스트 제도이죠. 사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으면 그냥 괴롭힘으로 희열을 느끼는 저급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극복하고 괴롭히는 상대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이전 작 '다나카'를 보셨다면 분코 로리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있기도 하죠. 주인공이 빛 보는 일은 없다고, 그리고 멀쩡한 히로인도 없다는 걸 알 수 있고요. 거기에 외모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이야기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히로인 따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런 대표적인 히로인이 시미즈가 되겠죠. 얼굴로 모든 걸 판단해서 니시노가 범인이 아님에도 몰고 가려는 투철한 준법정신은 정말 눈물을 앞을 가리죠. 이게 다 그의 면상이 찌부러진 개구리 같아서일까요. 근데 니시노의 내면을 보려고 해도요. 입만 열었다 하면 시니컬한 애늙은이같이 말을 해대니 도통 감정이입이나 동조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그가 괴롭힘당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태어나면서 얼굴을 온라인 게임처럼 고를 수도 없는 걸. 그렇다면 찌그러져 있기나 하던지라는 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모든 히로인이 느끼는 공통점이라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니시노의 입장은 정말로 처참하다 할 수 있죠. 근데 사실 외모야 그렇다 처도 말투에서도 누가 커뮤니 장애 아니랄까 봐 듣는 입장에서 짜증을 솟구치게 하는 것도 원인이기도 합니다. 정작 문제는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골치 아픈 거죠.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왕따 당하는 원인 제공을 솔선해서 하고 있으니 동정하려 해도 해줄 수 없는 특이한 주인공이랄까요.

그런 와중에 등장한 '로즈'라는 금발 로리는 니시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뒷세계 동종 업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경쟁관계라는 입장에서 서로 죽여야 되는 팔자. 얼떨결에 그녀를 구해주면서 인연을 맺은 건 좋은데, 썩어도 준치라고 그녀가 품은 마음을 간파한 덕분에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게 천운이라면 천운이라고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로즈와는 평범하게 대화를 잘 해요. 그런데 다른 이성과의 대화는 원활하지 않는 이상함. 시미즈라는 여학생도 그런 점에서 많이 의아해하기도 하죠. 아무튼 지구 주위를 도는 달처럼 그가 가는 곳에 은근슬쩍 따라붙는 로즈의 정체는 무얼까.

 

"나는 지금 XXX를 생각하면서 자X하느라 바쁘거든?"

 

1권 리뷰에서 로즈를 머리에 꽃 꽂은 여자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평가가 틀렸으면 어쩌나 했는데요. 사실 전조는 있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는 개구리 면상을 전학 오자마자 어프로치를 해대고 급기야 목숨이 구해지고 본격적으로 대시하는 모습들에서 예사롭지는 않았죠. 주인공이 돼지 체형이든 간장 얼굴이든 내면이 괜찮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히로인이 붙었는데, 로즈를 보며 이 작품도 그런 계열인가도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로즈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사실 그녀가 꾸민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언급은 없군요.

 

무슨 말이냐면...

 

중반 이후로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추리물에서 기용하는 해답 편에 해당하는 이야기에서 로즈의 정체가 드러나죠. 이 부분을 보면서 과연 분코 로리 작가답다 했습니다. 이전 작 다나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멀쩡한 히로인이 없다는 계보를 이 작품에서도 그녀를 통해서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롭게 합니다. 사실 틀에 박힌 클리셰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분코 로리 작가의 손에서 쓰여진다면, 다나카를 보신 분이라면 예상 가능할 겁니다. 제대로 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요. 노파심에 쓰자면 형편없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표현력에 있어서 거의 동인지 수준이죠. 그렇다고 복수물에서 흔히 보는 그런 동인지 같은 거라면 오산이고요.

 

그리고 니시노가 왕따 당하게 된 원인도 밝혀지죠. 시미즈라는 여학생은 그저 당겨진 방아쇠에 맞춰 목표물을 총알 선상에 갖다 세워 놓은 것뿐, 진정한 흑막이 모습을 드러낼 때 니시노는 어떤 결단을 내릴까. 여기서도 다나카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군요. 다나카에게 빠져 죽고 못 사던 에스텔을 그대로 옮긴 듯한. 그래서 필자는 1권 리뷰 때 히로인 취급이 좋지 못하다고 언급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3권을 리뷰를 위해서 범인을 밝히고는 싶지만(눈치 빠른 분이라면 알 텐데?), 이건 그때 가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죠. 그저 니시노는 여자복이 없다고만, 그도 이제야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는 없다는 걸 눈치 까고 더 이상 청춘을 학교에서 찾지 않겠다는 부분에서 좀 서글퍼지기도 했군요.

 

맺으며, 이 작품이 시사하는 건 분수에 맞게 살자. 송충이는 솔 잎만 먹자.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이 작품에서는 사회적 매장). 얼굴만 보는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 없다. 누명을 쓰면 차분하게 반박하자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성을 기르자. 자신을 괴롭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면 호구 밖에 되지 않는다를 보여주죠. 그럼에 인생의 승리자는 누가 될까. 부모를 잘 둔 금수저야 아무렇게 놀아도 금수저지만, 흙 수저는 노력하지 않으면 흙 수저일 뿐이라고 역설하는 게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벌써 자기 일을 하는 니시노와 노는 것에 정신 팔린 아이들. 니시노는 그 아이들의 허황된 꿈 이야기를 짓밟아 줄 수 있을까.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