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용사님의 스승님 6권 리뷰 -시속 300키로로 달리다 탈선-

현석장군 2019. 11. 23. 14:19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하세요.

얼마 전 외국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고 겉돌고 따돌림당하더래요. 그래서 의사에게 갔더니 천재의 소질이 보이니 그쪽 방면으로 공부 시키면 어떠냐는 소견을 듣게 돼요. 엄마는 그 길로 아이가 원하는 공부와 틀에 맞는 교육을 시켰어요. 강요가 아니라 아이의 뜻에 따라 아이의 틀에 맞춘 결과 그 아이는 10대 초반에 미국 굴지의 대학 입학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죠. 여기서 시사하는 점은 어른이 바라보는 천재라는 틀에 아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춘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 비유하자면 히로인이자 용사 '레티'를 들 수가 있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천재의 기질을 보였으나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엔 그저 기행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레티는 집에서 겉돌고 무시당하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죠.

 

그녀의 천재 기질을 주인공 '윈'이 본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배려를 해주었죠. 그리고 그녀는 10살에 용사라는 천재로 각성해서 암울했던 세계를 구원했습니다. 자, 여기서 그녀를 천재(용사)로 이끈 건 누구일까. 그 누구도 아닙니다. 그저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윈은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잡아주었을 뿐이죠. 어린 나이에 한창 보호받아야 될 그녀가 외로운 길을 걸을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가족이 아니라 주인공 '윈'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 이것입니다. 힘들 때 곁에 누가 있었는가. 만약 레티의 집에서 그녀의 행동을 기행이라 치부하지 않고 그녀의 눈 높이에 맞는 틀에 맞춰서 교육을 시키고 배려를 해주었다면 분명 역시 용사의 길을 걸었을 테죠. 또한 집안과의 사이도 돈독해졌을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꼭 지나가고 나서야 후회를 합니다.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는데 손을 들어봐야 노빠꾸일뿐이죠. '메이비스 공작가(家)'에서 레티의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버스에 애를 혼자 태워 보내놓고도 버스를 붙잡기는커녕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그때는 몰랐겠죠. 장녀 '스테시아(레티에겐 큰언니)'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레티의 아버지는 그때 버스를 붙잡을 걸 그랬다고 되뇌어 봐야 이미 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클라이후드루프 후작가(家)' 장남 '제이드'가 촉발한 국가 전복 시도는 내란이라는 결과를 낳아 버렸습니다. 레티의 큰언니 스테시아는 자기도 어린 레티를 업신여겨놓고 그녀가 용사로 각성하여 누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시기를 해버립니다. 그녀(스테시아)는 우둔함의 결정체를 보여주죠.

 

그래서 제이드의 속임수에 넘어가 국가 전복에 발을 들이밀어버립니다. 그것이 국가와 가문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걸 모른 채, 우둔한 장녀를 보며 레티의 아버지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 레티의 기행을 곱씹고 멀리한 걸 탓하듯이 어린 레티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아버지는 깨달아 가요. 우둔한 건 장녀가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그렇기에 가문은 멸족하겠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난을 피한 레티가 있는 한, 핏줄이 끊길 일 없을 거라는 자조 섞인 말 밖에 할 수 없는 모습에서 많은 걸 깨닫게 해줍니다. 사실 이렇게 길게 쓸 만큼 레티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아요. 수십 쪽에 불과한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저 위에서 아이를 대학에 입학 시킨 엄마처럼 우둔함 보다 현명함을 선택했다면 분명 미래는 바뀌었을 거라는.

 

이번 이야기는 창세신과 동등하다는 파괴신을 현현시켜 세계를 다시 쓸려고 했던 '사라 페롤'이 남긴 유산을 둘러싼 최종편입니다. '사라'는 얼핏 보면 세계를 멸망 시키는 마왕과도 같은 존재지만, 그녀의 시작은 어느 왕국에서 왕의 증손녀를 보필했던 시녀에 지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왕의 몸에 마왕이 깃들면서 왕국은 멸망의 기로에 섰고, 그녀는 증손녀를 안고 어떤 마도사와 함께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였죠. 그때 그녀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절망을 느꼈고, 차라리 세계를 다시 만들면 이런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들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1차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래서 같이 탈출한 마도사가 만든 금단의 기술을 훔쳐 파괴신을 현현 시키려 했으나 용사 레티에 의해 저지 당하고 말아요.

 

마왕과는 별개로 또 다른 지역에서 마왕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질뻔한 걸 레티가 저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가 생전에 했던 어려운 사람 구제라는 업적은 그녀를 성인(聖人) 반영에 오르게 했고 레티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생전 업적을 기려 치부는 감춰 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실험에 희생되었음에도, 그녀의 의지 자체가 궁극적으로 세계를 새로 만들어 어려운 사람 구제라는 선에서 입각한 것인지라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좋게 끝나나 했지만 그런 그녀가 남긴 파괴신 현현에 관련한 유산들을 노리는 자가 당연히 나오기 마련일 것입니다. 사라가 남긴 세계 구제라는 의지보다 오로지 '파괴신'에만 현혹된 사람. 이번 이야기는 그 사람과 싸우는 이야기인데요. 용사 레티에게 걸리면 그 누가 되었든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전투는 새로운 양상을 띄워 가요.

 

사실 이렇게 끝나면 정말로 좋을 거라 필자는 생각하였습니다. 버스 떠나고 나서야 손드는 멍청이에 대한 교훈과 시녀로써 본분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분골쇄신했던 시녀의 숭고한 정신은 작품의 질을 올리는데 이보다 좋은 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주재를 놓고 마치 용두사미처럼 세상 살다 이렇게 답답한 작품은 또 있을까 했던 게 이번 6권이군요. 사라의 유산을 노리는 악당 마도사가 나와요. 제도에서 유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마도사 본분에 입각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데 정도의 길을 걷기보다 사도의 길을 걸으며 남이사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전형적인 악당인데요. 이놈이 노리는 사라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레티는 맞서가죠. 여기서부터가 답답함의 정수를, 고구마를 트럭째 싣고 와서 들이붓습니다.

 

분명 일도양단할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빤히 바라보고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파괴신이 현현하면 마왕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텐데 사라의 유산을 노리고 유적으로 들어가는 악당을 뒤쫓아 빨리 붙잡아야 되건만 입구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뭔 이야기를 그리 해대는지 모르겠고, 뒤따라 잡아서도 바로 전투에 들어가기보다 악당이 하는 말 다 듣고 각성하는 거까지 다 관람한 끝에 '저 사람, 엄청난 힘을 얻었어'라니요. 용사가 되더니 자신감 만땅입니까? 사실 여기까지는 용사와 악당 간 서로 대화가 끝나기 전이나 변신이 끝나기 전에 치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기다려준다는 클리셰라 치부할 수 있어요. 문제는 그런 행위 때문에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레티와 윈은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했다가 그냥 칼질 한 번으로 끝났을 상황에서 궁지에 몰려 가요.

 

더욱 문제는 일찌감치 전투에 돌입했다면 궁지에 몰릴 일도 없었고, 괜히 똥폼 다 잡고 그러다 엑스트라도 아니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거예요. 자신들의 행동에 반성의 기미는 없다는 것, 여행의 길동무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중요한 사람이 죽었는데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사람 맞나? 이 얼마나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란 말인가요. 그래놓고 주인공 '윈'은 죽은 사람 되뇌며 레티와 싸우고 싶었던 거 아님? 이러고 있습니다. 참고로 레티는 정말로 궁지에 몰려서 죽을뻔하였고요. 거기에 죽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엑스트라 또한 자신을 도우러 오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애도하는 말 한마디 없고 뜬금없이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작가가 제정신인가 싶더라고요.

 

맺으며, 주인공 윈과 히로인 레티를 보고 있으면 이선희 가수가 부른 '인연'이라는 노래가 생각 납니다. 특히 인연이라는 노래를 가미해서 만든 드라마 '다모'의 뮤직비디오(유튜브에서 검색)와 이 작품과 연관해서 읽으면 감성을 엄청 자극하죠. 인연이 맞닿아 그 사람만을 생각해가는 과정이 참 애잔하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레티가 딱 그렇죠. 주인공 윈을 바라보는 레티의 시선. 정말 이 여운이 끝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까지 보면 정통 판타지에 순정을 넣은 수작인데 중반을 넘어서부터 속칭 발암적인 전개는 이 모든 여운을 다 말아먹어 버립니다. 악당 마도사와의 전투씬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도로 처참함 그 자체였군요. 상대의 실력이 허접해서 처참한 게 아니라 전개 자체가 허접해서 처참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전개로 서적화할 마음이 생겼는지 작가와 출판사에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악당이 저기에 들어가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빤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몇 번이고 무찌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뭔가의 사연도 없으면서도 하지 않은 것, 레티라면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아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행위, 그리고 결정적으로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 여담으로 쓰지만 콘솔이든 온라인이든 게임상에서 전투 전에 그러하듯 상대와 말을 주고받으며 상황상 단계를 밟아 가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빤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저지할 수 있었는데 왜 가만히 보고 있는가. 그로 인해 사람을 죽게 만드는가. 작가가 문제인가? 다음 7권이 마지막이어서 다행이랄까요. 이런 작품을 왜 여태껏 봐왔는지 필자 자신도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