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무직전생 4권 리뷰 -욕망과 솔직함 그리고 배덕의 경계-

현석장군 2019. 6. 20. 19:45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는 일을 저지를 때 배덕감을 느낀다고 하죠. 가령 이성 관계로 예를 들자면요. 1부 다처제나 1처 다부제(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함)가 아닌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1부 1처제가 보편화되어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 겁니다. 인간은 동물계이지만 그렇다고 짐승은 아니죠. 굳이 종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윤리적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윤리규범을 지키며 살아가지 않으면 죽는 체질도 아니기에 때론 일탈을 꿈꾸기도 하는데요. 일부에서는 이걸 모험심으로 포장하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려 하죠. 그래서 내가 하지 못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빠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이 작품은 그런 게 있죠. 히로인을 대량으로 출연 시켜서 용인되는 양다리를 거치게 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 규범을 따르면서도 다른 여자들을 몰래몰래 만나서 관계를 맺어가는 그런 배덕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나아가 궁극적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주인공은 대놓고 배덕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얼굴에 철판을 깔아가기도 하죠. 뭐, 이건 차후에 더 언급하기로 하고요. 어쨌든 아직은 시작점이라서 그런지 일탈을 꿈꾸면서도 선을 넘지는 않고 있습니다. 주인공이고 히로인이고 다들 10대 초반(록시 빼고)인데 벌써부터 손대면 배덕을 넘어 범죄가 되어 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죠. 예로 에리스의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수인 사랑이라던지, 범죄자들이 보여주는 추악한 장면 등 좋은 말로 포장해주기엔 무리가 있는 장면이 제법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전이 사건에 휘말려 마대륙으로 날려간 주인공 루데우스와 히로인 에리스는 중앙 대륙 아슬라 왕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족 루이젤드를 만나 보호를 받으며, 모험가로 등록하여 돈을 벌며 시작한 여행은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꼼수를 쓰다가 걸려서 협박도 당하고 강한 마물을 만나 죽을 고비도 넘기기도 하면서 성장을 해가는데요. 이 작품의 특징은 여타 먼치킨물처럼 단순히 외면적인 실력만 성장하는 게 아닌 내면 성장에 중점을 뒀다는 것입니다. 실수를 통해서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던지 의견 충돌에서 내 의견만 관철하는 게 아닌 주변의 말도 들어가며 나의 잘못을 되짚고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해가는 모습 등이 굉장히 흥미롭죠.

 

그럼에도 최선의 선택조차 최악으로 다가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 사회란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배워가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무엇보다 지키고 싶은 에리스의 목숨, 그러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서 행동에 나서는 모습은 장차 겉만 번지르르한 쭉정이가 아닌 속이 꽉 찬 먼치킨의 탄생을 예고하는 게 아닐까도 했군요. 그 일례로 마대륙에 있었던 말대가리 노코파라에게 협박 당한 일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겠죠. 하지만 아직은 어린 애라는 특성을 버리지 못하는 측면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이번 수인족 아이들 납치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인과 관계를 불러오는지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야 말죠. 마대륙을 벗어나 인간과 수인족이 공존하며 사는 미리스 대륙으로 넘어올 때 루이젤드를 밀항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가 내린 결단은 운세 뽑기에서 최흉을 뽑은 거나 다름없게 됩니다.

 

뭐, 실수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상황적으로 사실 주인공은 거기에 걸려든 것일 뿐 주인공이 없었어도 벌어질 일이었으니 주인공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옳지 않기도 합니다. 요점은 그로 인한 주인공의 성장이라 하겠죠. 세상엔 이런 일도 있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자기 몫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도 했습니다. 아무리 이세계 먼치킨계열의 주인공이라도 안 되는 일은 어떤 몸부림을 치던 안 되는 것이고 내 손은 두개 밖에 없는 관계로 다 지켜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죠. 수인족 마을을 급습한 노예꾼들이 보여주는 악랄함과 수인족이 처한 비참한 현실, 방금까지도 이야기를 나누며 안면을 텄던 사람들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글이 좀 길어지는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주인공은 욕심도 많아서 자기는 양다리 거치면서도 에리스가 루이젤드와 가깝게 지내는 것에서 질투를 느끼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군요. 이 작품이 이런 느낌이 강하죠. 내가 마음에 든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에서 저것들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뭔 짓을 할까 하는 두근거림? 이거 좀 위험한데, 이게 질병으로 커지면 관음증이잖아요. 하지만 작가는 막장으로 치닫는 걸 좋아하진 않는 거 같더군요. 직전에 브레이크를 걸어댑니다. 야설과 예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뒤집지를 못하네요. 이번에 마계대제 키시리카를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다리를 할짝 하면서 거의 뒤집을 뻔도 하였습니다만. 뭔가의 복선인지 그녀를 만나 스킬을 하나 받고 조금은 더 성장하는 루데우스, 본능에 충실하지 않은 것에 찬사를 보내야 할지 야유를 보내야 할지...

 

맺으며, 이번 4권은 철없는 꼬맹이에서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중 일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해결하며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배워가는, 그로 인해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고. 패배에 분해하지 않고 밑거름으로 삼아 성장하는 모습은 다른 여타 작품의 주인공들도 배웠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랄까요. 그런데 주인공이야 현실 나이까지 하면 40대 중반이라서 부모를 찾을 나이는 지났다지만 에리스는 부모와 할아버지가 걱정되지 않는 걸까요. 때론 뭔가를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루데우스만 힐끗힐끗 처다만 보고 있으니 부모도 업이 참 깊다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록시와의 엇갈림에서 조금은 슬프게 하였군요. 한가지 아쉬웠던 건 루데우스를 찾아 마대륙으로 건너온 그녀와 미리스 대륙으로 넘어가는 그와 교차하듯 시선처리를 했다면 정말 극적인 연출이 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놈의 배덕의 경계에 충실한 작가 덕분에 분위기를 다 망칩니다. 엘프 엘리나리제의 등장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처럼 느껴졌고요. 아주 작지만 복선을 투하합니다. 그리고 수인족 마을에서 인간 기스와의 만담은 제법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처참함은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시리어스를 보여주죠.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고 한번 시작하면 가차 없다는 것이군요. 평온함에 숨은 섬뜩함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