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짜증 나는 러브 코미디, 인생은 실전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하렘? 우리나라 법엔 사촌과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표지: 말해 무얼 하나. 이작품의 히로인 '이로하'다. 내청코(1)의 그 이로하가 각성하면 이렇게 성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맹랑하다. 여자로서 자신의 무기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이로하 같은 여자와 엮였다간 경찰서 간다. 이로하뿐만 아니라 작중 등장인물 일러스트가 잘 나왔다.

 

스토리: 제목 그대로다. 오빠 친구를 놀려 먹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이로하'와 그 오빠 친구인 '아키테루'가 벌이는 러브 코미디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파서 청춘인 내청코와 청춘의 집합소인 사쿠라장 하위 버전이 아닐까 한다. 이로하만 아니면 느낌으론 좀 더 사쿠라장에 근접한다고 할까. 아무튼 이로하 성격이 매우 강렬해서 내청코를 즐겨본 독자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는 하는데,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내청코만큼이나 흥미를 끌진 못할 듯하다.

 

포인트: 이로하가 투하하는 폭탄은 전부 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다. 처리하려면 EOD를 불러야 할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폭탄이란 외모적 비하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군에서 쓰는 폭탄을 말한다. 

 

특징: 동정을 치료하는 약은 없다.

 

 

매우 매우 큰 스포일러 주의, 글이 매우 긴 초장문 주의

 

 

 

짜증 나게 굴면 상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주인공 아키테루는 부모님이 해외로 부임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혼자 살다 덜컥 죽기라도 하면 누가 알아줄까 싶어 옆집 동년배 남자애를 친구로 만들어 집 열쇠를 건네 놨다. 이게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후회막급인지는 그때는 몰랐겠지. 내 방 침대에 여자애가 무방비로 퍼질러 엎어져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걸 보기 전까진 말이다. 아키테루는 부모님이 해외로 부임한 이후 혼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여자애는 누구인가. 아싸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분명 부러워할 만한 상황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여자애와 단둘이, 그것도 침실이라는 시추에이션은 청춘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이벤트라 할 수 있겠지.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면 말이다.

 

왜인지는 모른다. 언제부터 침실을 장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쇠를 옆집 친구에게 맡겨놓은 시점부터겠지. 열쇠를 아무리 숨겨놔도 찾아서 몰래 들어오는데 막을 재간이 없다. 불법 침입이다. 근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되려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 같아요? 같은 협박을 해오는 통에 무난한 인생을 살고 싶은 아키테루에게 있어서 성범죄자라는 꼬리표는 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만 봐도 이로하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동정을 놀리는 포인트도 잘 알고 있어서, 가슴을 강조하는 몸짓을 한다던지 일부러 몸을 부딪혀 온다던지 한창 피가 몰리는 청소년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자극하는 게 이로하다. 그래놓고 에햇~ 이러고 있으니, 주인공 아키테루에게 있어서 얼마나 짜증 나는지 제목으로도 잘 표현 해놨다 할 수 있다.

 

혹시 얘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이러나 싶겠지. 하지만 동정은 속지 않는다. 이렇게 짜증 나게 구는데 이게 호감일리가 없잖아?라는 게 아키테루의 생각이다. 호감의 다양성을 아키테루는 부정한다. 꼬꼬마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관심을 끌려고 못된 짓을 하는 걸 두고 가정폭력범으로 몰고 가는 그로써는 이로하의 짜증 나는 행동이 호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호감이 있다면 상냥하게 대해주는 편이 효율적으로 좋지 않나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효율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낭비 없는 삶이 그의 목표다. 그러니 이로하의 행동이 이해될 리가 없다. 그럴 틈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이건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면 세상은 참 편하겠지. 아키테루는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충돌한다. 효율적으로 이렇게 성가시게 구는 애가 날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짜증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확실하게 거부하는 게 어떨까. 효율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인생의 낭비를 요구하는 이런애(이로하)는 내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 것에서 이번엔 독자들을 짜증 나게 한다. 학교에서 조신한 척 호박씨를 까면서도 주인공의 퇴로를 차단하며 궁지로 몰아가는 이로하를 내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싶다. 필자로 하여금 또 다른 짜증을 유발하는 건, 주인공 주변은 이로하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아키테루를 향해 '쑥스러워 한다'라며 남의 감정을 무시한다는데 있다. 아키테루는 마트 시식코너에서도 천하의 못쓸 놈으로 만들어가는 이로하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 이걸 두고 또 쑥스러워한다는 주변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 작품은 은근히 남의 감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하는 왜 이렇게 아키테루를 성가시게 하는가. 호감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이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호감을 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정말 관심이 없다면 상대조차 하지 않겠지. 표현으로는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인이라는데 뭐가 아쉬워서 아싸 동정에게 관심을 주겠냔 말이다. 아키테루는 효율을 중시하면서 그녀의 호감을 알아채주지 않는다. 둔감? 애초에 관심이 없는데 둔감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짜증이 나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이로하가 자신에게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 이유라도 밝혀내야 되지 않을까. 또한 이쯤 되면 이로하도 포기할 만도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라도 밝혀야 되지 않을까. 이런 사정이 중후반에 밝혀지긴 한다. 그래서 이 분위기만 놓고 볼 때 사쿠라장을 연상시킨다.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로하는 받은 호의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게 잘 먹히지 않고 있어서 문제지만.

 

 

스포일러 주의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번엔 이로하와 정반대되는 히로인 '마시로'가 등장한다. 아키테루의 사촌이다. 소심 냉혹한 성격으로 아키테루와는 화장실 신이라는 이런 청춘물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로 첫 만남(사촌이니까 사실 첫 만남은 아님)을 가졌다. 그러니 첫인상은 최악이다. 그런 그녀가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 온다. 그리고 밝혀지는 마시로의 그간 행적은 빈말로도 좋지 않다. 귀족 규슈만 다닌다는 여고에서 이지메를 당한 끝에 방구석 폐인이 되어 버렸고, 이걸 고치기 위해 아키테루의 학교로 전학을 한 것인데, 마시로 집안은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라면서 어째서 딸내미가 학교에서 이지메 당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뒀냐는 희한한 시추에이션이 발생한다.

 

아키테루의 학교로 전학 시키면서 같은 반이 되도록 뒷공작을 펼쳤음에도 이전 학교에선 왜 도와주지 않아서 딸을 방구석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걸까. 아빠는 바람둥이라는 영문모를 설정도 그렇고. 아무튼 심적으로 지쳐 마음을 닫아버린 마시로의 마음을 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아키테루의 장래가 걸린 일로서, 장래 삼촌이 경영하는 대기업에 취직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마시로에게 달렸다. 근데 그녀는 아키테루를 똥으로 보고 있다. 첫 만남이 화장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지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간다. 마시로가 마음을 닫아버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래서 아키테루는 그녀의 마음을 열려고 갖은 애를 쓴다. 문제는 이로하가 아키테루에게 짜증 나게 굴었던 방법을 거의 비슷하게 쓴다는 것이다.

 

남의 마음에 개입한다는 건 정말 신중해야만 한다. 여기서 몇 번째인지 모를 짜증 나는 부분이 이것이다. 마시로가 왜 마음을 닫아버리고 타인을 멀리하는지에 대한 이해보다 억지로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하는 데에 있다. 하는 짓이 딱 변태다. 그녀가 과거 당했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세상엔 나쁜 놈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음에도 그냥 자신을 피해서 도망가는 애를 쫓아가서 물에 빠트리는(같이 빠졌지만),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론을 들이밀어서 상대로 하여금 납득 시키려는 아집도 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 되었다곤 해도,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 주는 것보다 이것이 최선의 길이라며 자기 뭣대로 판단해서 남의 마음에 비집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근데 마시로가 안고 있는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이걸 말해주기 전까지 아키테루는 삽질을 했음에도 작가는 언급조차 안 한다.

 

친구 여동생이 짜증 나 죽겠다면서, 정작 주인공이 마시로를 짜증 나게 만드는 시추에이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전쟁에서 적이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하라고는 했지만 마시로는 적이 아니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주인공이 한 행동은 옳고 결과적으로 잘 풀린다는 것이다. 마시로와도 결국 잘 풀린다. 과정보다는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것일까. 남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면서 죄의식이 없고, 말 한마디에 상대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음에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을 청춘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키테루는 이로하가 짜증나 얼굴 안 보면 된다. 그런데도 어울린다는 건 '기만'이지 청춘이 아니다. 그리고 필자가 언급한 사쿠라장 같다 했던 건 '5층동맹'라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부 끈으로 이어진 인연이고, 이 끈은 주인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물을 만들어 냈으면서도 친구 여동생이 짜증 나게 군다는 건 역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아싸들에게 몰매나 맞으라지.

 

맺으며: 에필로그 부분에 보면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쇄국 정책을 펴는 나라는 언젠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외국이 쳐들어오면 개국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문명이 발달한다' 일본도 에도 막부 말에 흑선 개항이라는 개국을 거치긴 했지만, 이런 청춘 러브 코미디에서 쓸만한 단어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군요. 당장 우리네 역사만 봐도 일본에 의한 개국 때문에 수탈이라는 아픔이 있죠. 적어도 필자 같은 올드 유저 입장에서는 개국 = 수탈이라는 이미지가 좀 있어요. 작가 딴에는 '마시로'를 예를 들어 아무리 닫힌 마음이라도 언젠가 열리며 마음을 키워 간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나 본데요. 개국이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역사를 비춰볼 때 비단 마시로만이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내포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작가가 이런 점을 알고 있다면, 이 작품의 장르이자 아이덴티티인 청춘 러브 코미디는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가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해가 되는 게 이로하가 아키테루를 대하는 것이나, 마시로의 마음을 열려 했던 아키테루를 보고 있자면, 쇄국정책 운운은 남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부분을 인정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군요. 이런 가벼운 러브 코미디에 죽자고 달려드는 필자가 좀 안 좋게 비칠 수 있겠습니다만. 나이 들고 보니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라 여느 작품을 읽어도 이상보단 현실적인 부분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솔직히 필자와 맞지 않았습니다.  

 

  1. 1,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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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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