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무직전생 5권 리뷰 -유능한 것도 생각해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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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좀 깁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학업 실력과 아이 같지 않은 발상을 보여준다면 부모로서는 이놈 천재일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만 할 겁니다. 그러다 성장하면서도 다른 아이보다 특출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확신으로 넘어가고 그러면 부모는 영재교육이다 뭐다 애를 잡기 시작하죠. 주인공 루데우스의 아버지 파울로는 아들에게서 그런 면을 봤을 겁니다. 한 자릿수 나이의 아들이 실생활은 물론이고 대련 중에서도 기발한 발상으로 자신의 발을 묶고 범상치 않은 마법 실력을 보인다면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들의 기발함은 기행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소꿉친구(히로인 실피)를 조련해서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몸으로 만드는 장면을 보고는 이놈은 천재가 아니라 미친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겠죠.
이제까지는 그냥 이세계 먼치킨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면서 봤었습니다만. 이번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니 전생해서 이세계로 날아온 현세의 사람을 바라보는 이세계 사람들의 심리를 보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먼치킨 능력으로 못하게 없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이 사람이라면 이 위기에서 빠져나가게 해줄 것이다. 힘이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당연히 해결해 주겠지? 우리보다 머리도 좋은 거 같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겠지?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요. 주인공 루데우스 아버지 파울로는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은 아들을 바라보며 그런 기대를 은연중에 품고 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1년 반이라는 시간과 정신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목숨을 잃는 마대륙을 빠져나온 아들을 만나고도 고생했다는 말보다 '여자랑 노닥거리느라 아주 바빴겠어?(지면 관계상 요약하자면)'
여기서 여자란 걸핏하면 철권제재를 내리는 두 살 연상 '에리스'를 말합니다. 실력 있는 모험가라도 무력하게 나자빠지는 마대륙에서 여자애를 지키며 주인공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도 모르고, 게다가 아들이 재해로 날려갈 때의 나이는 고작 10살, 아버지는 대체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파울로는 마력 재해 때 딸 노른과 함께 미리스 대륙(고향까지 걷든 마차를 타든 1~2년 가까이 걸리는 거리)으로 날려 갔더랬습니다. 그리고 딸을 대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아무것도 없었죠. 그때부터 아버지는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와이프와 두 번째 부인(리랴)와 리랴의 딸 아이샤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온 대륙을 뒤지고 다녔죠. 겸사겸사 수색단을 꾸려 피트아령 사람들도 구출하고 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찾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자 반미치광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근데 그때 아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여자를 끼고 나타났으니 꼭지가 안 돈다면 오히려 이상한 거죠. 나는 가족과 고향 사람 찾는다고 미친놈이 되어 가는데 너는 여자랑 노닥거리며 다녀? 파울로는 바뀐 게 없었습니다. 편향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까요. 지레짐작을 하는 타입이랄까요. 앞 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다고 할까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고 상황을 판단해버리니까 상대 입장에서는 반론도 하기 전에 싸다구 맞는 격이죠. 파울로는 어릴 적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영민함이라면 마대륙에서 가족과 고향 사람을 찾아 주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어요. 정작 아들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모른 채, 그러니까 이세계 전생시 함부로 먼치킨이라는 걸 내비치면 안 된다는 걸 역설하기 시작하죠. 10살짜리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어 버리니까 당연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상황상 금기어나 다름없는, 루데우스는 수색단내 여자들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너 님(아버지)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고 직언해버리면서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니까 평소 행실을 조심했어야죠. 결혼 전 발정 난 개처럼 온 동네에 DNA를 뿌리고, 결혼 후에도 리랴에게 손을 댔으니 루데우스 입장에서 아버지의 인상이란 뭐 나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멱살잡이로 발전해도 이 또한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뭐랄까. 과도한 기대와 선입견이 부른 참사라고 할까요. 1년 반만에 눈물 어린 상봉이 아니라 드잡이였으니, 듣기로는 5권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성장을 볼 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이 부자(父子)는 싸움에서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게 아닐까 싶은? 뭐 사실 루데우스도 마력 재해를 너무 쉽게 본 경향이 있으니 그도 생각이 짧았다고도 할 수 있죠.
자신들이 날려 왔으면 가족이나 고향 사람들도 마대륙에 날려 왔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을 법한데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아버지에게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은 없겠죠. 또 뭐 이렇게 한 단계 시야를 넓히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되지 않나 하는 교훈을 얻게 되고 사람으로서 성장해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과 고향 사람을 찾기 위해 미친 사람이 되어 가는 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자신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이것만 알아도 성장이라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나며 가족과 고향 사람을 찾겠다고, 3살 때 헤어지고 다시 만난 동생 노른은 그런 오빠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낼까? 턱도 없는 소리, 아버지를 줘패는 오빠는 인간으로 취급 안 하기로 했으니 앞날은 암담하지 않을까요.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나가는 에리스의 대모험이 볼만합니다. 첫 대인 실전을 겪으며 그녀도 조금식 성장해가고 있죠. 하지만 인격적으로는 여전히 성장을 하지 않고 있어서 루데우스를 폄하하는 파울로에게조차 철권을 내지르려 하니 이 말괄량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파울로에게서 피트아령 상황을 전해 들을 때 그녀의 미래가 어둡다는 복선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히로인, 실피는 어떻게 살고 있나. 그동안 부록 형식으로 그녀의 삶을 보여주곤 하였는데요. 그녀는 루데우스의 마법 가르침 덕분에 어떤 왕녀에 주워져 그렇게 고생은 안 하고 살았습니다만. 이번엔 좀 위기군요.
맺으며, 뭐랄까. 노른이 상당히 귀엽게 나왔습니다. 마력 재해로 아버지랑 같이 날려가 그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것 때문인지 아버지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어서 첫인상 개끗발인 오빠를 아주 철천지 원수로 보고 있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러고 보니 노른도 대머리(노른이 직접 대머리라 칭함) 마족 루이젤드와의 복선을 만들어 버렸더군요. 여타 작품도 비슷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요소요소 앞 날을 대비한 복선을 짧게 많이도 넣어 놓습니다. 나중에 아! 이 장면이 여기로 이어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들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필자의 기억력은 붕어 3초 머리인지라 이야기가 진행되어 복선이 회수될 때쯤 기억을 되살릴지는 미지수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자. 지레짐작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라는 교훈을 던지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루데우스는 아무리 살기 바빴다지만 자신들 말고도 가족이나 고향 사람이 전이되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못했던 점, 그리고 아들은 유능하니까 알아서 잘 해줄 거라는 파울의 과도한 기대로 인해 결국 드잡이로 이어지는 참사가 되고 말았죠. 자, 이후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건 당연한 거고... 작가는 이렇게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 한 단계식 성장해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려 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