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리뷰

[스포주의] 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4권 리뷰

현석장군 2019. 12. 13. 22:00

그동안 10년 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참았을까. 이 작품에서 비극의 히로인이라고 하면 '샬롯'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국에 속하는 '휴잭'이라는 왕국에서 왕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녀, 그러나 10년 전 몬스터 떼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고 말아요. 어떻게 도망치기는 했으나 노예상에 붙잡혀 인생 끝장나게 생겼고, 마침 정령에 이끌려온 주인공 '데닝'에 의해 구해지죠. 안도도 잠시, 이제 왕녀로서의 생활은 끝이 나고 그의 종자로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참 못 볼 꼴 많이 봅니다. 온갖 망나니 짓을 저지르는 주인(데닝) 때문에 마음고생이 끊이질 않고, 그(주인)가 집안에서 눈 밖으로 나버리는 바람에 도매금으로 자신(샬롯)도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월급도 깎여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등 차라리 노예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고생을 많이 했더랬죠.

 

근데 그 멸망해버린 휴잭의 수호룡 흑룡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인생은 졸부 인생으로 바뀌어 갑니다. 드래곤 왈: 그녀(샬롯)의 먼 조상의 목숨을 대가로 나라를 지킨다는 계약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나라가 멸망했네? 지키고자 했던 나라에 가보니 사람은 없고 몬스터만 바글 거리는 게 아니꼬워서 한바탕 브레스로 긁어주고 마침 바람에 실려온 그녀(샬롯의 조상?)의 향기(?)를 쫓아 마법 학원에 왔더니 조상하고 비슷하게 생긴 여자애가 자기를 퇴치하겠다는 양 꼼지락거리며 앞으로 나온다. 먼 조상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분함, 조상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위기 때마다 자손의 목숨을 대가로 나라를 수호하겠다고는 했는데 지금은 나라가 멸망해버렸으니 저 왕녀(샬롯)를 어떻게 해야 하나.

 

주인공 데닝은 그런 흑룡을 무찌르고 일약 스타덤에 올라버렸습니다(다짜고짜는 아님, 자세한 건 스포일러). 그동안의 온갖 말썽쟁이 칠흑 돼지라는 오명을 벗어 버리고 구국의 영웅으로 등극하죠. 이미지는 떨어질 땐 고속도로지만 다시 올리려면 걸어서 63빌딩입니다. 주인공 데닝은 걸어서 63빌딩을 올랐어요. 근데 여기까진 좋으나 왜 커밍아웃을 해가지고 '샬롯'의 심기를 건드리는가. 그동안 그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로 해왔던 그녀의 비밀을 하필 드래곤을 쓰러트리고 이실직고 하는가. 비밀을 말할 때는 진솔하게 서로 마주 보며 차분하게 하는 것, 그동안 자신의 비밀을 비밀로 했다고 단단히 삐져버린 샬롯은 주인과 종자라는 입장을 망각하고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동안 돼지 시다바리 하면서 서러웠던 걸까요. 자, 이제 왕녀라고 밝혀졌으니 에헴 나도 왕녀 취급 좀? 이럽니다.

 

전쟁의 기운이 날로 커져만 가는군요. 북쪽 도스톨 제국은 고만고만한 나라들을 집어삼키며 대륙 맹주로 부상하기 시작하고 남방에 위치한 다리스(주인공이 사는 나라)등 다른 나라들은 연합해서 대응을 하려 하지만 녹록지가 않아요. 그런 와중에 지금은 멸망해버린 휴잭(샬롯의 나라)에 도스톨 제국 군인으로 보이는 먼치킨이 한 명 들어와 있는데 조사 좀이라는 퀘스트가 주인공에게 내려집니다. 주인공은 알고 있어요. 그 먼치킨으로 인해 도스톨 제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전쟁을 일으키고 다리스 등이 휘말려 세계대전이 된다는 것을. 자, 세계의 운명이 주인공 어깨에 달려 있음요. 이쯤 샬롯과는 냉전 중이고, 관계는 최악을 치달아 갑니다. 뭐, 나름대로 생각은 하고 있었다지만 애초에 샬롯도 데닝에게 비밀로 해놓고 정작 데닝이 비밀로 한 것에는 삐지는 발암 1기가 시작돼요.

 

뜬금없지만 이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발암적 요소를 안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찌릿찌릿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발암적 요소는 불쾌하다는 게 아니라 순진하고 순수한 애들을 보는 거 같은 그런 발암류랄까요. 마치 내 마음을 몰라줘서 삐지는 여친 같은, 몇몇 히로인을 예로 들면 알레시아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도는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보는 거 같죠. 지동설은 먹히지가 않아요. 요컨대 지구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그렇게 돌아야만 하죠. 하지만 속마음은 남들과 어울리고 싶은 지동설을 믿고 싶은데 그놈의 고집과 프라이드가 허락하지 않아요. '카리나'는 내가 왕녀다라며 남의 마음과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내가 하라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주인공을 사자 우리에 집어넣으려 하죠. 그런 주제에 방구석 폐인이고.

 

그리고 진 히로인 '샬롯'은, 우선 손에서 마법 지팡이를 내려놓고 말하자. 그녀는 마법계에 있어서 요리계의 이승기죠. 그녀는 마법을 쓰면 안 돼요. 근데 억척같이 마법을 쓰려 합니다. 노력파라서 어느 정도 성과는 내는데, 결과가 좋지만은 않아요. 마법의 매개가 되는 정령들이 그녀를 외면할 정도니 말 다했죠. 그리고 왕녀라는 신분이 밝혀지자마자 왕녀 취급 좀이라느니 태도가 돌변해서 주인(데닝)과 맞다이 까려고 하지 않나, 지금은 몬스터가 득실거려서 군대도 소용없는 휴잭(샬롯의 나라)에 가겠다고 떼를 쓰니 난감함이 쓰나미로 몰려옵니다. 가겠다는 그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어요(자세한 건 스포일러). 주인공 데닝에게 있어서 여난이죠. 알레시아는 주인공 데닝이 판 무덤(그녀와 약혼했으면서 차버렸거든요.)이기도 해서 까임 당해도 자업자득이긴 한데.

 

아무튼 전쟁 밖에 없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도스톨 제국이 휴잭에 잠입시킨 먼치킨을 제거하기로 하고 데닝과 샬롯이 파견됩니다. 진정한 오크 돼지가 뭔지 보여주마라는 듯 주인공 데닝은 오크로 분장해서 싸돌아다니는데 이건 별로 재미없으니 넘어가고, 막상 휴잭에 들어가 보니 몬스터 마경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기피의 대상이었던 땅은 어째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밝혀지는 휴잭을 점거한 몬스터들의 진의, 인간의 말을 하는 픽시 '에어리스'와의 만남으로 샬롯은 심경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제서야 어릴 때 자신을 구해준 게 누구이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샬롯.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눈치 못 채죠. 에어리스와의 생활 덕분에 여전히 발암 1기에서 2기로 올라가려는 알레시아와 대조적으로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을 보이게 되는 샬롯이랄까요. 이런 성장을 정말 좋아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

 

맺으며, 발암 제조기 알레시아 덕분에 개그가 사망하지 않고 간신히 인공호흡하고 있는데 조금 더 개그를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더군요. 사실 좀 무미건조해요. 주인공 데닝의 '나는 알고 있다. 미래 어떻게 되는지'같은 독자로서는 알고 싶지 않은 스포일러를 까데기 하는 통에 재미가 반감되고, 사실 주인공이 미래를 알고 있고 그 미래를 주인공이 바꿔 간다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걸핏하면 알고 있다고 해서 눈에 좀 거슬려요. 게다가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죄다 둔감해서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게 있죠. 이 부분은 나중에 알아채고 진실된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같은 클리셰를 집어넣으려고 했나 본데 이건 이젠 개도 거들떠 안 보는 주재라는 것. 돌려 말하면 그만큼 풋풋한 청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히로인들에게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니 불쌍하기도 하고, 호구스럽기도 하고, 부자연스럽기도 하더라고요. 현실에서 삐진 여친 달래려고 사과했더니 뭐가 미안한데?라고 나오는 여친에게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할까 같은 게 있다고 할까요.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