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용사님의 스승님 5권 리뷰 -용기와 오만과 자만의 차이, 그리고 우유부단함-

현석장군 2019. 11. 4. 14:24

 

수십 년간 마물과의 전쟁,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고통받는 전란의 시대,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전장, 똟려버리는 전선, 후퇴전을 치르면서 솔선수범하여 최후미에 남아 병사들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도록 전선을 지휘했던 장군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장군의 희생은 숭고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희생은 많은 병사들이 살아남아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하였고, 용사의 등장으로 역습에 성공하여 인간들의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뚫려버린 전선의 책임이 상층부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었다고 밝혀지면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요(실상은 아니지만). 전선의 한 축을 담당했던 다른 장군을 빼내어 후방으로 돌리는 바람에 지휘 계통에 혼란이 생기고 그 틈을 노린 마물들이 치고 들어온 결과 많은 땅을 빼앗기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희생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전란의 시대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부조리한 죽음이었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이드후드루프 후작'의 아들 '제이드'는 부조리한 어머니의 죽음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가 촉망받는 장군으로서 전쟁이 끝나면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반짝반짝 빛을 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 그는 아들로서 어머니를 부조리하게 사지로 내몬 자신의 나라 렘르실 제국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여기까지 보면 그가 복수심에 불타는 것도 응당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어머니의 부조리한 죽음은 구실일 뿐 그의 진짜 목적은 국가를 전복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 싶다는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읽다 보면 어떻게 숭고한 정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런 못난 아들이 태어났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가죠.

 

그래서 이 작품의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했는데요. 가정교육의 필요성, 아비 되는 후작놈도 부모에게서 뭘 배웠는지 죽은 와이프의 전공을 등에 업고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 되어 나라를 주무르다시피 하고,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들놈에게 용사 레티를 와이프로 맞아들이라는 둥, 아들놈이 국가 전복을 시도하고 있는데 말릴 생각보다 편승하고 자빠졌으니 죽은 부인(엄마)만 불쌍한 지경이죠. 제이드는 처음부터 이 작품의 악역을 자처했더랬죠. 전형적인 귀족 사상에 찌들어서는 용사 레티의 스승 주인공 '윈'이 기사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창피를 주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일어났던 기사들의 반란에 편승해서 정적을 없애고, 왕녀 '코넬리아'를 납치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후작이라는 권력은 그의 나쁜 버릇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가 썩었다지만 왕족도 마냥 손놓고 있지만은 않는데요. 이에 대항해 왕자 '알프레드'와 왕녀 '코넬리아' 그리고 윈과 용사 레티는 제이드의 야욕에 맞서서 하나하나 증거를 모으고 아지트를 급습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을 해나갑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마왕을 무찌른 용사 레티가 나서면 모든 게 끝나버릴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죠. 용사란 인물은 세상 그 어떤 나라에도, 황제 앞에서도 무릎은 꿇지 않습니다. 용사는 신(神)탁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것은 곧 신이 선택한 그야말로 신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용사의 말을 거역하는 건 곧 신의 말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사 레티는 사실 좀 발암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녀가 진심을 다하면 나라 하나는 우습게 멸망 시키고도 남죠.

 

그녀가 본진에 쳐들어가 수괴의 목을 처 버리면 아무리 난다 긴다는 귀족이라도 신의 대행자인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윈이 바라지 않으니까. 용사가 인간을 향해 힘을 쓰면 또 다른 마왕이 탄생하는 거라고, 이것으로 모든 걸 설명해버리죠. 그래서 모든 증거가 모였음에도 제이드의 반란을 눈앞에서 보고도 진압을 못합니다. 그 약점을 비집고 들어와 윈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오로지 윈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 세상에 버려져 단 하나 의지가 되었던 사람, 이젠 세상 누구보다 사모하는 사람, 근데 정작 용사의 모든 호감을 받고 있는 '윈'은 그녀의 바람을 애써 모른척할 수밖에 없어요. 나란히 어깨를 같이할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각을 하고 있죠. 하지만 용사는 그걸 바라는 게 아닌 이성으로써의 호감을 내비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둔함이라는 것이군요.

 

아무튼 반란의 수괴들을 끌어 내기 위해 왕자 '알프레드'는 결단을 내려 갑니다. 그는 용사 레티와 그녀의 스승 '윈'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있죠. 용사 레티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윈을 보호하기 위해 평민인 그를 동생 전속 종사로 발탁하는 등 깨어있는 지식인이라고 도 할 수 있군요.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고, 보통 아무리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왕좌를 놓고 정적이 될 수밖에 없음에도 동생 '코넬리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상한 오빠이기도 합니다. 그 오빠의 영향 때문일까요. 제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윈 일행을 따라다니며 누구나 다 꺼리는 빈민가에 들어가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선군이 되기 위해 다짐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자, 전란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맺으며, 왕녀 코넬리아가 치고 들어오면서 레티의 연애전선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왕자 알프레드는 동생(코넬리아)을 기꺼이 윈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입장을 명확히 해야 될 주인공 윈은 둔함으로 무장해서 '난닷데?(뭐라고?)'의 성향을 보이는 것에서 답답함을 선사합니다. 동료의 지적에 겨우 둘(레티와 코넬리아)이 자신을 어떤 감정으로 쳐다보는지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럴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또 자기 비하하는 통에 참 거식한 전개라랄까요. 사실 제이드의 반란은 어딘가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같이 느껴지고 실제의 이야기는 이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라와 이페리나의 이야기라던가, 윈이 구해준 하프엘프 세실이 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라든지... 그리고 윈을 바라보는 레티와 코넬리아의 애틋한 마음이라던지, 그리고 진가는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물 마시는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이군요. 이 작품은 이런 걸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