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이세계 고문공주 3권 리뷰 -여러모로 답답함이 느껴지는-
스포일러와 글이 깁니다. 악평도 많이 들어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대왕]의 계약자 피오레의 공격은 엘리자베트와 세나 카이토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둘이 같은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도 초래하였죠.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마왕도 쓰러트린다는 모 라노벨의 주인공에게 자극받았는지 자신(카이토)을 구원해준, '엘리자베트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다고?' 마치 성질난 고양이가 책상 위에서 휴대폰을 깔짝 거리며 집사야 이거 봐라는 식으로 밑으로 툭 떨어트리 듯이, 세나 카이토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분풀이하듯이, 제 성질에 못 이겨 그만 악마 중에서 최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황제]와 계약을 맺어 버리는 막가파식 행보를 보여주고 맙니다.
이로써 세나 카이토와 엘리자베트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게 되었죠. 애초에 열넷 악마를 쓰러트리면 화형 당하는 걸 기정사실화된 지금, 엘리자베트에게 있어서 미래란 없는 거나 다름없었긴 합니다만. 그런 점에서 세나 카이토는 어리둥절해 합니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주범인 엘리자베트의 죄 보다도 자신을 구원해준 그녀가 어째서 죽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의문을 품어 가죠. 모든 사람들이 악마라 비유하며 그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카이토, 전생에서 학대받은 끝에 죽은 결과 제대로 된 인격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듯이 편향된 사고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어딘가가 이성이 결여된 듯한 모습은 다른 의미로 안타깝게 합니다.
자, 파탄만이 기다릴 뿐인 미래라는 걸 알면서도 [대왕]을 격퇴하고 [황제]와 계약을 하고 그렇게 균열 밖에 없는 일상이 돌아오나 했는데 왕도에서 [군주], [대군주], [왕]의 융합체의 등장으로 왕도는 궤멸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교회는 엘리자베트에게 구원을 요청하죠. 과거 자신들을 유린했던 그녀에게 기댈 만큼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왕도에 도착한 엘리자베트와 카이토는 지옥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엘리자베트가 과거에 저지른 업보랄까요. 엘리자베트가 과거 교회 정예 기사 대부분을 학살한 결과 융합체를 막지 못해 왕도는 1/3이 궤멸, 엘리자베트는 참전을 결정하나 융합체를 쓰러트리면 열넷 악마의 토벌은 끝... 이 말이 의미하는 건?
필자가 왜 이 작품에 감정이입을 못하나 그동안 고찰을 해봤는데요. 주인공이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 그는 엘리자베트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요. 여기서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킨 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 특성이 반영된 듯한 느낌이 들었군요. 카이토는 자신을 구원해줬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그녀의 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융합체를 쓰러트리기 위해 왕도에 갔다가 기사들이 악의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너무하다'라는 반응을 보였을 때 기가 막혔군요. 그녀로 인해 가족이, 연인이, 죽었는데 그 아픔은 생각도 안 하는 카이토의 일그러진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리고 선민사상, 왕도의 참상을 보고 '도와줘야겠네'가 아니라 '우리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거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고 할 수 있었군요. 그럼에도 교회 기사단은 이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참담함이 베어나죠. 엘리자베트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그렇기에 나서서 왕도를 구원하려 하죠. 남들이, 교회 기사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들을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듯 혼자서 짊어지려 합니다. 그걸 이해 못하는 카이토, 자신을 구원해줬다는 이유로 그녀가 이런 대우를 나아가 죽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며 마치 애가 떼쓰듯 하는 행동은 발암 주의보까지 발령해야 될 지경입니다.
종국엔 기사단을 보고 느낀게 없는지 여전히 그녀의 죄를 부정하며 이대로 성으로 돌아가 가족놀이를 하자고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나아가려 하죠. 화형은 그녀에게 있어서 속죄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카이토는 그걸 부정합니다. 학대받은 가정의 아이는 커서 두 개의 길을 간다고 하죠. 하나는 부모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것, 두 번째는 숨겨두고 끔찍하게 아끼는 것(1), 세나 카이토는 두 번째의 길을 걸으려 하죠. 그게 자신의 아이의 발목을 잡는다는 걸 모른 채 말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부정하고, 엘리자베트의 죄를 부정하고, 속죄하려는 마음을 짓밟고 그저 성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살자는 카이토는 과연 정상인가?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엘리자베트, 그런 그녀를 보며 또 자신의 성질에 못 이겨 사달을 일으키는 카이토. 작가가 이전 작 주인공 오다기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있어 보이는데 그 방법이 너무 극단적입니다. 마치 내 마음을 몰라주면 자해를 하겠다는 것마냥 카이토는 진짜로 자해 비슷한 짓을 저질러 가죠. 그 첫 번째가 [황제]와의 계약이었고요. 더욱 암 걸리겠는 게 엘리자베트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지 헤아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많은 것을 잃고, 죄를 짊어진다는 것, 그녀는 그걸 알고 있기에 카이토만은 양지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깡그리 무시....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서 그녀의 무죄를 끌어내는 게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요. 그녀가 왜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물음은 꾸준히 나오지만 답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른 형태로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아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으로 인해 한없이 이상주의자에 자기 성질에 못 이겨 깽판이나 치는 저능아 같은 주인공이 태어나 버렸는데 이 책임은 어떻게 지려고 그럴까요.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걸까요. 그렇다면 피해자는?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맺으며, 본질은 무엇인가. 엘리자베트는 과거에 정말로 사람들을 학살했는가? 그녀가 이번 왕도 사태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기사단이 짊어져야 될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에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왔군요. 손 쓸 수 없는 사태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선 죽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 이번 왕도 사태는 그 재림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거에 대해 언급은 없군요. 그저 내 죄는 내가 짊어지고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그녀의 말은 때론 고지식하고 주인공 카이토만큼이나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아무튼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이번 리뷰는 완성도가 매우 낮군요. 원래는 2권에서 하차하려 했는데 필자의 고질병인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구입해 있더라의 폐해랄까요.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배송비 안 내려고 뭔가 끼워 넣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구입을 하나 봅니다. 반품하려 해도 반송비나 도서 가격이나... 덕분에 항마력이 올라가긴 했는데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군요. 그동안 라노벨만 400권이 넘는데 이렇게 혐오를 느끼는 작품은 두 번째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의 성향을 비꼬는 건 아니지만 용케도 보신다 싶습니다. 필자의 리뷰를 출판사에서도 체크를 하는 거 같던데 해당 출판사엔 미안한 마음뿐이군요.
- 1, 물론 학대받은 모든 아이들이 두개 밖에 없는 길을 간다는건 아닙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