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2권 리뷰

현석장군 2019. 11. 1. 14:33

 

좀 심각한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글도 좀 길고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자, 여러분이 만약 약혼을 하였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파기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 작품의 히로인 '알리시아(표지)'는 서키스타라는 나라의 둘째 공주로 자라나 어릴 때부터 주인공 데닝의 약혼자 포지션으로 지내 왔었죠. 그러나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유아시절 때 그 데닝에게 전속 종자 샬롯(메인 히로인)이 붙으면서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이 미친X이 글쎄 느닷없이 파혼을 선언해버린 것인데요. 그리고 온갖 망나니 짓을 저지르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파혼이라는 굴욕을 겪었건만 알리시아는 이런 인간과 약혼이라는 이력까지 붙어 버렸으니 그녀의 미래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겠죠. 그렇지 않아도 왕녀라는 프라이드가 있는데 그녀가 느꼈을 분노는 꽤 컸지 않을까요. 자신을 버린 남자, 그런데 집안끼리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가 다니는 마법학교에 입학을 하게 돼요.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게 눈길 하나 안 주고 있지 뭡니까. 부아가 치미는건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서 여보란 듯 '슈야'라는 남자를 옆에 끼고 데닝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댑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돼지 돼지라고 놀리는 수준이 아니라 비하를 해대고, 인간 취급도 안 해줘요. 여기서 문제는 돼지 데닝이 왜 자기와 파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받은 충격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일단 주인공이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된 거긴 한데, 시종일관 주인공 주위를 맴돌면서 창피를 주는 모습은 참으로 발암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주인공 데닝도 지은 죄가 있어서 줄곧 저자세로 나가는데 니 모습은 줏대 없고 배알도 없고 발암적인 게 아주 쌍으로 보는 이를 미치게 만들어요. 이번 2권은 줄곧 이런 발암적 전개가 펼쳐지는데요. 사실 돌이켜보면 다 주인공 때문이라 할 수 있어요.

 

샬롯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주며 알리시아를 달랬으면 돼지라 비하 당하는 것에서 최소한 인간으로 승격을 해줬을 거란 말이죠. 모르니까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니까 부아가 치미고, 그런데도 일말의 희망 때문에 버리지는 못하겠고, 알리시아의 폭주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합니다. 이번 왕녀를 수호하는 '가디언 세리온 - 수호기사 선정시련'이라는 시험에 '로열 나이츠(왕실 기사단)'의 기사 두 명이 마법학교 근처 도시에 찾아와요. 그 기사 중 한 명이 알리시아의 알현을 요청하게 되죠. 주인공 데닝은 이미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라 기사의 알현 요청에 뭔가 안 좋은 일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말리죠. 가지 말라고, 근데 그 도시에 알리시아가 속한 왕족을 죽인 범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애가 눈이 돌아가요. 정말로요. 주인공의 말리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매도당할 뿐입니다.

 

그래도 한때 약혼자였던지라 모른 채는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자신도 선정시련에 뽑힌 것도 있고 해서 같이는 갑니다. 그게 또 못마땅한 알리시아, 이래저래 지켜주려는 그의 마음을 정말 눈곱만큼도 알아주려 하지도 않죠. 아무튼 도시에 도착해보니 주인공의 안 좋은 예감은 조금식 맞아 들어가고, 그에 따라 알리시아에게 경고를 하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알현을 신청한 훈남 기사에게 빠져서는 조사하러 나간다는 미명 아래 그 기사와 데이트를 즐기는데 이건 주인공의 질투심을 끌어내려는 걸까. 얼굴까지 붉히며 여보란 듯이 데이트를 즐기는 게 보는 이에겐 그저 발암 그 이상은 아닌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군요. 주인공이 무슨 말을 건네면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더욱 심한 매도를 퍼부을 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질 않아요. 근데 여기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 하며 뭔가 하나를 유추하게 만드는데요.

 

이거 분명 알리시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주인공이 구해주면서 마음을 연다.

 

필자는 이걸 유추하고 머릿속에 딱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앙?' 이거 언제 적 시나리오인가.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이야기를 여기서 하겠다고? 읽어가면서 필자의 불안은 점차 현실이 되어 가더군요. 주인공에게 버림받은 과거에 대한 짜증과 일말의 마음을 품고 그를 찾아왔더니 눈길 하나 안 주는 것에서 치미는 부아, 그리고 왕족이라는 입장에서 모범을 보여야 되는 그녀에게 있어서 왕족을 죽인 범인을 눈앞에 놔두고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프라이드, 근데 이건 알고 있는가? 1권에서 용병에게 붙잡혀 힘 하나 못 썼던 것을, 마법에 뛰어난 왕족을 죽인 범인이 1권에서 나온 용병보다 약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에게서 느끼는 발암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짜증과 부아는 순정만화에서 흔히 보는 러브 코미디라 치부할 수 있어요. 서투른 연애를 하는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 그렇기도 하고요.

 

근데 이 꽉 막힌 왕녀(알리시아)는 자신의 실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속어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운데요. 아무튼 이미 주인공 데닝이 그녀에게 알현을 신청한 기사가 의심스럽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데닝은 그 기사가 미래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의 일을 밝힐 수는 없었고, 그래서 말렸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질투하냐는 빈정거림이 돌아오니 이거 참 주인공이 뿌린 씨앗이라지만 참 보살이라는 느낌을 받았군요. 이쯤 되면 난 몰라 하고 가버릴만 하건만, 저자세로 나오는 주인공도 참 발암적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나버리고 위에서 필자가 유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집니다. 발암의 완성이랄까요. 궁극적인 발암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자신(알리시아)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죽을뻔하였는데도 반성의 기미는 없고, 그렇게 말렸건만 안중에도 없더니 납치된 자신을 구하러 와준 주인공에게 '구해줘'라니 이건 아니잖아요. 작가님?

 

발암의 완성판에 총체적 난국도 가미되어 있어요. 알리시아가 주인공 데닝에게 쌀쌀맞게 구는 차원을 넘어 인간 취급을해준 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함이었으니 그렇다 쳐요. 아닌 게 아니라 샬롯과 같이 먹고자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에게 얼마나 질투를 해대는지 서투르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애달프게도 하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앞 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우둔함, 아무리 싫어한다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언하는 것까지 매도하며 거부하는 것에서 서툴다 와 애달픈 연애 감정과는 다른, 글자 그대로의 발암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언을 하고 말리고 했는데도 반발심에 나섰다가 주인공이 예고한 것처럼 된통 당해놓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데다 '구해줘'라는 정말 최악의 쓰X기 히로인으로 선정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군요. 근데 이것만해도 벅찬데 여기에 메인 히로인 샬롯도 이 발암 전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발암적 전개에서 주인공도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주인공도 주변에 말하지 않은 것이 있고, 그저 상대가 싫어할 테니 말하지 말아야겠다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라며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샬롯과 연관되면 더욱 말을 아껴버리죠. 그래서 샬롯 위주로 생활하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보내오는 신호를 수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리시아는 나 좀 봐줘라 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던 것이죠. 그게 돼지라는 비하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 같은 행동이었음에도 인지를 못하는, 그래서 알리사아는 더욱 나대기 시작했고 사고가 경직되어 일을 저지르고 말아요. 그래서 발암적 전개라고는 했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히로인이랄까요. 그래도 필자는 납득이 되지 않고 있지만요. 샬롯도 주인공 데닝의 곁을 지키려면 지금보다 성장해야 된다며 전장이 될 어느 장소에 가는 주인공을 기어이 따라가려는 모습도 알리사아에 버금가는 발암 캐릭터랄까요.

 

맺으며, 모두가 발암입니다.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로 인해 짜증을 내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랄까요. 사람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고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니 시비를 거는 것이고, 그걸 알아내 고쳐야 되는데 이 작품엔 그게 없어요. 그래서 발암이 되어 버리죠. 알리시아가 왜 시비를 거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 주인공, 주인공이 왜 자기를 버리고 샬롯과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알리시아, 그런 게 부딪히고 감정이 격해지고 그러다 내 마음을 몰라 주니까 짜증이 나네? 현실에서도 간혹 그런 경우 접하잖아요.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거기에 동참하겠다는 듯이 자신을 지켜 주려는 주인공에 반발하는 식으로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전장이 될 장소에 따라가려는 샬롯,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3명(알리시아, 주인공 데닝, 샬롯)이 만나 약속된 전개라는 것마냥 발암은 완성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2권은 프롤로그이고 3권이 본편이 아닐까 하는 왕녀(알리시아 말고)의 등장은 주인공 앞 날에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정말 발암으로 책을 집어던질뻔하다가도 이렇게 흥미를 끄는 통에 하차를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