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이 왜 이세계로 다시 전송되었는지 어렴풋이 드러난다. 1천 년 전, 1대 황제와 대륙을 호령하며 제국을 건국 해놨더니 후손이라는 놈들이 삽질이나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정령들이 주인공을 다시 불러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작중에는 이런 언급은 없고, 필자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지금의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대륙을 통일한답시고 아무 잘못 없는 옆 나라 '페르젠'을 공격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제3황자가 공을 세우려 무리하게 '페르젠'을 침공했고, 자기가 똥을 쌌으면 자기가 닦아야지 이 무능한 아들놈은 군사를 갈아 넣어도 나라 하나 복종 시키지 못한다. 이에 황제와 제1황자가 친히 나서서 '페르젠'을 복속 시킨 거까지는 좋은데, 옛부터 점령전을 쉽게 치르려면 그 고장의 민심을 장악하라고 했다. 근데 제국은 민심 따윈 개나 줘버리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아녀자를 능욕하고 잡아가서 노예로 팔아버렸다. 이렇게 철저히 제국은 악의 축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놓고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는 준동하는 페르젠 잔당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출전했던 히로인 '리즈'가 적군에 붙잡혀 온갖 능욕을 다 당하고, 또 다른 히로인 '아우라'는 성채에서 농선전을 벌이며 오늘내일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어찌 되긴 이게 다 주인공 잘못이라고 정의하겠다. 3권 리뷰에서 필자는 '리즈'를 자잘한 전투에선 이겨도 큰 전투에선 이기지 못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백성들의 지지가 두텁고 5대 정령검 중 하나인 [염제]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것뿐이다. 백성들을 지켜야 될 전장에서 전술이 없으면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전략이 없으면 상대 적장의 목을 취하는 건 불가능하다. 리즈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모두 없다. 주인공은 그녀를 보좌하며 자기가 이걸 다하고 있었을 뿐이고 그 결과가 이번 4권이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왜 리즈에게 여러 전술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일까. 언제까지고 자신이 보좌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황제가 둘을 찢어 놓으면서 간단히 무력화되고 만다.

 

사실 주인공으로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리즈'는 [군신 소녀]라 불리며 전략, 전술에 있어서 주인공에 버금가는 '아우라'와 합동으로 페르젠 잔당군을 소탕하고 있었는데 아우라의 전술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리즈가 붙잡혀서 고초를 겪진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리즈의 군대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드랄 대공국군에 의해 리즈의 군대가 와해되어 버렸으니 천하의 아우라도 어쩔 수가 없었고, 예상도 못한 일이다. 문제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나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 페르젠을 침공한 건 리즈의 오빠인 제3황자고, 3황자가 삽질하자 황제와 1황자가 나서서 페르젠을 초토화 시켜버린다. 당연히 페르젠은 잔당들을 규합해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된다. 즉, 리즈는 아빠와 오빠들이 싼 똥을 치우려다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근데 아우라의 경우는 제3황자가 페르젠을 침공할 때 참모로서 전략을 짜내 페르젠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이렇듯 이 작품에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꼬이고 겹쳐지게 해서 매우 치밀한 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우라의 경우 제3황자의 명을 받고 리즈를 죽이려 한 일도 있다. 정치란 이런 걸까. 그래도 아우라는 리히타인 공국과 싸울 때 힘을 보태 주었으니 주인공에게 있어서 적은 아니다. 황제는 주인공에게 리즈의 탈환을 명한다. 말하지 않아도 주인공은 당장 달려갈 기세지만 정치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황제는 리즈만 구하고 아우라는 버리라고 한다. 주인공의 기본 이념은 사람을 구하는데 있다. 아무리 리즈를 죽이려 했다곤 해도 아우라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주인공에게 없다. 황제와 부딪히는 주인공. 자, 이렇게 위기에 처한 히로인들을 구하는 주인공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작가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이야기는 미적지근하게 흘러간다. 일단 페르젠 잔당군을 지원하는 드랄 대공국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주인공으로서는 이제 [군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차례이긴 한데...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한다. 매 권마다 히로인을 등장시키며 은근히 하렘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하렘이 메인은 아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들은 하나같이 기가 세고 한 사람의 몫을 톡톡히 한다는 것에서 상당히 흥미롭다는 거다. 물론 리즈는 좀 더 분발해야겠지만, [군신소녀] 아우라, 리즈의 언니 로자, 레벨링 왕국의 왕녀 등 누구 하나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곤 해도 말이다. 그리고 이번 4권에서의 히로인 '스카아하'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멸망한 페르젠의 왕녀로서 제국을 맞아 잔당군을 이끌고 싸우고 있다. 이 말은 리즈와 주인공에게 있어서 적이라는 소리다. 5대 정령검 중 [빙제]의 선택을 받은 그녀는 성채에서 농성 중인 아우라를 몰아붙일 만큼 실력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롭힘당하는 리즈를 보호해주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히로인이 다 그렇듯 주인공과 일전은 피할 수 없다는 게 흥미 포인트다.

 

초반에 주인공이 다시 이세계로 불려온 이유가 어렴풋이 드러난다고 했는데, 종합해보자면 1천 년 전에 건국한 나라가 무능한 후손 때문에 망하게 생겼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며 소환된 게 아닐까 싶다는 거다.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이 소국이라면 망할 정도로 예산을 퍼부어도 페르젠 하나를 굴복 시키지 못하고 있다. 황제와 아들 놈들은 똥만 싸지르지, 점령지 무고한 백성들을 못살게 굴며 악은 우리라는 듯 세계에 광고하고 있으니 1대 황제가 봤으면 화병으로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 속에서 '리즈'라는, 1대 황제만이 가졌다는 [염제]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아직 이렇다 할 힘을 못내는 그녀다. 그럼에도 백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그녀를 지키라는 1대 황제의 뜻이 담겨 주인공이 소환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4권이라 하겠다. 주인공은 그런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리즈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분명 성군이 되겠지. 주인공은 그녀의  길을 막는 귀족들과 전쟁을 준비한다.

 

맺으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드는 분기점이라 하겠다. 히로인들 개고생도 시켰고,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황제와 흑막에 의해 여러 나라가 조종 당하며 전운이 감도는 등 그동안 복선과 떡밥을 충분히 뿌려 두었다. 이제 히로인도 제법 모였고 하니 다음부터는 슬슬 복선과 떡밥이 회수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제1황자의 꿍꿍이가 기대된다. [염제]의 선택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리즈를 없애려 한 치졸한 제1황자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가 관심사다. 그리고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추대하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본격 가동되는 등 이번 4권은 흥미로운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다만 아쉬웠던 게 이번 4권의 히로인인 '스카아하' 그녀가 망국의 공주로서 어딘가 애틋하거나 애잔한 연출을 해줬다면 몰입도를 상당히 올려 줬을 텐데 복수의 화신으로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히로인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아이덴티티니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리고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성장한다고 했던가. 고초를 격은 리즈의 성장기가 시작된다. 이것도 상당히 가대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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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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