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고블린 슬레이어 9권 리뷰 -병아리에서 어미닭으로-

현석장군 2019. 5. 31. 21:55

 

역시 이론보다는 실전인가 봅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쓸모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바로 경험이라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여신관'은 이론보다는 실전을 겪으며 성장하는 타입이라 할 수 있군요. 그녀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 중에 제일 많이 구르는 존재이죠. 첫 번째 모험에서 실패를 겪고 그대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최후를 맞이할뻔하였던 것이, 고블린 슬레이어를 만난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경험이 되었을까. 이후 고블린 슬레이어를 따라다니며 실전을 통한 경험은 양식이 되어 그가 없는 실전에서 빛을 보게 되는,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히로인 중에 제일 축복받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고블린 슬레이어는 소치기 소녀와 옆 마을에 배달을 나갑니다. 그래서 여신관을 위시한 나머지 동료들은 개점휴업 상태, 전위가 부족한 게 이럴 때 발목을 잡는군요. 그가 빠졌다는 이유로 단숨에 전위 부족으로 모험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다니요. 눈보라가 치는 겨울 막바지, 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계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거운 수프를 할짝할짝 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자기들도 끼워 달라는 듯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가 기웃기웃 하고, 그들을 내치지 않고 수프가 담긴 그릇을 내미는 드워프 도사에게서 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조금은 그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여신관, 어찌할까 하던 중 수습 성녀가 지고신의 신탁을 받아 북방 눈 오는 산으로 가서 이 겨울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게 되었다며 같이 가자고 하는데...

 

두 가지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소치기 소녀가 매일 도시로 납품하듯이 이번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옆 마을로 배달을 가게 된 고블린 슬레이어와 소치기 소녀가 맞닥트린 오우거와 고블린 떼,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빠진 채로 파티(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 포함)를 꾸려 북방으로 향하게 된 여신관 파티가 맞닥트린 얼음 마녀와 거인들 그리고 내청코의 토츠카 같은 토끼 소년과의 만남. 과연 둘이 있어 하나가 되고 셋이 있어 파티가 되는 이들에게 서로가 빠진 채로 파티를 꾸려 기도하지 않는 자를 만났을 때. 고난과 역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동안의 배움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여신관은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동료가 없는 고블린 슬레이어는 예전 파티가 있어서 대응할 수 있었던 오우거를 상대로 소치기 소녀를 지키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눈부신 점은 여신관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봐왔던, 그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고찰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가며 파티를 이끌고 최적의 방법으로 적을 소탕해가는 모습이 참 흥미롭습니다. 더 이상 움찔 거리지 않고, 더 이상 겁먹지 않고 나아가는 것. 주변의 따듯한 시선에 볼이 뜨거워져도 수줍음이 몰려와도, 예전 같으면 주저앉았을 상황에서도 허세를 부릴 줄 아는 진정한 모험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를 향한 연심은 갈수록 커져서 속앓이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고블린 슬레이어니까요. 오면 오고, 가면 가는 대로 놔두는 게 그의 성격에다 여신관이 없다고 해서 모험을 그만둘 그가 아니기에...

 

이번 테마는 모두의 성장입니다. 그중 가장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게 여신관인데요. 병아리에서 어미닭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죠. 다른 이들도 조금식 더 강해진 모습을 보이고요. 그리고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의 경우도 쥐잡이라는 기초를 열심히 한 덕분에 어엿한 모험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툭하면, 조금만 벗어나면 죽음의 골짜기가 자리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잘 없거든요.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를 연모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가는 여신관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안타깝게도 합니다. 이런 건 사망 플래그 밖에 되지 않는데... 하기야 매번 해당 히로인 에피소드를 보면 그를 향한 연심이 높지 않은 히로인은 없었긴 합니다만.

 

맺으며, 고블린 슬레이어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후반 목장에 나타난 레아 영감의 등장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오로지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고블린에 대한 증오만을 가슴속에 꽉 채우고 있었던 그에게 지킬 것이 있고 같이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아버린 레아 영감의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하는 삶의 표현에서 히로인들의 앞 날이 밝아지는 게 아닐까도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부제목을 '토끼 소년의 정체를 밝혀라'라고 하고 싶었는데요. 이번 9권 일러스트는 1~8권에서의 일러스트보다 질적인 면에서 많은 하향을 보여주더군요. 그래서 토끼 소년의 등장은 선입견을 심어주기에 딱 좋았고, 후반 반전이 있었을 땐 뭐야라는 심정이었다랄까요. 1회성 캐릭터가 아닌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의 파티에 끼이는 걸 보니 앞으로도 종종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